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념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개척하기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던 롯의 인생이 두 딸에게 그대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 19:35)
창세기 19장 35절은 성경에 기록된 롯의 마지막 행적입니다. 큰딸과 작은딸이 연이어 자신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술에 취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홍수 재앙을 겪은 후 술에 취한 채 민망한 실수를 범했던 노아의 만년이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며, 롯의 인생이 그야말로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롯이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요? 처음부터 죄로 가득했던 소돔을 떠날 수는 없었을까요? 차라리 아브라함에게로 가서 새 인생을 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요?
롯이 꿈꾸고 쫓았던 모든 것은 바벨탑을 쌓는 일과 같았습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단한 탑을 쌓고 또 쌓으며 앞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 시작은 아브라함을 따라 하란을 떠난 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처음 고향을 떠날 때는 타지에 가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근을 피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고달픈 광야 생활에 조금씩 지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애굽에 갔던 경험이 잠재되어 있던 성취욕을 자극하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브라함과 이별한 후 소돔으로 이주해 성공을 향해 달렸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쌓아 올린 성공의 탑 꼭대기에 오른다면 그가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곧 실현될 줄로만 알았던 꿈은 천사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함께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이들이 언어가 혼란해지며 흩어졌듯이 손에 움켜쥐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성과가 그날 밤 소동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도,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 롯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 바벨탑과 불타 버린 소돔처럼 황량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창 19:27~28)
소돔이 멸망한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해가 뜨자마자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던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가면 소돔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소돔이 심판받았는지, 아니면 간청한 대로 심판을 피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불 심판이 지나간 뒤에 피어난 연기였습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 구절 이후 아브라함이 롯을 찾으러 갔다는 내용이 창세기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섯 왕과 네 왕이 싸우던 전쟁에서 롯이 포로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러 갔던 아브라함이었으나, 지금은 왜 롯을 구하러 가지 않았을까요? 심판 때문에 롯 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해 포기했을까요? 반대로 롯은 왜 아브라함을 찾아가 의지하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이 거두어 주었다면 소알을 나온 롯이 굳이 산에 올라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날 이후 아브라함과 롯 사이의 연결 끈은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 가장 가까운 혈육이었던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가까워질 수 없는 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에 구체적 언급이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었고 두 딸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아브라함 쪽에서 먼저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고 롯이 스스로 부끄러워 연락을 끊고 지냈는지도 모릅니다. 소돔 탈출에 이어 두 딸까지 임신시킨 충격에 일찍 사망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이건 이날 이후 아브라함과 롯 집안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훗날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과 암몬 민족의 조상이 되면서 아브라함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 대립하게 됐으니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는 최악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 셈입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룻 1:22)
다행히도 두 사람 관계가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먼 훗날 이야기를 담은 룻기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후손이 극적으로 화해하게 됩니다. 룻기를 보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룻이 우여곡절 끝에 보아스와 결혼합니다. 보아스는 유다 지파 사람으로 아브라함 자손이었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으니 롯의 후손인 셈입니다. 집안뿐만 아니라 살아온 모습도 각자의 조상과 비슷합니다.
보아스는 아브라함 후손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줄 알았으며, 가장 가까운 친척 나오미와 룻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롯의 후손 룻은 나오미의 며느리였는데, 나오미는 유대 땅에 흉년이 들자 살기 좋아 보이는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도 기근이 찾아오자,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룻과 나오미는 성공에 몰두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롯의 인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두 사람의 만남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데, 룻은 성공을 따르기보다 시어머니를 섬기는 편을 택함으로써 롯과 다른 선택을 보여줬고, 보아스는 갈 곳 없던 친척 나오미와 룻을 자기 가족으로 거둬들여 아브라함이 하지 못했던 가족의 의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그러니 룻기는 창세기의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돌려놓는 드라마 같은 책입니다. 훗날 펼쳐질 룻기의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고달픈 롯의 말년이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