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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를 향한 노래’

찬양 속 바이블 스토리-1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예수님 이전의 구원의 문제, 인간의 불순종을 미리 아신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설치한 이유, 네피림의 정체,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 사탄의 배반의 죄의 출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및 사울왕의 구원의 여부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때때로 지명도 높은 신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곤 하지만, 그 신학자들 역시 유한한 인간의 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그들의 주장이 곧 바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역사상 가장 머리가 비상한 위대한 신학자로 평가받는 어거스틴(Augustinus)’ 조차도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많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난제들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려고 성경에 신비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므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놓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단정 짓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히브리서 6장에 이미 받은 구원도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듯한 구절이 있어서,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하는 말씀이다.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아르미니안주의 의하면 자신의 배신의 고의로 인해서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이라고 하는 칼뱅의 예정론에 의하면 한번 받은 구원은 취소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구원을 취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번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번복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번 받은 구원의 취소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누구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므로 취소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겠는가.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예정론에 입각해서 구원의 취소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입장에 선다 할지라도, 히브리서 6장에 구원의 취소가 있을 수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 이 귀한 자리에 이러한 말씀을 썼을까 하는 성경의 의도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받은 구원은 결단코 취소되는 일이 없으니까, 주님을 배신해도 된다든가, 믿음을 버려도 된다든가, 내 마음대로 죄 지으면서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 하는 등 구원 이후의 타락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룩한 의도 말이다.


구원파 수뇌부와 함께 생활하다가 회개하고 침신대 교수를 재직했던 어떤 분이 구원파의 수뇌부 사람들은 대단히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삶을 살면서도 결코 죄의식이나 죄책감 없이 산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방종해도 되고 타락해도 된다고 하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받은 구원에 대한 취소는 결단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지나친 자기 확신은 자칫 구원파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물론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의 취소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자신의 부도덕한 삶이나 자신의 비윤리적인 삶을 합리화하여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결단코 구원의 취소는 없을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고 하는 자의적 교리를 내세우며,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들에게까지도 구원은 계속해서 유효해야 할까 하는 히브리서기자의 거룩한 영적 노파심마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야고보서가 지푸라기가 아니듯이 히브리서6장에 기록된 말씀이 괜히 빈자리나 메꾸려고 기록된 말씀은 아니다. 성경말씀에 구원에 이르는 길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최종 구원의 결정자는 하나님이시다. 최종적인 구원의 결정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믿음의 자세이리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노주하 목사 찬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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