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12월 8일 동아시아 작은 낯선 한국 땅에 선교의 사명을 띠고 함경남도 원산에 선교본부를 차린 펜윅 선교사는 선교를 하면서 성경 공동 번역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나 타 교단 위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부위원장직을 사임하고 단독으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때 펜윅 선교사는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에게 다각적인 선교 방해를 받았다. 이런 관계로 한 번은 조선 총독부에서 호출해 당신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 땅에서 선교하느냐? 선교하지 말고 본국으로 돌아가라 하니 펜윅 선교사는 “나는 오래 전부터 허가도 받고 명령도 받아서 선교하러 왔다”하면서 사도행전 1:8을 펴서 보여주니 총독부 관원들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라고 해 돌아온 적이 있다.
이와 같이 타교단 선교사들의 방해가 심해 그들이 번역한 성경을 사용할 마음을 접은 상태에서 펜윅 선교사는 성경 번역에 더욱 박차를 가해 수년에 걸쳐 성경 번역을 끝냈으나 출판할 경비가 없어 출판하지 못하고 경비가 준비될 때까지 보류했다.
그 후에 경비가 마련되어 출판하려고 하니 때는 기미년(1919년) 삼일운동 직전이라 일본군의 감시가 삼엄해 국내에서는 출판이 불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감시가 덜한 일본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일본 요꼬야마 인쇄소에 의뢰해 출판했다. 그 후 펜윅 선교사가 세상을 떠난 후(1935년 12월 6일), 함경남도 원산에 있는 원산 인쇄소에 의뢰해 성경을 출판하니 이 때 발행한 성경을 원산번역 성경이라 부르고 있다.
원산 번역 성경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면
1. 한문 성경 발음 그대로 사용을 많이 했으며
2. 행 2:44 “…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이 부분에서는 한국말 표현을 잘 몰라서 옆 사람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한국말 표현을 물으니 충청도 사람이 “그 말은 한타령이다”라고 하니 그 말대로 번역했고
3.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는 갈대를 퉁소로 번역했다. 이는 그 당시 문화는 갈대로 퉁소를 만들어 붙였다고 해 퉁소로 번영했다.
4. 성령을 “숨님”으로 번역했다. 이는 사람이 호흠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 같이 항상 숨을 쉬어야 산다고 해서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잠시라도 쉬어서는 안되며 숨쉬는 것과 같이 성령이 항상 있어야 하는 것으로 “숨님(성순님)”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성경이 출판된 후, 전교회에서 독경운동이 일어나서 성경을 수십번 또는 수백번 읽는 신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감시와 압박이 심했고 신사참배 거부로 1944년 5월 10일 함경남도 함흥 재판소 법정에서 교단 해체령 판결을 내려 더 이상 성경을 보급할 수 없어 총부교회(총회) 서고에 가득 쌓여 있는 것으로 보고 무척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었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며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성서주일을 맞이해 성경읽기를 열심히 급변하는 세상에서 주님이 원하신 사람으로 살아가야 않을까 생각한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바탕으로 성경 중심적인 교단이기에 성서주일을 계기로 성경에 대한 사모와 사랑이 넘쳐나길 기도한다.
사진제공 =박남윤 목사 / 총회 전 재단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