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이해와 신앙의 본질

  • 등록 2026.07.22 14: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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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 (6)

본질의 중요성
기독교 신앙의 이해를 위해 먼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질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하고 독자적인 성질’을 뜻합니다. 사물의 현상 뒤에 있는 실제로서 ‘그 사물이 그 사물이 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 현상이나 일시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사물이 그 사물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만일 그 본질이 빠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원래의 존재 의미를 지닐 수 없으며, 결국 가짜가 되거나 헛된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를 들면, 팥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팥입니다. 팥이 들어 있지 않은 빵은 팥빵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그저 평범한 다른 빵에 불과할 뿐입니다.


팥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팥이 포함돼야 하며, 팥이 빠진다면 그것은 팥빵으로서의 본질을 상실한, 본래의 팥빵의 의미를 잃은 것이 됩니다. 이처럼 본질이 빠지면 다른 성질의 것이 되고 맙니다.


결혼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단순한 계약과 거래 관계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결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어떤 것이 그 본질을 상실하면, 비록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고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고, 겉모습이 닮았을지라도 완전히 다른 것이 되고 맙니다. 그 의미와 목적, 실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더 이상 ‘원래의 그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흉내 내는 “유사한 그 무엇”이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기독교 신앙을 기독교 신앙 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만일 기독교 신앙에서 본질이 빠지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외형만 남은 껍데기로서의 형식적 종교 활동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름은 동일하지만 실체가 없는 신앙, 다시 말해 기독교 같지만 기독교가 아닌 종교, 유사 기독교일 뿐입니다.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바로 그 신앙이 본질을 온전히 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본질만으로 그 사물이 그 사물이 될 순 없으며, 본질만으로 그 사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을 담은 이후에 나머지 중요한 요소들이 더해져야 완전한 그 사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질만으론 아직 완성의 자리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팥빵이 되기 위해서는 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팥빵이 되려면 본질인 팥과 함께 빵을 형성하는 밀가루, 반죽, 굽는 과정 등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 역시 본질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으며, 그 본질을 토대로 신앙의 필수, 필요 요소들이 더해져야만 완전한 기독교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떠나서는 결코 더 나아갈 수는 없는 법이며, 본질 없이는 아무리 그 외의 것이 더해져도 기독교 신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질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완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만약 본질을 놓치게 되면 기독교 신앙의 완성은커녕, 출발조차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본질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해와 과정이 필요합니다.

 

신앙 성장은 요술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배우고 습득하여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전적인 은혜’나 ‘성령 충만’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전적인 은혜와 성령 충만은 인격적인 존재인 인간이 마땅히 겪어야 할 훈련과 연습, 배우고 익히는 연단의 ‘과정과 내용’들을 건너뛰게 만드는 마술 같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것을 마치 한순간에 성숙에 이르게 해주는 요술 같은 비법이나, 혹은 신비주의적인 힘이나 능력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그래서 은혜를 받고 충만해진다고 해서 마치 기계를 조작하거나 뚝딱 하여 고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즉시 조종하셔서, 손쉽게 어느 수준의 믿음과 성숙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구할 때 단순히 믿음을 뚝 떨어뜨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믿음이 은혜요 선물이라고 하니까 이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과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연단과 단련, 훈련과 순종을 배울 수 있는 상황들을 우리 삶 가운데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인내를 구하면 인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사랑을 구하면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상황들을, 주만 바라고 의지하는 것을 구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만 하는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격성과 삶을 무시한 채 기계처럼 단번에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인격의 특성과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를 빚어 가시고 다듬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험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조강혁 목사
좋은교회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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