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35)

  • 등록 2026.07.29 13: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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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새빛” 선교사들

1884년 이후 조선에 들어온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단순한 부흥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학자 집단도 아니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확신했고, 개혁주의 교리를 소중히 여겼으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모펫(Samuel Austin Moffett), 윌리엄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 등은 모두 이러한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선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번역하고, 학교를 세우고, 교역자를 양성하고, 신학 교육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다.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됐다. 성도들은 성경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걸어 사경회에 참석했고, 말씀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웠다. 성경을 아는 것이 곧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습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개혁주의 전통의 열매였다.


1901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는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성경 연구와 설교, 교리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신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목회자로 훈련받았다. 평양신학교를 통해 배출된 목회자들은 이후 한국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형성했다.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는 뜨거운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성경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기도에 열심이었지만 교리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성경 공부 문화와 설교 중심 전통은 상당 부분 이 시기에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를 설명할 때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바로 선교와 전도에 대한 열정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교회는 세계 선교의 황금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많은 청년들이 해외 선교를 위해 헌신했고, 수많은 선교 단체가 설립됐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파송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신학을 가르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부흥운동의 중심에는 철저한 회개와 기도, 성경 연구, 그리고 말씀 선포가 있었다.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은 단순한 감정적 열광이 아니었다. 말씀을 배우고 믿고 순종하려는 열망이 공동체 전체를 움직인 결과였다.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과 열정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권위를 믿었고, 동시에 복음을 전했다. 교리를 가르쳤고, 동시에 기도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고, 동시에 선교의 책임도 감당했다. 말씀을 연구했고, 동시에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눈물 흘렸다. 이것이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남긴 유산이었다.


AI(인공지능) 시대, 현재 한국교회는 여러 도전 가운데 서 있다. 어떤 곳은 신학적 깊이를 잃어버리고, 어떤 곳은 복음 전도의 열정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건강한 교회는 언제나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있었다. 진리에 대한 확신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다.


미국 장로교회의 오랜 논쟁은 당시에는 갈등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조선에 필요한 선교사들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한국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의 뿌리와 복음주의 선교의 열정을 함께 물려받게 됐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성경적 진리를 굳게 붙들면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잃지 않는 교회 말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부흥운동의 중심에는 철저한 회개와 기도, 성경 연구, 그리고 말씀 선포가 있었다.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은 단순한 감정적 열광이 아니었다. 말씀을 배우고 믿고 순종하려는 열망이 공동체 전체를 움직인 결과였다.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과 열정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권위를 믿었고, 동시에 복음을 전했다. 교리를 가르쳤고, 동시에 기도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고, 동시에 선교의 책임도 감당했다. 말씀을 연구했고, 동시에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눈물 흘렸다. 이것이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남긴 유산이었다.


AI 시대, 현재 한국교회는 여러 도전 가운데 서 있다. 어떤 곳은 신학적 깊이를 잃어버리고, 어떤 곳은 복음 전도의 열정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건강한 교회는 언제나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있었다. 진리에 대한 확신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다.


미국 장로교회의 오랜 논쟁은 당시에는 갈등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조선에 필요한 선교사들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한국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의 뿌리와 복음주의 선교의 열정을 함께 물려받게 됐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성경적 진리를 굳게 붙들면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잃지 않는 교회 말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교회가 마주하는 도전의 형태도 달라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세워가야 했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전혀 다른 환경 앞에 서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을 빠르게 재편하는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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