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례교단은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선교사가 1889년 12월에 내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침례교회(동아기독교)는 북한에 60개, 남한에 40개, 재만・재러에 150개의 교세를 형성했다. 이는 선교지 분할협정(comity)으로 인해서 장로교와 감리교는 서강동약(西强東弱)의 특징으로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에 강한 교세를 형성했지만, 우리 침례교단은 원산 총부를 중심으로 함경남북도에 교회를 집중적으로 세운 동강서약(東强西弱)의 교세를 형성했다. 1945년 해방된 지 3년이 지난 1948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이 된 이후 북한의 침례교회(동아기독교)는 해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교회는 침례교를 비롯해 장로교・감리교는 모두 사라졌고 북한 당국이 공인한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외에 가시적 교회는 사라졌다. 그러나 두 가지 형태로 북한에서 교회는 존재하고 있다. 그 첫째는 분단 이전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과 그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그루터기 교회’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급성장한 새로운 교회의 형태인 ‘지하교회’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90년대 중반 이후 남한으
존 로스는 조선어(한글)를 몰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고려문에서 조선인들을 만나더라도 복음을 전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이응찬’이었다. 이응찬은 무역 상인으로 조선에서 물건을 배에 싣고 중국(청나라)으로 가려던 중, 압록강에서 풍랑을 만나 모든 재산을 잃었다. 비록 그는 겨우 살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과 허탈감 속에서, 고향에도 못 돌아가고 하루 끼니를 동냥하며 고려문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문에서 서양 종교를 전하는 양인(洋人)에게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응찬은 배고픔에 존 로스를 찾아온 것이다. 존 로스는 행색이 초라했던 이응찬을 보고, 더구나 그의 사정을 듣고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당시 존 로스는 당시 이응찬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중인계급(中人階級)에 속하는 사람 하나가 배에 물건을 싣고, 고려문(高麗門)으로 오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다가 그만 갑자기 강한 서남풍(西南風)을 만났다. 그 배는 전복되었고, 물건은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 물건 임자는 목숨은 건졌지만, 알거지가 됐다. … 비참한 환경에 놓여 있을 때, 그 사
엄마에게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다 줬다. 못다 핀 꽃봉오리 사이로 노란빛을 야금야금 드러내며 한동안 비어있었던 유리병을 채웠다.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엄마는 노란 꽃을 볼 때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예쁜 프리지어 이야기를 해왔을 것이다. 꽃집을 나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한 시간 동안, 창밖의 쏜살같이 지나가는 어지러운 풍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자 옹기종기 모인 찬란한 꽃봉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사이로 보이는 노란색들이 엄마 얼굴을 서물서물 떠올리자 가슴이 시큰하게 저며왔다. 우주의 9번째 자리를 채우던, 그러나 태양계에서 쫓겨나 영원히 이방인이 된 소행성. 나는 명왕성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도저히 맞물리지 않는 두 문짝이 서로를 자꾸 긁고 밀다가 생겨난 부스러기처럼 이곳저곳을 굴러다녔다. 세 살 때부터 따로 살았던 부모님, 두 사람이 다시 함께 살게 된 후로도 밥 먹듯이 쌌던 이삿짐. 뿌리내릴 새도 없이 나는 어떤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부표 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외로웠고 지긋지긋했다. 겨우 한 가족이 자리를 잡아 같은 동네에 산 지 두 해를 넘기자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전 세계 이용자가 5억 명에 달하는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에 따르면,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다음인 다섯 번째로 인기 많은 외국어다. 그만큼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1위다. 구글 트랜드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구글에서 한글로 검색하는 총량은 최근 5년 동안 3배 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언어학과에 따르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전 세계의 대학교 수는 1991년 151곳에서, 2022년 1400여 곳으로 무려 9.3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어의 영향력이 점점 세계화가 되는 점이 감개무량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라는 90년대 유행했던 말처럼, 현재 한국어의 세계화 돌풍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감사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지만, 한글의 띄어쓰기를 최초로 교재에 도입하고, 신약성경을 한글로 최초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가 가장 많이 떠오르는 시점이기도 하다. 물론 한글 창제의 주역인 세종과 그의 자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
조선선교를 준비하는 존 로스는 조선의 무역상을 찾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개신교단 중 세계에서 주류 교단인 침례교단은 한국에서 왜 이리 교세가 약할까? 왜 한국에는 장로교단이 득세할까? 이것에 대한 이유들은 여러 가지 난무하다. 이에 대표적인 몇 가지를 간단히 열거하자면, 첫째는, 일제 강점기 때 장로교단은 신사참배를 했는데, 침례교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일제의 탄압을 받아 교세가 줄어들었던 점. 둘째는, 침례교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펜윅 선교사가 타교단 선교사와는 다르게, 한양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방 및 외각에서 활동했던 점. 셋째는, 침례교 선교사들이 한양 외 지역에서 활동했을 뿐더러, 타교단 선교사에 비해 의료 등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점. 그래서 한양에 병원이나 학교 등을 세워 기관사역을 하지 않았던 점. 때문에 당시 고종을 비롯한 조정 관리들과 친분이 없어 조정의 여러 지원을 받지 못했던 점. 넷째는, 침례교의 개교회주의 때문에 조직력이 약했던 점. 다섯째로는, 침례교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동아기독교 1921년 명칭 변경)의 설립이 1906년이라, 타교단보다 조직형성이 늦어졌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 가지 설과 이
안녕하세요! 저는 바른목양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철민 목사입니다. 바른목양교회는 창립 4주년을 맞이한 작은 교회입니다. 오직 영혼을 생각하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고난과 인내의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7월말 우측 팔과 다리에 위약감이 발생해 병원에서 MRI 검사를 한 결과, 뇌종양으로 판정을 받아 상급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조직검사를 포함한 수술 시행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조직검사 시행없이 임상적 추정으로 방사선과 항암, 약물치료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뇌종양의 상태나 정확한 진행 사항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직검사조차 할 수 없는 부위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이 질병은 하나님이 고쳐주시리라 믿으며 기도합니다.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돌리며 쓰시는 동역자로 빚어지게 하소서. ◎ 두고 온 교회(바른목양교회)와 성도, 가정과 자녀들이 인내하며 성숙하고 성장하는 광야학교가 되게 하소서. ◎ 오직 믿음과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고 부인봉 목사(대위)는 육군 3사단에서 침례교 군목으로 임관해 군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순직하셨다. 그는 박준택 목사와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64년 입학 동기생이었다. 현재 살아계시면 85세이시다. 그는 1967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사병으로 전역했음에도 군 복음화의 귀한 사명을 깨닫고 1967년도에 군목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아 1968년에 3사단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군복음화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환경도 열악해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강원도 철원에 있는 3사단에서 군목 사역을 시작했다. 1969년 3사단의 23연대(현 여단) 군목으로 예배와 병사들의 신앙전력화에 열정을 담았다. 그러던 7월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주일 날, 부인봉 목사는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그 당시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를 가는 중에 군용트럭과의 불의의 사고로 1969년 7월에 순직하게 됐다. 군 부대는 그의 안타까운 순직을 기념해 장례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사병이었던 박준택 목사는 공병대대 연병장 텐트를 치고 장례식 위원 병사로 대대장의 임명을 받아 장례식을 주관했으며 침례교 총회장과 임원들이 참석해 함께 위로의 시간을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기 직전, 민중들에게 던진 성경책(한문)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낳았다. ‘박춘권’은 자신의 칼을 맞고 죽어가는 서양 사람이 건네주는 책을 처음엔 받지 않았으나, 상황이 끝나고 돌아갈 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가져갔다. 성경을 정독한 그는 후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 안주교회(평안남도) 영수(장로)가 됐다. 그의 조카인 ‘이영태’도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됐고, 훗날 한국어성경 3분의 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11세(12세)였던 ‘최치량’은 작은 아버지와 제너럴셔먼호의 상황을 보러 왔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던진 성경 3권을 주웠는데, 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두려워 성경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한 권을 친분이 있던 영문주사(당시 군 위병소장) ‘박영식’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성경 종이의 질이 너무 좋아 한 장씩 뜯어 자기 집의 벽지로 사용했다. 어찌 보면 세계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된 집이 아닐까 여겨진다. 박영식은 벽지의 말씀들을 읽다 감동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성경책을 전해준 ‘최치량’도 어른이 되어, 나중에 성경으로 도배 된 ‘박영식’의 집을 구입
오늘 우리는 심각한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인 지구 환경을 돌보는 사명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했고, 전 세계인과 함께 지구의 평균온도를 상승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후 위기에 둔감하고 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지구의 기온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봄 이상고온으로 봄꽃 개화 순서와는 달리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개화했고, 지구촌에는 올여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여 폭염과 홍수, 가뭄 등 기록적인 기상이변이 예상된다. 이러한 기후 위기는 인류 생태계에 재앙이 되어 거주와 생존 불능의 지구를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는 정부와 지자체와 기업이 감당할 대응 과제를 넘어 이제 국민의 과반을 차지하는 종교계가 힘을 보태야 할 과제가 됐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환경을 돌보고 회복시킬 사명을 띤 우리 한국교회의 최우선 사명이며 성도의 실천할 과제이다. 세계는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해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 1.5℃를 목표로 하는 탄소배출 최소화를 약속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11일, 2050 탄소중립
제너럴셔먼호는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해 총 24명이 타고 있었는데, 불길을 피해 몇 명이 가까스로 뭍으로 헤엄쳐 올라왔다. 배에 불이 나기 전에 토마스 선교사는 한문 성경을 평양 군민에게 던져 주며 조선어로 “야소(예수)를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던진 한문 성경을 12살의 어린 소년 최치량이 3권을 습득해 평양성 관리인 박영식에게 줬다고 한다. 이들은 훗날 평양 복음의 초석이 된 인물들이 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제너럴셔먼호 승조원들을 생포해 협상의 카드로 쓰려고 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처형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죽음이 목전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관민들에게 성경을 나눠 줬다.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그러나 그에겐 두려움이 없이 주변에 있는 평양 관민들에게 ‘야소(예수)를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조선에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조국의 대적들의 처형을 맡은 것은, 제너럴셔먼호에 붙잡혀 감금된 무관 이현익의 부하 박춘권이었다. 나중에 그는 이현익을 구출하고 제너럴셔먼호 전멸작전에 공을 세워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토마스 선교사를 처형하게 됐는데, 박춘권은 순교 당시
조선행이 좌절됐던 토마스 선교사의 눈앞에 나타난 ‘제너럴셔먼호’는 기회였다. 제너럴셔먼호는 민간상선이었다. 19세기는 서구 열강에 의한 아시아의 개항 및 식민지화가 극에 달한 때였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민․관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아시아를 개방시켜 이권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아편전쟁 등의 사건으로 중국과 일본도 개항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민간상선인 제너럴셔먼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조선을 개항의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제너럴셔먼호의 미국인 선주, ‘프레스턴’은 조선을 미개국(未開國)으로 여기며, 조선 개항을 선점하여 한몫 잡을 생각이었다. 그는 배에 보급품을 채우고, 선원을 모집하기 위해 중국에 기항했다. 그러나 기항의 주된 목적은 무엇보다 용선계약이었다. 용선계약은 선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무역회사 등)가 선박회사로부터 선박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가리킨다. 선주 프레스턴은 영국 회사인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교역할 상품을 싣고, 그 다음으로 조선어 통역관이 필요했는데, 메도스 상사의 알선으로 인해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가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결국 토마스 선교사는 미
1997년 제86차 교단 정기총회가 한국침례신학대학교에서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신학교에 입학한 첫 해였고 교단 총회가 진행되는 상황이 궁금해 총회 회무를 참관했다. 회무 참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안건 중에 하나가 총회 차원에서 사회복지법인 설립의 건이 의결됐다는 것이다. 신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은 침례교가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교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교단 내에서 교회의 봉사와 사회복지사업을 총괄하는 부서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와 사회봉사의 약 70% 이상은 교단이나 교회가 설립한 재단, 기독교 단체 혹은 기독교와 연관된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중 교단 차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구세군과 감리교단, 성공회 등이라고 할 것이다. 구세군과 감리교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복지법인을 설립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복지 욕구를 해결하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사업과 봉사활동, 사회적 책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예장 통합교단과 합동교단도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구세군의 경우 유지재단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자선냄비 모금
영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은 침례교와 구세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거의 모든 개신교파가 시작된 영육 부흥의 땅입니다. 말씀을 사랑했던 센스 어필 오감설교의 대명사 찰스 스펄전 목사를 지근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교의 선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요한 웨슬레는 설교할 강단도 교회도 없을 때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세계는 나의 교구다(All The World is My Parish)라고 외치며 전도했다. 최근 필자는 영국을 탐방하면서 영국민과 만나는 세계인들에게 성경과 설교, 찬양이 선교적 유튜브 명함을 건넸다. 그들에게는 무명의 목사일지라도 세계 언어로 번역이 제공되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중보하며 복음을 건네면서 역사적 현장을 밟고 다녔다. 영국은 한 때 전국민이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때가 있었지만 현재는 1% 내외의 소수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키고 전수하고 있는 땅이다. 전세계에 신앙의 꽃을 피웠던 나라이기에 우리가 흠모하는 땅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울 이후 “남은 자”를 철저하게 구별시킴으로 역사해 오신 하나님 복음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탐방을 기획하며 그들의 성정을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목회자가 되고 침례교 목사가 되면서
침례신문사에서 교회건축세미나를 진행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서울지역 세미나에 등록해 참석했다. 교회건축 설계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재개발과 재건축 대비 등 교회건축 길을 볼 수 있었다. 교회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고, 가장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하는 요인이 건축자금 부족이다. 교회건축 자금 부족함으로 인해, 목사와 교회는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찾는다. 또 다른 한 문제는 시공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교회건축 시공사들이 교회건축 중에 공기연장과 추가자금 요구, 그리고 설계변경 등으로 추가자금 투입으로 인해 교회와 목사들을 너무 힘들게 해 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혹은 팁을 알려줬다. 첫째, 설계계약을 할 때 ‘준공 때까지 설계를 책임진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라는 것이다. 둘째, 건축비를 지급할 때에는, 계약때에 10%를 주지 말고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 주고, 착공때에 20% 주고, 준공때에 30%를 주는 것이 사기를 덜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설계와 건축과 준공에 이르기까지, 총괄 시공할 수 있는 하나의 시공사와 계약하는 것이 건축비용이 덜 들어간다고 했
어느 덧 뿌리 이스라엘 2차 원정대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해안 평원 사이의 완충지대 쉐펠라에서 소렉, 엘라, 구브린, 라기스 등지 곳곳을 삼손, 다윗과 골리앗, 르호보암, 미가, 히스기야, 이사야와 함께 걷고 뛰었다. 성지순례의 원론적인 목적이었던 성경 속 지명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 말씀을 펼칠 때보다 생생하게 그 날의 그 땅을 감각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는 바랬고 그 목표는 다섯째 날을 지나며 여정과 함께 무르익어 갔다. 뿌리의 순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유연함, 그 혜택의 정점 또한 이 날의 여정 속에 존재했다. 머물렀던 지난 숙소들이 괜찮은 수준이었다면 단 하루 묵었던 데이비드 사해 호텔(David Dead Sea Hotel)은 사해의 빼어난 전경이 전 객실에서 조망되는 위치에 다양한 메뉴를 구비한 식당을 갖춘 곳이어서 어른 아이 모두의 열광을 이끌어낼 만큼 훌륭했다. 떠나올 때의 아쉬움이란…. 이동 거리를 단축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최소화 할수록 여행의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점이 순례가 묵상의 물길을 터주고 그 길이 막히지 않도록 일련의 연결성을 유지하는 여정이어야 한다는 점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일정을 안배한 여행사와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