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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코로나 전염병이 주는 신학적 의미-2

기획연재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목회·신학의 조명-8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세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불린 급성전염병은 유럽에 간헐적이며 지속적으로 발병했고, 14세기 후반부터 만성적인 풍토병이 됐다. 중세 초기 541년 이집트 항구도시 펠루시움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542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진출해 544년까지 약 30만 명을 희생시켰는데, 그것은 주민 전체의 1/3에서 1/2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흑사병은 유럽으로도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중세 유럽은 역병에 대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의술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르의 주교이자 프랑스 역사가인 그레고리우스(538-594)는 갈리아에서 역병이 발생했을 때, 클레르몽의 주교 갈루스가 주민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지로 행진했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은 단 한 명도 역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던 반면 후임 주교 카우티누스는 571년 역병이 발생하자 도피하기 바빴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들이 시체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희생됐다고 했다. 흑사병에 대한 신앙적 대처는 중세 교회가 이상적으로 여긴 방식이었다.

 

흑사병은 중세 후기에 또 다시 유행했다.

134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북유럽까지 확산된 흑사병은 약 2년 반 동안 유럽 인구 2500만 명을 사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1348년 잉글랜드 로체스터의 감독 브린톤은 영국에 만연한 죄악이 흑사병을 초래했다고 설교했고, 캔터베리 대주교는각 교구에 기도와 회개를 위한 행렬을 촉구했다.

 

영국 국왕은 전국적으로 금식과 특별기도회를 열고, 금요일마다 행렬의식을 거행할 것을 명령했다. 교황 클레멘스 6세는 1350년을 성년(聖年)으로 선포하고, 그해에 로마의 성지를 순례하면 대사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로마로 몰려들었고, 그것은 역병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역병에 대한 신앙주의적 대처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의술로 흑사병을 대처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프랑스 국왕 필립 6세는 흑사병의 조사를 명령했고, 파리대학교 의학부는 1345년 3월 20일에 화성, 목성, 토성이 합을 이룬 것이 대기의 오염을 유발했으며, 남쪽에서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 이런 오염을 확산시켜 흑사병이 번지게 됐다고 보고했다.

 

의사들은 오염된 곳을 피하고 부패와 악취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하며, 남쪽 창문을 닫아두고, 전염된 지역과 환자를 떠나 최대한 멀리 도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들은 영혼의 상태도 질병과 관련이 있으므로 부정적 감정을 멀리해야 하며, 즐겁고 명랑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것을 권고했다.

 

흑사병은 중세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교인의 수가 줄어 교구가 축소되거나 통합됐다. 성직자의 수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영국의 경우 1349~50년, 1361~62년, 1369년의 3차례 흑사병이 발병했는데, 1차 흑사병으로 약 45%의 성직자가 사망했으며, 수도사들은 47%가 사망했다.

 

성직자 사망률은 지위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났는데 주교들은 12%, 정주할 의무가 없던 주임사제는 33%, 정주 의무가 있는 대리사제는 46%가 사망했다.

 

하위품계 성직자들은 더 큰 폭으로 사망했다. 주교는 사람들과 접촉을 피할 수 있었 으나 예배당 전속 사제들은 사망자의 장례와 그 가족에 대한 목회활동으로 전염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컸던 것이다.

 

부족한 성직자를 충원하기 위해 성직자 채용이 대거 이뤄졌으며, 그런 과정에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성직에 진출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다수의 성직자들은 성직자 수가 부족한 상황을 더 나은 수입이나 지위를 얻기 위한 기회로 활용했다.

 

많은 성직자들은 전염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것과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맡고 있는 직분을 사임했다. 복수성직자의 수도 급속히 많아졌다. 복수의 성직록 보유는 좀 더 많은 수입을 위해서였다. 성직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뤄졌으며, 그 일을 중간에서 처리해주는 중개상이 생겨났다.

 

중세 교회 성직자들은 흑사병 시기에 대체로 잘못된 처신을 했다. 일부 성직자들은 목숨을 무릅쓰고 교인과 환자를 돌보고 사 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등 충실히 목회했으나, 많은 성직자들은 역병의 기간에 도피하기에 급급했다.

 

잉글랜드의 요크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주교좌성당 참사회원 중 1명만 남고 대주교와 고위성직자들은 모두 도시를 떠나버렸다. 성직자들이 도피하면서 흑사병으로 임종하는 신자들의 장례 미사를 집전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교회는 장례미사를 베풀 성직자가 없을 경우 남자 평신도가, 남자 평신도가 없을 경우 여성 신도가 집례하도록 했다.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위정자들과 의사 들도 도피를 택했고, 백성들은 어떤 도움도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사제, 수도사, 의사, 가족과 친척, 친구 모두 감염의 두려 움으로 나서지 못했다. 환자들은 혼란한 상태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장기간의 전염병과 심한 가난은 성직자들의 심령을 피폐하게 했다. 일부 성직자들은 술과 노름을 즐기며, 독신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교회의 재산을 함부로 남용했다.

 

많은 사람들은 “흑사병을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성직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했다. 백성들은 죽음 앞에서 양떼를 버리고 도망가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됐다. 그들은 교회에 의지하지 않고 서로 장례를 치러주며 죽음을 스스로 해결했다.

 

흑사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과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옆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춤추고, 결혼하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이러한 대혼란과 좌절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을 갖게 했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사회의 종교와 체제에 대해 의심하게 했고, 계몽주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김용국 교수 / 한국침신대 신학과(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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