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는 목회 사역이 다양하게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요소에 치중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사명을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는 곳이 바로 농어촌교회이다. 농촌 사회에 목회자가 과감히 들어가 함께 농사를 지으며 한 영혼도 천하보다 귀하다는 복음 전도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북 상금교회(조우영 목사)이다. 올해로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상금교회는 지역사회에 동역하고 헌신하기 위해 열정을 다해 헌신하고 있는 교회이다. 순수한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가족과 같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농촌교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어려움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 면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발전하기 힘든 농촌에서 조우영 목사는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성도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조우영 목사는 “대다수 성도들이 농사를 짓고 있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한 일들을 찾다보니 농사와 관련된 일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고민하면서 직접 농사에 뛰어들게 됐다”면서 “군청이나 농업기술센터에서 전수한 기술들을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이를 연결시켜주면서 성도들의 재정적인 어려움도
국내선교회(회장 유지영 목사)와 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IMB)는 지난 2018년 11월 미자립교회 세미나에 참석했던 교회들을 대상으로 6개월 비전 과제를 제시했다. 최근 대만에서 사역 중인 제프 클라크가 컨설팅을 받고 있는 교회들의 중간 점검을 위해 내한해 국내선교회 유지영 회장과 지천명교회(최덕호 목사), 품앗이교회(이건구 목사)를 방문하고 사역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운동과 복음을 접목해 영혼구령해 지천명교회는 육신의 강건함과 맑은 영혼을 담기 위해 세워진 교회이다. 담임목사인 최덕호 목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아내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에 반영하는 공동체”를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천명교회를 개척했다. 처음 교회 개척 장소는 부부가 생활하던 8평 남짓한 원룸이었지만, 이후 교회로 출석한 한 성도의 학원에서 다시 수원 원천동의 현재 교회 위치인 운동 스튜디오로 옮겼다. 이곳에서 최덕호 목사와 최정민 사모는 주중에는 퍼스널 트레이닝과 필라테스 수업을 진행하며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일에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있다. 지천명교회가 현재 중점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사역은 바로 전도다. 최덕호 목사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운
“개척을 시작하며 여러 번 질문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땅에 교회는 많지만 교회다운 교회는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설교는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주저하다 마음속에 부담을 갖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 개척이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더 많은 교회들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은 바로 이 땅에 교회다운 교회가 세워져 그 교회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동탄지구촌교회 박춘광 목사는 지구촌교회 부교역자로 만 20년을 사역하며 이동원 목사와 진재혁 목사를 통해 양질의 목양사역을 경험하고, 목장사역을 통해 건강한 교회를 꿈꾸게 됐다. 많은 시간 기도하던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에게 있어 안전한 울타리와 같은 대형교회를 그만두고 믿음의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개척을 준비하며 가장 처음에 했던 일은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교회 개척멤버들과 함께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개척지로 선정된 상가 가계약이 어그러지고 무산됐을 때도 원망보다는 기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교회” “오직 하나님 나라”란 뜻을 품으며 사도행전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신영교회(송명섭 목사). 교회 창립 116주년을 맞이한 신영교회는 공주교회(현 꿈의교회) 윤자학 집사가 1903년 자신의 고향인 탄천면 신리(신영리)에 말콤 C. 펜윅 선교사를 초청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신영교회의 전신인 신리교회로 출발했다. 특히 신리교회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교단 총회 전신이 동아기독교 2대 감목으로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해 순교한 이종덕 목사의 고향이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 선교와 간도지역 개척 등의 선교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연해주로 선교를 떠났다가 풍랑을 맞아 순교한 박노기 목사도 이 지역 출신이다. 송명섭 목사는 “이종덕 목사는 우리교회 담임 목회자는 아니지만 원산이나 북방지역을 돌아보고 공주교회를 들러 강경으로 가실 때마다 우리교회를 방문해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위로했다”면서 “아마 우리교회가 선교의 비전을 품고 섬기며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종덕 목사와 같은 분들의 영적인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 총독부의 탄압과 예배당 폐쇄의 아픔을 겪기도 했던 신영교회는 해방과 한국전
“권사님! 붕어빵이 빵빵하네요?” “아유! 목사님! 제가 먹을게 아닌데 더 잘 만들어야죠! 이게 우리교회 얼굴인데요.” 늦가을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회 교육관 주차장에는 두 대의 붕어빵 기계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신정범 목사가 건네주는 붕어빵에 한 번 놀라고 한 입 베어 물고 또 한 번 놀랐다. 크기는 시중 가판에서 파는 크기의 두 배 이상이고 팥은 붕어빵 머리부터 꼬리까지 가득 차 있었다. 붕어빵이라기보다 흡사 찐빵을 먹는 느낌이었다. 매주 목요일 하루 두 대의 붕어빵 기계에서 1000개 이상의 붕어빵이 제작되고 그것을 가지고 인근지역 아파트와 상가, 주택가에 맛난 그리스도의 복음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곳이 바로 천안교회(신정범 목사)이다. 65년의 교회 전통, 전통의 패러다임을 깨다 천안교회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이에 △하나님이 참되게 예배하는 “믿음공동체”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소망공동체” △성도들을 가족 같이 보듬는 “사랑공동체” △사람을 세워가는 “제자공동체” △사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공동체”의 비전을 품고 있다. 신정범 목사는 교회 부임 초기부터 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이 ‘다음 세대’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만큼 다음 세대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유치부를 비롯한 주일학교는 전체 교회의 상당수가 인원 구성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교회도 다음 세대 부흥에 보다 전략적으로 이 문제에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는 최근 다음 세대의 성장을 위해 부산지역교회가 하나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지난 5월 20일에 지역교회 연합 사역인 ‘520다음세대 전도 축제’이다. 교회 연합 전도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 운동의 밑그림은 부산백향목교회 백승기 목사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동안 부산백향목교회는 다음 세대에 교회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백승기 목사는 부산 지역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 “다음세대 부흥”임을 지적하고 이를 연합운동의 결실로 만들었다. 이 행사를 위해 부산성시화운동본부는 전도축제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전도용품과 VIP 전도 선물을 지원했다. 또한 7주간 전도축
"우리교회는 지난 30년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한량없는 은혜 가운데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해 왔습니다. 교회 창립 때부터 그 은혜가 예배를 통해, 특별히 말씀을 통해 이뤄졌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그 은혜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은혜드림교회가 품고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경북 김천은 국가 혁신도시로 선정되고 공공기업(한국전력기술, 한국도로공사, 우정사업조달본부 등)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지역거점 도시이다. 적잖은 인구들이 유입되면서 혁신도시 내에도 종교부지를 허가받아 다수의 교회가 들어선 상태이다. 그중에 혁신도시 내의 종교부지가 아닌 도시외곽에 위치한 고속철도의 철로가 불과 100여m 근처에 지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은 교회가 있다. 도심외곽의 위치한 이 교회는 앞마당이 넓게 탁 트여 있고 교회를 들어서 2층 예배당 입구는 햇살이 환하고 따뜻하게 들어와 아침햇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에 쏟아져 내리기를 소망하는 담임 목회자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이 보였다.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입구부터 교회 출입문까지 들려오는 빗질 소리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교회가 있다.
“목회 사역 도중 주님 품으로 가신 부친을 생각하면서 교회 가족(성도)들이 저의 부모님 같이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여정까지 가족처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은포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은혜의 포구(항구)”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은포교회(이의성 목사)는 교회 창립 때부터 은혜가 넘쳐난 교회는 아니었다. 1955년 당시 교단 캠프를 통해 충남 서산 고북면 사기리가 교회 개척지가 선정되고 광복절 날인 8월 15일에 유영식 전도사와 3명의 성도들이 천막을 치고 교회를 창립했다. 사기리교회 시작한 교회는 1973년 교회 이름을 현재의 은포교회로 변경했다. 교회 이름이 변경된 이유는 사기리라는 어감 때문이었다. 동네가 바닷가에 있다보니 모래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쓰여졌기에 교회가 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포구”라는 의미로 은포교회로 지어진 것이다. 1987년 12월 마지막 주 이요섭 목사가 부임하고 불과 7개월 만에 소천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이의성 목사는 큰 충격을 받고 신앙의 좌절감을 겪게 됐다. 시련의 상처를 극복하고 교회를 섬기다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부친의 소천은 이의성 목사에 있어 가장 큰
◊53년의 역사, 베들레헴에서 거룩한샘으로거룩한샘성천교회는 1964년 12월 24일 심우성 집사의 가정에서 베들레헴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1966년 7월 1대 담임목사로 김동혁 목사가 부임해 마포구 성산2동에 자리를 잡핬다. 2대 담임목사로 강대전 목사가 부임하면서 성천교회로 이름을 바꿨으며, 3대 우제창 목사에 이어 현재는 강석원 목사가 12년째 담임목사로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현재 성천교회는 마포구 상암동에 새성전을 건축해 지난 7월 1일 봉헌예배를 드리며 지역사회에 예수님의 향기를 내뿜기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성천교회는 국내 지역사회와 동역교회를 섬기기 위한 사역은 물론 해외 선교에도 힘쓰고 있다. 해외선교에는 파송 및 협력 선교사들에게 매월 정기적으로 선교비를 지원하고 단기선교 팀 파송 등으로 협력하고 있다. 또한 목장들이 각 나라와 지역을 품고 해당 나라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평신도를 사역의 주역으로성천교회는 강석원 목사 부임 이후 초대교회와 같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추구하며 기존 여선교회와 남선교회 체계를 개편해 셀교회 체제로 전환했다. 또한 풍성한교회의 두날개 양육시스템으로 오랫동안 성도들을 훈련시켰다.
대전꿈의교회 설립배경과 멀티교회 비전 대전 꿈의교회가 세워진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대전에 살고 있던 성도들의 요청과 안희묵 목사가 가진 멀티교회에 대한 비전 때문이다. 대전으로 이사 간 뒤에도 교회의 비전과 철학이 너무 좋아서 계속 공주로 출석하던 성도들이 많았다. 이 성도들은 대전에서 모일 공간을 요청했는데, 아예 멀티교회를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게 된 것. 이에 따라 2008년 11월,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됐다. 정임엘 목사는 안희묵 목사의 멀티교회 비전은 건강한 교회를 사모하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건강한 교회라면 한 곳에 머물러 외형과 몸짓만 커지는 대형교회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복음을 들고 필요한 곳에 나아가는 교회가 돼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건물을 세우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교회다. 대형교회와 멀티교회는 이런 차이가 있다. 대형교회는 한 지역에 큰 건물을 세우고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수직적 교회성장’ 형태지만, 멀티교회는 ‘너희는 가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수평적 교회확산’ 모델이다. 정 목사는 그 멀티교회로의 전환점이 대전꿈의교회라고 강조한다. 많은 목회자분들
신태인교회(조대식 목사)는 신태인 지역에서도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교회로 지역에 잘 알려져 있다. 교회의 사명선언문에도 담겨 있듯이 ‘따뜻한 세상’을 추구하는 사명이 교회 사역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면서 “이것이 성령으로 행한 초대교회의 모습”이라며 당연시 한다. 특별한 구원의 체험…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 울산교회에서 신앙생활의 첫걸음을 시작했던 조대식 목사는 자신이 목회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일에 대해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의외의 길임을 회고했다. 교회를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부흥회 중 복음적인 메시지를 듣고 성령의 감화를 통한 회개와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임재의 체험을 동시에 경험한 조 목사는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다니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강력한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사역자로 변신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제 자신이 철저한 인본주의자였고, 윤리주의자였다.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내가 더 떳떳하고 반듯한 인생이었다고 자부했다. 동생(조근식 목사, 포항교회)이 먼저 예수님을 믿고 형인 저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아주 당당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 제 자신이 구원 받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세워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소는 내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교회의 상황이다. 성장보다는 안주가 편하고 적당한 선에서 재정이 맞춰지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교회 내 사역과 외부 사역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즉 “우리 교회만 괜찮으면 된다”는 마음이 팽배해진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교회는 점점 도태되고 교회의 건강성을 잃어가게 된다. 작은 문제 하나가 교회 전체의 분란으로 작용해 교회의 시련으로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회자는 몸부림치지만 하나되지 못한 성도들의 모습에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2010년의 강릉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복잡하게 일어나면서 결국 갑자기 담임목사가 사임을 하고 떠나버렸다. 목양지에서 목자가 사라진 상황이었다.강릉교회는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모교회의 아픔을 품고 부임한 전영균 목사(홍종화 사모) 강릉교회 인근에는 2004년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한 전영균 목사(홍종화 사모)가 사역을 하고 있었다. 개척 당시 강릉교회 중직이었던 전창균 장로가 아름다운교회 내부 시설과 여러 지원은 물론 3년 동안 교회 세를 안받는 등 전폭
교회 창립120주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꿈의교회(안희묵 대표목사)가 지난 6월 19일 공주 백제체육관에서 “꿈의역사 120년, 꿈의교회 다시 꿈꾸라”란 주제로 창립기념감사예배를 드렸다. 공주와 세종, 대전 꿈의교회 성도 4000여 명과 외부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120년 동안 교회를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영광돌렸으며 주일학교 학생 1000여 명은 공주 문예회관에서 CCM댄스팀 노아와 개그맨 정종철 집사를 초청, 특별예배로 함께 했다. 1부 축하공연은 소울싱어즈와 소향의 찬양과 함께 꿈의교회 초기 성가대를 지휘하고 반주했던 오종근 장로(세종도담고 교장)와 이옥주 권사(공주여고 교장)의 특별찬양으로 120주년 창립예배의 시작을 알렸다. 2부 창립기념예배는 모든 성도가 한 목소리로 “임재” 찬양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 3명의 원로장로들의 대표기도와 공주·세종·대전의 120명의 성도로 이루어진 꿈의연합찬양단의 특송이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4000여명 성도들이 함께한 경배와 찬양의 시간은 그 어떠한 예배보다 큰 은혜가 넘쳤으며 이어진 120주년 기념 영상은 꿈의교회의 지난 역사를 성도들에게 보여주며 새로운 교회로의 비전을 심어줬다
‘하늘나라 이야기꾼’으로 부흥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정희량 목사 “어릴 때, 부흥사이신 교회 목사님을 따라 다니며 영혼을 살리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모습 속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요즘 부흥회가 안된다. 부흥사가 뭐가 대단하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더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사모하게 됩니다.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부흥사가 아닌 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일으키는 부흥사, 먼저 전도하는 부흥사, 다음 세대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부흥사가 제가 앞으로 가야 할 길임을 매일 매일 다짐합니다.” 예배와 말씀, 부흥과 기도를 사모하는 광정교회 정희량 목사(사진). 홍성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고 열악한 목회 환경에도 복음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던 정 목사는 세도제일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2003년 광정교회에 부임했다. 인근 지역에 태성교회가 있어 오관석 목사와 김장환 목사의 말씀에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광정교회에 다수 있어 부흥에 대한 열망과 사모함이 남달랐던 광정교회는 전도와 선교, 교육에 역점을 두고 목양에 전념했다. 또한 부흥사로서 기도원 집회와 교회 집회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어
6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부산 범일교회(최재훈 목사)는 선교적 비전 사역을 전개하며 해외 선교와 선교지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선교 사역에도 관심을 가지며 새롭게 지역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한 선한 행보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주여성에 대해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교회에서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사역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동역자들을 기다렸고 교회 구성원 중에 헌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문화 한글학교를 시작하게 됐다.” 최재훈 목사가 다문화 사역을 시작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이 먼저임을 밝혔다. 한글학교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문을 낮추고 지역에 다문화가정들을 파악하며 교회에 출석하기 보단 먼저 교육의 문을 먼저 열었다. 의사소통에 어려운 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그들의 자녀들을 먼저 양육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교회 청년들과 직분자들의 재능기부로 교사들이 배치되고 돌보미들이 함께 하면서 이주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는 약 70여 명의 다문화 가정과 여성, 학생들이 한글공부와 검정고시 공부, 합창단 연습 등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