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내가 침례신문에 입사한 지 드디어 1주년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초교파 신문에 몸담다 처음으로 교단지에 들어와 적응을 위해 종종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한 바퀴를 돌았다. 신문사 입사 후 두 가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것은 “범 기자는 교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와 “침례신문은 읽을 게 없어서 안 봐”라는 내용이다. 전자의 경우 직접적으로 들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나 후자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사무친다. 물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내 딴에는 읽을거리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기사를 썼다가 ‘빨갱이 기자’라는 항의전화만 잔뜩 오니 말이다. 혹시나 교단 정치관련 어느 한쪽 파벌의 손을 들어주는 기사를 원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마음 접으시길 부탁드린다. 침례신문이 정론으로 나아가야지 전쟁의 도화선 혹은 도구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교단 목회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침례신문이 읽을거리가 풍족한 신문이 되도록 동참해달라는 마음이다. 목회를 하면서 느꼈던 은혜를 나누고 많은 분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한 선교단체가 제주선교 110주년을 기념해 제주도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5일간 선교대회를 열고 이후에는 제주도 각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단순히 행사만 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위해 사랑을 전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대회 현장 사진 하나가 문제가 됐다. 무대 뒤편에 위치한 새별오름에 ‘지저스 제주’(Jesus Jeju)라는 글이 영어로 새겨져 있던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전후사정은 일단 제쳐둔 채 “개념 없는 기독교인이 새별오름에 몰래 올라 조형물을 설치했다”며 분개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대단한 건수를 잡은 듯 했지만 사실 반응은 미미했다. 제주 예멘난민 이슈에 묻힌 것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산을 깎아 내린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이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이슈화는 실패한 느낌이다. 안타까운 점은 글자가 ‘지저스 제주’가 아닌 다른 문구였다면 이렇게 반응했을까하는 점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덮어놓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무리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저스’라는 이름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슬프게 다가온다. 최근
#1. 항공사 갑질 사태 최근 국내 항공사 양대산맥인 K항공과 A항공 관련 갑질 문제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K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K항공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을 상대로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킨 회장 부인 이모 씨 등. A항공은 기내식 문제로 언론에 십자포화를 맞았다. 여기에 A항공 회장의 승무원 교육생 ‘기쁨조’ 동원 의혹까지 불거져 곤혹을 치르고 있다. #2. 신학교 시간강사의 갑질 교단 신학교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강의를 돕던 여학생에게 수차례 폭언과 모욕, 심지어 수업 중 질문을 하자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2분 동안 손 들고 서 있어라”고 벌을 세웠다는 것이다. 해당 여학생은 자신이 겪은 폭력에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학과장에게 ‘경위서’를 제출했고 학과장은 학생의 경위서를 첨부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서면을 학교 관계자에게 제출했으나 “그 학생 마음이 여려서 그런 것”이라며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3. 교회 내에 존재하는 갑질 한 기독교 월간지에 교회 사찰집사들이 겪었던 갑질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사찰집사
몇몇 교회에서 후임 목회자 청빙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고육지책으로 각자 방법을 찾아가며 기도하고 있지만 이토록 사람이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만 앞선다. 물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교회 입장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요하는 담임 목회자 청빙이 쉬운 문제는 아니리라. 차세대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비단 우리 교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촉망받던 젊은 목회자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전임 목회자의 영향력 때문에 실력이 있음에도 목회를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임 청빙 문제로 분열을 겪는 교회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좋은 병사가 있으면 평범한 지휘관이라도 좋은 결과를 내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직 뛰어난 지휘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뛰어난’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선 교회들이 후임청빙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도록 투자해야 한다. 먼저 개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젊은 전도사나 막 안수를 받은 목회자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역할은 대개 교회학교나 대학청년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 내 좀 더 다양한 역할을 경험케 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총회나 지방회 차원에서도 안수주고 인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차세대 리더를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항상 의문을 품던 것이 있다. 예배 후 식사시간에 나누는 집사님들의 대화에 신앙관련 주제는 없고 항상 자녀 교육이나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들만 즐비했던 것이다. 대학생 시절 CCC에 몸담았을 당시 어떤 자매님이 모임에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를 들어보니 신앙공동체에 신앙 이야기는 없고 항상 나누는 대화들이 연예인 가십이나 어떤 영화가 재밌다거나 그런 내용들 뿐이라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국가조찬기도회를 보면서 문득 위에 언급한 두 사건들이 떠올랐다. 현장을 취재했던 후배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 축사가 오히려 설교 같았다”라고 했고, 어떤 이는 “대통령은 성경을 이야기했고, 설교자는 정치를 이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뜨거운 이슈였다. 기도회 전부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을 말리는 청원이 등장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행사 당일, 문대통령은 기도회가 열리는 일산 킨텍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축사에서 희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회가 그동안 나라의 자유와 진리를 위해 싸워왔던 숭고한 여정과 신사참배 거부로 고초를 겪은 조수옥 전도
방어기제의 사전적 의미에는 억압·반동형성·투사·퇴행·승화·부정·합리화 등이 있다. 억압은 원하지 않는 생각·감정 등을 의식으로부터 끌어내어 무의식 속으로 억눌러버리는 것이다. 투사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감정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승화는 본능적인 욕구를 비본능적인 통로를 통해 변형시켜 분출하는 것이다. 부정은 고통스러운 사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교단 내에 이런 방어기제가 유독 심한 부류가 있는 것 같다. 한쪽은 이미 ‘가짜뉴스’라는 여의도의 창을 통해 다뤘고 최근 또 한 부류가 심한 방어기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말하고자 한다. 침례신문은 지난 1월 20일자 신문에 ‘침신대 지원 미달 충격’이라는 기사와 함께 침신대의 위기를 우려하는 사설을 보도했다. 반응이 활어회처럼 싱싱했다. “기사에 나온 익명의 관계자가 누구냐”, “기사 작성자가 누구냐” 등등 침신대 측은 출처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교단 차원에서 교단 신학교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판국에 침신대의 이런 반응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나 이사회 정상화를 위해 긴급처리권 이사회
어느 교회가 어떤 교회성장프로그램 관련 세미나를 한다고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교회 담임목사는 “우리교회는 80%가 청년”이라며 자랑삼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 또한 서울에 처음 입성했을 당시 고향교회 누님을 통해 그 교회를 잠깐이나마 다녔기에 청년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율이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는 좀 놀라웠다. 청년이 80%라는 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 수평이동에 의한 부흥이 아닌 새신자들의 비율이 높다면 그만큼 축복된 일이 없을 것이다. 아쉽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새신자보다는 모태신앙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 듯 하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신앙의식조사 발표에 따르면 전도에 의한 최초 교회 출석 비율은 2012년 74.9%에서 2017년 59.4%로 급감한데 반해, 모태신앙은 2012년 15%에서 2017년 30.1%로 상승했다. 모태신앙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서는 불신자 전도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모태신앙만으로 구성된 교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회에 새신자가 오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특히나 교회의 동력이
지난 주말 영화 ‘1987’을 봤다. 요리하다가 냄비도 태워먹어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에 겸사겸사 외출을 하며 예매를 했다. 한쪽에서는 빨갱이 영화다 한쪽에서는 젠더감수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마초적 영화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뛰어넘는다면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먼저 군사정권의 압박에도 양심을 지켰던 이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 봤던 중앙대 의사, 화장해달라는 공안수사처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검명령을 내리는 등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를 제공한 공안검사, 사인을 심장마비로 하라는 상부의 압박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국과수 부검의, 고문치사 범인이 세명 더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제공한 교도소 보안계장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이들에게는 등장인물들이 빨갱이에 협조한 천인공노할 사람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들이 어떤 진영에 가담해 고문치사를 세상에 알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직업을 보면 오히려 보수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민주화세력을 다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 생각하기에 ‘이건 아니다’라는
고(故) 최진실 씨 자살 사건은 증권가 ‘찌라시’(정보지)의 폐해가 낳은 결과였다. 이 거짓 정보는 사람들에 의해 공유돼 그 폐해가 더욱 컸다. 이제 가짜 소식이 판치는 SNS에 찌라시와 참 정보를 구분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일명 ‘최진실법’이 생겨도 악플은 없어지지 않았다. SNS에 허위사실을 적시해 침례신문을 음해하는 이들이 있다. J목사의 SNS글로 시끄럽다. 그는 “침례신문을 펼치자 지방에서 악명 높은 목사님의 글이 여과없이 실렸다”며 “내가 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논문을 게재한다면 검증된 논문을 선택해야하지 않는가”라고 힐난했다. 그리고 해당 목사가 신문사에 거액을 후원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논문 게재가 돈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개인적으로 쓴 글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70조 2항)고 한다. 검증된 논문이라는 것이 뭔가? 그리고 누가 논문을 검증하나? 당연히 답은 침신대 교수들이다. 침례신문 편집
여자친구가 있었다.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비전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길 원했고, 그 친구는 전라도를 벗어나길 꺼려했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3년 후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수가 고향이었던 그 친구에게 “여수가면 함 볼까”라고 말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때 그 친구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고 나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 쓸데없는 연락을 던졌던 것이었다. 그냥 헤어졌을 때 ‘안녕’하고 깨끗하게 끝맺었으면 좋았으련만 내 인생의 흑역사가 한줄 더 생겨났다. 한교총과 한교연의 통합이 무산되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다. 한교연은 한기연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입장문까지 발표하며 통합 결렬의 책임을 한교총에 돌렸다. 한기연으로 이름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자신들은 한국교회 하나됨을 위한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한기연이란 이름은 한교총과의 통합에서만 그 의의가 있어 한교연의 선택이 그다지 좋은 모양새는 아닌 듯하다. 입장문 말미에 ‘한기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