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정권을 승계하자마자 바로, 어머니의 날(2012년 5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제정했다. 이후, 북한은 매년 11월 16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켜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기서의 ‘어머니’는 김정숙(김정일 생모), 고용희(김정은 생모)를 가리키지 않는다. 김일성의 ‘태양절’, 김정일의 ‘광명절’처럼, ‘어머니의 날’은 왠지 김정숙이나 고용희를 기념하는 날일 것 같은데 아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처, 이설주와 관련된 날인가. 2014년부터 김정은이 전체인민들로부터 ‘인민의 어버이’라고 불리는 만큼, 하지만 이것은 더더욱 아니다. 특이하게도 ‘어머니의 날’은 여성동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에 속한 북한 가정 전체 어머니들을 기념하는 남한의 ‘어버이의 날’과 같은 성격이다. 그런데 올해 창립 72주년을 맞는 여성동맹 창립일은 11월 18일이다. 상식적으로 여성동맹 창립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할 법도 한데, 김정은은 그러지 않았다. 여성동맹으로의 쏠림방지용 같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북한이 영원한 수령으로의 김일성에 맞춰진 만큼, 바로 이날은 김일성이 1961년 제1차 어머니대회에서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날에서
내년 3월 29일부터 3일간 네팔에서 대규모 전도집회가 열린다. 네팔의 기독교 역사의 변혁을 위해 열리는 카트만두블레싱페스티벌은 500여 목회자들이 함께하는 대규모 전도집회다. 네팔은 현재 110만명의 크리스천이 있다. 1951년도에 12가정으로 시작된 이 그룹은 왕가의 전도불허 입장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힌두교 국가인 네팔에서 이러한 성장을 기록했다는 것은 굉장히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이번 전도집회에는 전도방지법 시행 전에 치러지는 집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7월에 열린 네팔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공산당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전도금지법을 제정해 내년 8월 15일 시행토록 했다. 힌두교인을 전도하면 징역 3년형, 개종을 시키면 5년형을 받도록 하는 법안이다. 원래 내년 11월 말로 일정을 잡았던 전도집회도 이 법안 때문에 급작스럽게 3월로 앞당기게 됐다. 전도집회를 주최하는 정태회 목사(DCMI)는 “이번 전도집회는 10만명 동원과 3만명 영접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며 “지난 5000년간 힌두교 국가였던 네팔에서 10만명의 영혼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면 정부가 기독교의 메시지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희
어제 어느 교회에서 수요예배 드렸는데, 강사로 온 분이 브라질에서 한인목회를 했던 목사 의 사모였다. ‘건강한 가정’이라는 주제의 강의라 가벼운 마음에 참여를 했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가 강사를 소개하면서, 남편되는 목사도 함께 왔는데, 담임목회가 아직 15년이나 남았는데, 사임하고 이제 새로 주신 사명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그 사명은 바로 ‘북한선교’였다. 성공적으로 했던 목회를 가차 없이 내려놓고 북한선교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강사도 그 스토리부터 시작했다. 사임하자마자, 두 사람은 800km의 도보행군을 감행했다. 순례코스는 프랑스 파리부터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까지다. 대략 40일 걸릴 것을 26일 만에 마쳤다고 한다. 새벽녘부터 밤늦게까지 오직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발톱이 4개나 빠지고, 무릎관절에 이상이오고 탈진해 몇 번이나 쓰러지고 하면서 그 험한 산들을 넘고 또 넘었다고 한다. 왜 그들은 이토록 모질게 극한의 육체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강행군을 해야만 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온몸을 휘감는 고통 속에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통쯤은 내
김정은이 지난달 10월부터 적극적인 민생행보를 하고 있다. 어제 15일에는 평남 강서군의 금성트랙터공장을 시찰했다. 새로 나온 신형 트랙터 천리마-804호에 대해 “사회주의 수호전의 철마다”라고 하면서 “천리마-804호 뜨락또르 생산으로 만리마시대를 빛내어가고 있다”며 치하했다고 한다(만리마운동을 부르짖는데, 천리마라고 이름 붙여진 트랙터는 난센스다). 김정은이 트랙터 공장에 내린 교시는 생성공정 자동화(CNC화) 및 공장 시설 현대화였다. 2014년에 가라앉았던 김정은의 지도자 이미지인 ‘CNC화의 영재’가 부활할 전조인 듯싶다. 최근에 북한 전역에서 동일하게 외치는 구호는 ‘만리마시대’이다. 그 결정판은 다음달 연말에 평양에서 열리는 ‘만리마선구자대회’이다. 북한은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총비상이 걸렸다. 김정은은 지난 10월 7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이것에 대한 강력한 지침을 내렸다. 이 대회를 고무추동하기 위한 선전선동활동인 음악종합무용공연이 ‘강원도정신’의 대표적 지역인 원산에서 지난 9월 13일 첫선을 보였다. 이 공연팀은 대회가 개최될 까지 전국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할 것이다. ‘강원도정신’은 곧 자력자강을 뜻하는 것으로 김
북한의 여성대표 잡지 ‘조선녀성’(1946년에 창간)은 김일성-김정일 시기에 조선여성들이 가장 흠모하며 따라 배워야 할 인물로 김정숙을 내세웠었다.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김정숙을 계속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8월 15일부로 김정은이 ‘백두산 3대장군’의 반열에 등극하므로 김정숙이 그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김정숙은 ‘백두산 녀장군’, ‘조선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을 ‘조선녀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생모 고영희를 내세우지 못하는 형편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을 승계한지도 어언 7년째가 다가오는데, 조선녀성 잡지에서 고영희의 이름을 찾아볼 수 가 없다. 차례는 물론이고 잡지 내용 중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만큼, 고영희는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인물로 전락해버렸다. 김정일은 생모 김정숙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우상화로의 정점을 찍었는데, 오히려 김정은은 생모 고영희의 존재가 드러날까 노심초사다. 비록, 김정숙을 ‘백두산 3대장군’의 위치에서 끌어내렸지만, 여전히 김정숙을 ‘조선의 어머니’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속사정이 꽤나 복잡할 것 같다. ‘조선녀성’에서 이것이 그대로 반
이번 주 월요일에 우리학교 대학원 북한학과 학위논문 콜로키움이 있었다. 필자는 후배 두 명의 논문에 대해 논찬을 했다. 그 중 한 논문주제가 김정일-김정은 시기 과학정책 및 기술담론을 비교하는 것이다. 논문의 요지는 김정일 시기에는 과학기술이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도구로써 활용된 반면, 김정은 시기에는 체제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북한의 과학기술을 정치적 매커니즘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과학의 정치화’라는 이론으로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북한에서의 과학기술은 북한 특유의 체제 속성상 극단적으로 정치에 종속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김정은의 과격한 도발을 보면서 문득, “만일 김정은이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면 그의 신변에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때부터 김정은의 도발을 체제 유지 및 리더십 공고 측면으로 비중을 두게 됐는데, 현재 북한은 김정일 시기보다 훨씬 강도 높은 비상계엄상태이다. 전시체제로 돌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 지역이 서로 앞 다퉈 미국의 트럼프정부를 성토하는데 여념이 없다. 동시에 김정은 결사옹위 구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김정은의 전략대로 움직여가고 있다. 김정은 리더십 공고
김정은은 자신의 출생 및 성장과정과 하등 관계없는 ‘혁명의 성지’인 ‘백두산 장군’ 반열에 올랐다. 그것도 자신의 조모 김정숙(1917~1949)을 끌어내리고 ‘백두산 3대장군’에 등극했다. ‘백두산 4대장군’이라고 해도 될 법도한데, 굳이 ‘3대장군’에 맞추는 연유는 무엇인가. 2005년부터 줄기차게 ‘백두산 3대장군’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이라고 세뇌 되어온 북한주민들은 이 같은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1998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할 때 열성적으로 선전했던 인물이 바로 그의 생모 김정숙이었다. ‘혁명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로 불리었던 김정숙이 ‘군대의 어머니’, ‘선군의 어머니’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이미 전부터 항일투쟁당시 ‘백발백중 명사수’로 선전되었던 김정숙, 그녀가 총을 든 영웅화(1940년 대사하치기전투에서 김일성을 목숨으로 보위하는 김정숙 동지)와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 동지’(1997년 제작)에서 총을 든 김정숙은 ‘총대중시사상’의 중심 아이콘이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선군사상으로 연결됐다. 또한, 김정일이 육성으로 자신이 어렸을 때 총을 쏘는 방법과 전술, 전법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하면서 김
북한은 8월 14일 백두산 정상에서 제5차 ‘백두산위인칭송국제축전’ 및 ‘백두산태양맞이모임’을 열었다. 이 대회에서 네일 피쯔게랄드 오세안지역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이 ‘2017 백두산선언’을 낭독했다. 그런데 그 선언문에 아주 특기할 사실이 있다. 바로 김정은을 ‘백두산 3대장군’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선언문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칭송한 후에 “오늘날 진보적 인민들은 크나큰 영광과 환희 속에 사상과 령도, 풍모에 있어서 그분들과 꼭 같으신 또 한분의 백두산위인을 맞이했다. 경애하는 김정은 각하(김일성, 김정일도 각하로 표기)께서는…적대세력들의 끈질긴 압박과 제재 속에서도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세인을 놀래우는 만리마의 기적들을 끊임없이 창조하며 백두산대국의 영웅적기상과 무진막강한 국력을 만방에 떨치시고 선군의 보검으로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시는 김정은 각하의 천출위상에 국제사회는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기술한다. 분명, 김정은이 ‘백두산 3대장군’에 포함된 것을 볼 수 있다. 선언문에는 세 가지 선언을 하는데, 첫째는 김일성, 김정일이 자주시대와 더불어 영생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김정은이 인류자주위업을 빛나는
필자가 기고 초반, 2017년 김정은의 신년사를 분석하면서 김정은이 핵무장으로의 핵강국의 위상을 높이는 내용을 인사말 바로 다음에 거론했을 뿐만 아니라 무려 5차례나 반복하면서 오롯이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때 김정은은 각각의 내용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김정은은 정권을 승계한 2012년에 곧바로 핵보유국을 선언한바 있고 북한전체인민들은 그를 ‘세계의 태양’으로 떠받들었었다. 이것은 김정은과 핵이 떨어질 수 없는 운명임과 동시에 핵강국이 그의 리더십의 담보임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ICBM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한 이 시점에는 세계를 손안에 놓고 벌벌 떨게 만드는 대담한 지도자라고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평양 일각에서는 축제의 광란이 지속될 것이다. 비록 벌벌 떨게는 아니더라도, 김정은으로 인해 전 세계가 초긴장, 초비상 상태이다. 초강대국인 미·중간의 간극은 좁혀질 줄을 모른다. 미국이 이달 11일 유엔안보리에서 최고수위의 경제제재인 북한으로의 원유수출 전면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은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중국 전문가 그룹에서는 단기적, 부분적 원유중단은 수용할
2019년은 한국 침례교 선교가 시작된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침례교 역사를 보면, 초창기 자료 부족으로 학문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타 교단 선교사의 기록이나 국가기록원 자료에 동아기독교의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된 사진과 자료는 한국 침례교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는 사료(史料)로,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이정훈 편집장이 국가기록원에서 최초로 찾아낸 것이다. 1900년에 펜윅 선교사가 선교여행 중 말을 타고 마부와 함께 찍은 사진과 신문기사로, 지속적으로 감추어진 한국 침례교 역사자료를 찾아내고 연구하는 노력들이 필요하겠다. 1930년 8월 7일(목) 중외일보에 실린 “세인의 의혹 받는 동아기독교의 정체, 그 조직은 여하하며 주장은 무엇인가?” 기사를 살펴보면, 1930년도의 동아기독교의 교세, 직책, 교단정체와 교회사업(선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당시 세속교육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동아기독교를 아주 이상한 종교로 보고, 부여군 임천면 칠산침례교회 장석천 목사를 찾아와 인터뷰하는 내용의 기사를 소개한다. 펜윅 선교사는 1926년 대화회에서
북한지상교회를 수정주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기독교’로 평가하는 학자들은 북한지상교회 모델로 중국의 삼자교회(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꼽는다. 그 주요근거로 조그련(조선그리스도연맹)이 1980년에 중국에 대표단을 파견해 중국교회를 관찰하고 자문을 구했다는데서 찾는다. 또한, 중국 정부가 1981년 삼자교회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발간한 것을 모방해 북한당국도 1983년, 1984년에 지상교회들을 위해 신약전서와 구약전서를 펴낸 것에서도 찾는다. 그 외에도 교회운영 및 관리 등 많은 부분을 답습했다고 평가하며 현재의 북한지상교회는 중국의 삼자교회화로, 순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삼자교회에 대해 입장정리가 우선 필요하다. 삼자교회는 자치, 자양, 자전을 표방하는 교회로 지하교회와 달리 중국정부가 승인한 공식교회다. 2016년 당시까지 그 수가 3800만 명에 다다르고 그 중 청년비율이 27%나 된다고 WCC 실행위원인 어느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대체로 2000만 명 선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국제선교단체에서 초빙한 중국인권운동가 출신 밥푸(Bob Fu)목사의 강연을 들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2013년 시진핑 정부 들어
어느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책을 내면서 북한 지상교회를 ‘사회주의적 기독교’로 평가했다. 책의 저자도 기술했듯이 이러한 평가는 북한 교인들의 자발적인 모색을 전제로 한다. 즉, 북한지역 기독교인들이 해방 후 사회주의를 처음 만나 수용, 갈등, 대결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다가 6.25전쟁 후 분단이 고착되면서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생존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로 북한 사회에 적응하는 사회주의적 교회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 주요논지다. ‘사회주의적 기독교’는 사회주의체제 내에서 생존을 모색하면서 기독교 성격 및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변화를 책의 저자는 자발적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이러한 시각(관점)을 ‘수정주의’(북한 중심적)라고 칭한다. 하지만, 면밀히 검토하면 자발적이기 보다 피동적인 것에 가깝다. 1970년대 북한정권이 대남통일전선전술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기독교를 활용하고자 했다. 1960년대 중반, 북한의 종교들을 완전히 제거했던 북한정권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중대 전환점을 맞아 북한 종교들의 활동을 재개 시켰다. 이때 「조선그리스도연맹」(조그련)의 역할은 남한 내 반정부 기독교
북한에 지하교인이 존재하는가? 북한학자로서가 아니라, 과거 북한 선교사로 대답한다면 “yes” 이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중국 땅에서 재중탈북민 사역을 할 때 조선족 사역자들로부터 수없이 들었고, 직접 보기도 했으며 필자의 선교단체를 통해 신앙을 가진 후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사실, 필자와 함께 사역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임애란 선교사는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일대에 약 80여명의 북한제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평양과도 선이 닿아 있었다. 그 당시 필자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던 상태였고 북한학이라는 학문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안타깝게도 임선교사가 너무나 갑자기 소천해서 그의 사역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그의 사역자체가 초대교회를 방불케 할 만큼 성령의 역사가 강했던지라 마땅한 후임자가 없었다. 그렇게 그의 사역은 묻혀버리고 북한 지하성도들과의 네트워크도 끊어져버렸다. 그들 일꾼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문득 생각날 때 마다 참으로 주님께 송구하고 그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한때, 필자는 동북지방 조중변경지역에서 한창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사역을 했다. 어느 날 시내에 볼일
모 일간지 군사전문기자가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에 관련된 글을 지난주에 썼다. 그는 북한의 공격 시, 대한민국의 방어 및 공격 군사장비 체계를 자세히 기술하면서 인명피해가 다른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숫자보다 훨씬 낮을 거라고 제시했다. 무조건적인 전쟁공포증, 기피증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자는 전쟁공포증이 북한 김정은이 ICBM을 발사하고 이후, 6차 핵실험을 해대도 방조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적은 인명피해는 괜찮은 거냐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비판했고 다른 이들은 전쟁 강박증, 전쟁 호전광이라고 거친 언사들을 쏟아냈다. 국내 진보좌파 진영은 해마다 5·18 광주항쟁 및 6월 민주항쟁 등을 기념한다. 민주, 자유, 인권을 외치다 희생당한 이들을 온 국민에게 기억시킨다. 독재정권, 군사정권에 피로 맞서 이루어낸 소중한 자유임을 선포하며 승리를 자축한다. 이토록 국내에서는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자칭 민주투사들이 이상하리만치 저 북녘 땅에서 자행되는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저 북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 생지옥 같은 장소에
안녕하세요, 선교동역자님! 저희는 불가리아에 와서 만 3년이 되어가는 시점인 지난 5월 초에 집시촌에 가정교회를 개척하게 됐습니다. 먼저, 이곳의 사역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는 다른 민족들은 전혀 살지 않고 5-6만명의 집시들만 살면서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술, 담배, 마약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들어가기에 꺼려하고, 이곳의 선임 선교사님들도 저희에게 부정적으로 말하던 지역입니다. 사실, 5년 전의 통계에 따르면 5만 명의 주민 중에 마약환자가 만 명이나 된다고 듣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이곳에 먼저 와서 섬기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여러 번 들었지만, 주님은 저희에게 그곳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게 하시면서 마침내 그곳에 저희의 사역을 열어주셨습니다. 선임선교사님들 중에 집시교회들을 위해서 많은 예배당을 지어주면서 간접적인 선교사역을 펼친 분은 있지만, 직접 그곳에서 전도하면서 사역을 펼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남다른 은혜를 주셔서 집시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