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옳은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아직은 이런 구절까지 와 닿을 나이는 아닌데, 왠지 요즘은 사무엘상 7장 12절이 참 와 닿는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Thus far has the LORD helped us.)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여기까지 하나님 날 도우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없었을 거라는 고백. 생각해보면 너무나 정직한 고백이다. 아마도 이는 일주일 전, 어느 권사님 칠순예배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궐동굴다리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사는 오산시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며 동서로 지역을 두 쪽 내는 경부선 철길이 있다. 그래서 오산의 동(東)과 서(西)는 고가도로나 굴다리 형태로만 소통되는데, 궐동굴다리도 그 중 하나다. 사실 폭은 얼마 안 된다. 해봐야 3차선 도로에 작은 인도 하나 있으니 뭐 20미터나 채 될까? 경부선의 총 길이 445km에 비하면 1/22,500밖에 안되는,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그 굴다리는 절대로 무시되면 안 된다. 정말이지 만의 하나라도 그것이 부실해지거나 무너지면, 대한민국 국가기간망에는 상상하기조차도 끔찍한…
헤럴드 브리슨(Harold T. Bryson) 박사는 “성경에 충실한 설교는 기본적으로 충실한 본문 주해에서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세대와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에게 연결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자는 본문과 현시대의 청중의 순전한 만남을 주선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본문과 청중 간에 어떻게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적용(application)이다. 그렇다면 적용은 무엇인가? 설교에서 적용은 라틴어의 두 개의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ap는 ‘to’이고 plico는 ‘to knit’(뜨개질하다)라는 뜻이다. 적용은 성경본문과 청중을 연결하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설교대학원 학장인 데이빗 알렌(David Allen)은 “훌륭한 설교는 실제적으로 적용된 강해설교”라고 강조한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 박사는 적용이야말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으로 설교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강조한다. 설교는 단순히 본문 주해에서 끝나면 안 되고 청중에게 적용이 되어야 설교 본연의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을 잘할 수 있는가? 마치 설교자가 본문을 이해하듯 청중을 알아야 한다. 장두
부족하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났지 않느냐?”는 어느 분의 질문을 받으며, 주님의 마음이라고 믿고 진도에 내려와 목회를 위해 기도하던 시간을 회상해 본다. 몇 년 전 생각하기조차 힘든 시간을 몸소 겪은 진도 땅, 그것도 수많은 눈물과 통곡으로 얼룩진 팽목항에서 몇 분 거리에 교회가 있는 마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하신 말씀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마을의 노년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지 못한 마음이 느껴졌다. 민속공연을 광고하는 홍보지에 “굿 보러 오세요.” 공공연하게 적어 놓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교회에서 굿한다”고 말하는 지역이다.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적 무지 속에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슬퍼진다. 복음을 들고 문화가 전혀 다른 선교지로 달려가는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말은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다른 환경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요, 선교사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고령화 되어가는 한국의 농어촌은 연령적으로는 더 어리고 젊은 타 문화권의 선교지보다 변화도 없고 희망도 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환
이외수란 작가가 거미에 대해서 여러 면으로 칭송하는 글을 썼다. 우리나라 거미들은 독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온순한 벌레라고 했고, 부화한 새끼를 위해서 자기 살을 뜯어 먹이며 기르는 에어리 염낭 거미를 예를 들면서 모성애가 숭고하다고까지 극찬했다. 특히 그는 거미줄로 지은 거미집에 대해서 ‘그것은 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투명한 실로 허공에다 섬세하게 드리워 놓은 한 편의 시이며 노래’라고 표현을 했다. 누구든지 거미가 허공에다 거미줄을 친 것을 보면 놀라고 신기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은 견고성이나 영구성 면에선 언제나 형편이 없다. 1995년 6월에 100평 남짓한 예배당을 준공했다. 23년 전 일이지만 그 때 재정난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몇 개월에 걸쳐서 지은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입당을 하고 며칠 지나서 예배당 바깥 한 곳을 보니 왕거미가 거미줄을 쳐놓았다. 얄밉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몇 달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건축했는데 왕거미는 하룻밤 공사로 우리의 예배당에다 자기의 주거용 사업용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이다. 그 날 왕거미와 거미줄은 당장 없어졌다. 단번에 빗자루로 거미줄을 쓸어버렸고 왕거미는…
한국에서 상담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지만, 아직도 상담소의 문턱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민을 왔던 그 당시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사는 해외 거주자들에게 상담이란 왠지 수치감과 의구심을 유발하는 단어이다. 의사를 보러 간다는 말은 시장 간다는 말처럼 쉽게 이야기되고 정보를 나누지만,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는 숨기고 싶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자녀들이 상담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면 바로 가슴이 철렁하다. 정신력과 영성으로 이겨야지, 뭘 상담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린다. 그래서 어쩌다가 상담을 요청하는 ‘희귀한’ 한국 분들의 사정은 의외로 심각하다. 자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해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아동보호기관에게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있기도 하다. 이미 한쪽에서 이혼을 결심한 경우 법적인 수속을 밟을 때쯤 상담소를 찾기도 한다.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이미 모든 것을 잃을 때에야 문제를 깨닫기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과 치유의 역사들을 보지만, 이미 상처 입고 신뢰를 잃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돌이키기 쉽지 않다. 기다리다가, 괜찮다고 자위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가 필요하
회복은 무조건 옳다. 하나님의 복음은 망가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기적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최근 한 선교단체에서 개최한 이단관련 특강에 다녀와서 말했다. “아빠, 세상에는 별의 별 이상한 이단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JMS, 구원파….” 어느 덧 다시 학기말이 됐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캠퍼스의 CCC, IVF, JOY, SFC 등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분주하다. 선교단체 마다에서 개최하는 여름수련회에 많은 학생들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동일하게 분주해지는 것이 이른바 캠퍼스 이단들이다. 이 시기가 되면 구원파는 IYF(IVF가 아님)라는 교묘한 이름으로 각 단과대학 거의 모든 화장실 소변기 위에 여름방학에 학생들이 보람있게 보낼 수 있도록 초청한다. “굿뉴스코해외봉사단”이라는 위장 단체를 내세워서 해외봉사 초청 스티커를 부착하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천지는 UNPO(United New University Peace One)이라는 위장 단체를 내세워서 학생들을 유혹한다. 이 단체는 “새로운 문화로 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멋진 단체명의 의미를 내세우고, 마치 자기들이 U
그렇다면 바람직한 설교는 무엇일까? 좋은 설교는 성경 본문과 오늘날의 청중을 견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설교이다. 성경 본문이 처음 쓰일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말씀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를 통해 의도하신 뜻을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전달해야 한다. 남침례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헤셜 요크(Hershael W. York) 박사는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청중들과 교감을 강조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청중들에게 성경적 정보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 믿는다”라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편향된 설교 접근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침례교회 설교는 어떠한가? 한국침례교회는 대체적으로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학노선을 지향했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성경본문의 계시를 강조하고 연구하지만 실제로 청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은 경향이 있다. 한진환 박사의 설명처럼 “청중을 그저 메시지를 전달받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여길 뿐 그들을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한 변수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침례교 설교도 본문과 청중 간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국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말 중 하나가 4차 산업 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로봇과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등을 융합하는 기술적 변혁의 움직임이다. 미래학자들은 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성년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는 이들 중에 70%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10년 이내에 길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무인자동차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고도의 기술적 변혁은 이미 시작됐고, 사회 각 기관에서는 혁신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기독교 연구기관에서도 근래에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다. 그렇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설교자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현대 설교자에게는 ‘해야 할 일’(to do lists)이 많다. 또한 목회환경이 변화하기에 사역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캠벨 몰간(Campbel Morgan)은 “사역자의 최상의 임무는 설교이다. 우리가 범할 수 있는 큰 위험…
4) 귀납적 개요 설교 본문 : 요한복음 3:1~15 주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중생의 길 서론 : 이 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성공과 업적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삶의 공허감과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I. 수많은 성취와 업적들(과학, 부와 재물, 학문, 지위 등등)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여전히 삶의 목마름과 갈증이 있음 - 수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 인생 - 위대한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 - 본문의 니고데모 이야기 - 그러나 영적인 것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혼란 가운데 있는 인간 - 현실과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인생 - 영적 진리(거듭남)에 어두운 당대의 지성인 니고데모와 같은 현대인들 II. 알 수 없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인생 - 인간적인 능력(돈, 명예, 권력, 쾌락 등)을 의지하여 끊임없이 추구함 - 소유하면(위에 것들) 소유할수록 영혼의 갈증은 고조 됨 - 한국 정치인들의 말로 -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등등 III. 길과 진리 되시는 주 예수님만이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줌 - 모든 사람
우리 교회가 매입한 농지에 지하수를 세 곳이나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업자들이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올해는 그 교회 땅에 교인들이 함께 깻잎농사를 통한 수익사업을 하기로 해 모든 준비를 했는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 지면이 말라버려서 교인들이 깻잎 어린 모를 심는 족족 말라서 비틀어집니다. 고민 하다가 우리 이장 교인 형제님의 트럭을 가지고 와서(저희는 차키를 서로 아무 때나 공유하는 교회입니다.) 800리터짜리 큰 물통을 싣고 바로 옆 교인 하우스에 가서 물을 받아 가져와서, 우리 농사짓는 밭으로 가져와서 일일이 물조리개로 주는, 다시 30~40년 전의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일일이 10리터짜리 물조리개 두통으로 최소 80m 이상 되는 골을 수도 없이 다니며 일일이 물을 주어 거의 90%이상 살렸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생명의 싹이 죽어가는 것을 보니, 견디기 어려워, 8시간동안 점심밥도 못 먹고 시리얼로 대신하며 20kg을 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여러 번씩, 물을 줬더니 집에 들어와 스마트폰 어플에 제가 하루 종일 걸은 양을 보니 8.65km가 찍혔습니다. 그렇게 철야기도회 설교와 기도회 인도를 준비하며 교회당에 왔는데, 다리가…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 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1~12) 위의 “이런 일”이란?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간음한 자들”과 “주를 시험한 자들”과 그리고 “원망하던 자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멸망을 받은 사건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깨우치게”란 단어는 개역개정 성경의 단어로서 그전의 성경의 단어와는 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 이전의 개역한글 성경에는 “경계”란 단어로 써져 있습니다. 그리고 NIV영어 성경에는 “WARNING”즉 “경고”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깨우치게”란 “깨어있어라, 정신을 차리라”는 말로,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딸 때는 따는 데만 몰입해서는 안 되고 감나무 가지가 약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경계”라는 말은 자동차 도로에서 차들이 오고, 갈 때 중간에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선을 무시하고 차선을 넘어가게 되면 가히 상상하기조차도 힘든 무시무시한 사고를 당하
설교 구성 착안 사항 서론은 완성된 이야기로 제시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중간에서 단절됐다. 설교자는 서론에서 청중의 마음에 잃어버림에 대한 생각을 직면하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본문에서 잃어버린 아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잃어버린 상태에서 다시금 발견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것과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형성시켜 준다. 설교자는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수사적 효과를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청중이 잃어버린 상태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기 원했다. 서론에서 중단됐던 이야기는 결론으로 이어져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공군이 잃어버렸던 조종사의 위치를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그 조종사를 무시해 버릴 수 있었다. 그 조종사가 격추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그를 비난하면서 버려둘 수도 있었다. 당신은 공군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그들은 그 조종사를 찾으러 나섰다. 대여섯 대의 항공기와 수십 명의 해병대를 파견했고, 수백만 달러의 돈을 지불했다. 이 모든 것이 한 명의 격추된 조종사, 즉 자신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사람을(작은 아들)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방사투리로 “무엇이 중헌디 쉬었다 가랑께” 졸음쉼터를 알리는 광고 문구가 눈에 띈다. 졸려 눈을 비비면서도 조금 빨리 가려고 달려가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일 것이다. 운전을 하는 동안 눈에 비춘 글귀가 한참을 머리에 맴돈다. “무엇이 중헌디?” 바쁘게 달려가는 걸음 속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 잊고 살아가지는 않았나 반문한다. 웃지 못할 이야기로, 초상집에서 한 참을 울다 “누가 죽었어요?” 물었다고 하듯이 무엇인가 정신 없이 달려가긴 하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언젠가 제 아내가 주님께 기도 드리며 “열심히 했잖아요.” 투정 아닌 투정을 토로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제 아내 마음속에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을 위해 열심했느냐? 반문하셨단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냥 바쁘게 살아왔는데, 주님의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 앞에 대답 할 말이 없어 펑펑 눈물을 흘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일로 15년 넘게 목회자로, 사모로 열심히 목회 한다고 했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그냥 열심만 부렸던 것은 아닌가 회상해…
“목사님! 부교역자로 왜 안 불러줍니까?” “어느 교회에서 이미 사역하고 있다면서….” “그 교회 목사님과 뜻이 맞질 않아서 그만 뒀어요. 불러주면 바로 갈 수 있어요.” 전화를 준 사람은 한 때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했던 전도사였다.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경기도 어떤 지역에서 교회를 창립하고는 얼마동안 개척 교회 사역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만두고는 다시 부교역자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것마저 그만 둔 모양이었다. 그는 나의 개척 교회 목회 시절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면으로 도움을 줬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늦은 가을인데 오리털 점퍼를 한 벌 사갖고 왔었다. “목사님, 곧 겨울이 올 텐데 새벽 기도할 때마다 춥지 않도록 입으세요.” “집사님, 무슨 돈으로 이 귀한 선물을 샀어요?” “삼일 동안 노가다해서 그 품삯으로 샀어요. 이 옷 입고 기도많이 해주세요.” 그는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는데 막노동을 해서 옷을 사온 것이었다.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전쟁을 하려고 이스라엘 군대는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는 베들레헴 요새에 진치고 있을 때였다. 다윗이 목이 말랐는지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현대인들은 직장이나 사회가 짜놓은 스케줄에 의해 무척 바쁘게 살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계의 톱니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는데 나 혼자 빠질 수도 없고 남들은 열심히 달려가는데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며 경쟁하며 살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하는 일이 아닌 다른 것을 해봄으로 몸도 마음도 충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옛날에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질문 하면 흔히 하는 말이 독서나 음악 감상 이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취미도 다양하다. 취미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직장인이나 개인 사업자나 학생이나 가정주부나 사람들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병이 된다고 하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취미생활이 좋다. 생계와 직접 관련이 없고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재밌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신에게 잘 맞는 취미를 찾으면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의욕이 생기고 재미에 빠져들게 되며 성취감도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몰랐던가 싶을 정도로 그 것을 하는 동안은
#장면 1. 계시보다 왕을 원함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는 사사시대를 한 줄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호소한다. 자신들이 이방민족에게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강력한 왕이 없어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사무엘을 마지막으로 사사시대가 종료되고 왕국시대가 펼쳐진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그런 시대가 열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열왕기서나 역대서를 보더라도 하나님 뜻에 합한 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장면 2. 엠마오 제자들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다. 마침 유대민족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구원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던 제자들과 인간을 원죄에서 벗어나게 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두 구도는
“총회비”, “협동비” 논란으로 교단이 시끄럽다. 전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지난해 9월 경주총회에서 총회장 선거가 끝나자마자 회의석상을 떠났다. 대의원들은 ‘총회비’나 ‘협동비’에 대해 관심 없이 지내다가 본보 1월 26자(1308호) 2면 하단에 ‘총회비 관련 개정된 총회규약 제8조 7항 공지’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총회장 박종철 목사 명의로 나간 뒤, 갑론을박이 지금까지 한창이다. 침례신문을 보고 “총회비 논란”을 처음 알았다는 대의원들도 많다. 공지의 주요내용은 108차 회기시작인 2018년 10월부터 월 3만원의 총회비를 납부해야 대의원을 파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총회비 관련 개정된 총회규약 제8조 7항(회원의 권리와 의무)은 “본회에 가입한 교회는 총회비를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각 교회가 자율적으로 정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납부한다. 단, 본회의 공직에 취임코자 하는 자와 1명 이상의 대의원을 파송하는 교회는 총회가 정한 총회비를 납부한 자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적용 방침에 따르면 첫째, 제108차 정기총회에서 개정된 총회규약 8조 7항대로 2018년 10월1일부터 월 3만원으로 시행하며 둘째, 월 3만원 미만으로 개 교회가 총회비를 납
우리 교단의 핵심 사역이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108차 총회(총회장 박종철 목사)는 현재 ‘교회세움협의회’(교회세움)를 구성하고 전국의 개척교회, 미자립교회, 성장 가능성 있는 교회 등에 실질적인 목회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회세움협의회(회장 박종철 목사, 사무총장 이성일 목사)는 단기간의 사역이 아닌 최소 5년간 교회를 지원하고 목회의 다양한 방법들을 제공하는 한편 목회자의 영적 회복을 위해 교단의 각 기관과 지방회가 함께 협력하는 협동의 사역을 표명해 왔다. 지난 1월 24일 교회세움 1차 컨퍼런스를 통해 선정된 200교회의 목회자들은 대전 침신대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 교회세움은 200교회의 선정 이유와 재정 지원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교회세움의 다음 사역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모색했다. 200교회로 선정돼 이날 참석한 목회자들은 교회세움을 통해 현실적인 목회적 혜택을 받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또한 교회세움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 사역을 진행하고 108차 회기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일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박종철 총회장이 이번 2차 모임에서 크게 강조한 것은 ‘신뢰’다. 그동
‘목회자’가 교회분쟁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 분쟁을 유발하는 주된 직분은 담임목사(58%), 원로목사(7%), 부목사(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문제 상담소는 교회 내 발생하는 분쟁의 주요 원인은 교회 리더십의 ‘재정 전횡’과 ‘인사 및 행정 전횡’이라는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또한 2018년 교회 문제로 상담해온 117개 교회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담임목사 때문에 교회에 분쟁이 생겼다는 교회는 68개로 전체의 5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개혁연대는 ‘재정전횡’과 ‘인사 및 행정전횡’은 최근 5년간 교회분쟁 핵심 요소 1, 2순위 항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쟁 유형을 살펴보면 재정 전횡이 21곳(18%)으로 가장 많았고, 인사와 행정 전횡이 19곳(16%), 세습이 11곳(10%), 성폭력이 5곳(4%)으로 집계됐다. 목회자와 함께 교회분쟁을 심화시킨 직분은 장로와 당회였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분쟁 유발에 동조한 직분’에서 장로(당회)가 전체의 3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담임목사(24%) 전도사(7%) 노회(6%) 등이 뒤따랐다. 이는 교회에서 영향력이 큰 직분일수록 다수의 분쟁을 유발시켰고,
이 땅의 대학·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를 두고 시대적 상황의 현 주소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주일학교를 다닌 학생 대다수가 중고등부, 대학청년부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정착하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한 선교단체에서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학청년 복음화율은 5%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청소년이 붕괴된 교회학교 교육은 그대로 청년 사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이 없다’ ‘교회에 헌신해야 할 자원이 떠나고 있다’ ‘중직자들의 자녀들이 교회를 기피하기 시작한다’ 등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겨울과 여름이 되면 교회마다 다양한 대학·청년 사역들을 전개한다. 단기선교를 비롯해 수련회, 비전캠프, 영성캠프 등 수많은 행사들이 치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사역으로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소리는 듣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다음 세대를 세워나가기 위한 디딤돌은 청년들이다. 청소년들의 본이 되고 장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대상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부재 속에 있다. 이들을 붙들기 위해 교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진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