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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침례교회 독일 아웃리치 동행기(1)

유럽선교 선교 전초기지 베를린침례교회 방문해 다채로운 사역 펼쳐

 

유럽 선교 전초기지를 향한 첫걸음
여의도침례교회(국명호 목사)의 40대 이상 미혼들이 모인 11교구가 설립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교구 담당 목사인 이관영 목사는 한 가지 공지를 띄웠다.

 

“독일 베를린으로 아웃리치를 가려 합니다. 함께할 분들은 어서 신청하세요.”

 

베를린에는 여의도침례교회의 지교회인 베를린침례교회(장원준 목사)가 있다. 2011년, 유럽 교회를 회복시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설립된 베를린침례교회는 1960~1970년대에 파독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된 후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는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그리고 유학생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세워진 베를린침례교회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고, 이번에 처음으로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이곳으로 아웃리치 팀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여의도침례교회에서 해외 선교 부문을 담당하고 있기도 한 이관영 목사는 3년 전부터 장원준 목사와 소통하며 언제, 그리고 어떤 사역을 진행할 것인지 논의해 왔다.
유럽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는 했으나 결정을 내리기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러·우 전쟁과 더불어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유가가 폭등해 항공편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있었고, 취재차 간다고 해도 내가 과연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차라리 언어가 가능한 일본이라면 항공권 가격도 그리 크지 않을 테니 고민 없이 신청을 했겠지만, 처음 이야기된 항공편 가격이 180만 원에 육박했기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관영 목사는 “정말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남겼고 어느 순간 내 몸은 베를린 아웃리치 모임 장소에 와 있었다.


아웃리치는 11교구 3명을 포함해 대학생 나이대의 청년 1부와 직장인 나이대의 청년 2부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했다. 팀 막내와 최고 연장자의 나이가 20년 차이가 났으니 어쩌면 여의도침례교회 모든 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인 것이다. 날짜는 8월 21~29일 일정으로 다른 아웃리치와 비교해보면 매우 늦은 편이다.


아웃리치의 주요 사역은 지교회 성도들과의 교제와 양로원 위문, 노방전도, 교회 보수 등이다. 이를 위해 아웃리치 팀은 워십과 찬양, K팝 공연 등을 준비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인 청년도 아웃리치 팀에 합류해 가곡과 뮤지컬 노래를 선보이기로 했다.

 

 

베를린 땅에서 마주한 지교회와 동역자들
이윽고 아웃리치 출발 일자가 찾아왔다. 아웃리치 팀은 인천공항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을 경유해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과장을 보태어 우리보다 2배는 족히 커 보이는 현지인들 사이를 지나다니다 보니 독일 땅을 밟은 것이 실감이 났다. 공항에서는 장원준 목사 부자가 아웃리치 팀을 마중 나왔다. 차 하나로 모두 이동할 수 없어 짐만 먼저 보내고 아웃리치 팀은 아들 근용 형제의 인도에 따라 ‘해리 포터’에 나올 법한 정거장에서 전철을 타고 교회까지 이동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베를린침례교회를 직접 마주하니 이제 본격적인 아웃리치의 시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건축된 지 100년이 넘어 역사의 흔적을 가득 품은 교회는 원래 독일 현지 교회로 사용됐다가 문을 닫았던 건물로 여의도침례교회가 지교회를 세우면서 구입했다. 그만큼 멋진 느낌도 가지고 있었지만 세월의 풍파로 인해 이곳저곳 손봐야 할 곳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장원준 목사는 예배당에서 가볍게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그는 원래 GMP개척선교부 소속으로 2001년 인도차이나의 캄보디아로 파송을 받아 10년간 오지 지역에서 현지인들을 섬기며 선교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전혀 뜻하지 않았던 독일로 오게 됐다고 한다. 베를린침례교회에 부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그는 “단순히 우리 교회만 뭉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베를린침례교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여의도침례교회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가볍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점심을 나누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날 점심은 베를린침례교회 권사와 박효진 사모가 함께 한식으로 요리를 준비했다. 박효진 사모는 원래 선교를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장원준 목사가 “나와 결혼하려면 함께 선교를 떠나야 한다”는 말에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 함께 캄보디아 오지에서 함께 떠났다고 한다. 작고 왜소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오지에서 1남 1녀를 반듯이 키워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작은 거인’이란 박효진 사모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졌다.

 


식사 자리에는 베를린침례교회에 다니는 청년들도 함께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영국 국적을 취득한 형제, 독일에서 공부하기 위해 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청년들이 반갑게 아웃리치 팀을 맞이했다. 아시아침례교회 김용민 목사의 딸도 베를린침례교회에 다니고 있어 반가운 인연이 늘어갔다.

 

풍요 뒤에 숨은 영적 황폐함
식사를 마치고 베를린침례교회 청년들과 함께 노방전도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DM’이란 가게로 독일의 올리브영과 같은 곳이었다. 한참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로 가니 독일인 점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문신과 함께 팔에 한가득 칼자국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독일이라고 하면 나름 건강한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팔에 무수한 자해 자국을 남길 정도로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 충격이었던 것은 아웃리치 팀의 부팀장을 맡고 있는 청년이 “여기저기서 대마 냄새가 나요”라고 했던 일이다. 아직까지 무슨 냄새를 두고 한 말인지 와닿지 않았지만, 해외 생활을 경험했던 아웃리치 내 청년들은 서로 동의하며 그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베를린침례교회 청년이 길거리에 붙어있는 한 광고문을 보여주며 “대마 축제를 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해 독일이 깊숙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됐다. 그래도 나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기독교 국가임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안타까운 것은 전도 또한 매우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평소 유럽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한국 교회의 아우성에 “지금 한국 교회가 유럽 교회 비판할 때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나였지만 이러한 독일의 현실을 마주하니 생각이 매우 복잡해졌다. 베를린침례교회의 따스한 환대, 그리고 독일의 암울한 현실이라는 냉온탕을 경험하며 아웃리치의 첫날이 저물어갔다.

 

 

예배와 특송으로 하나 된 주일 사역
다시금 아침 해가 떠오르며 베를린에서의 주일을 맞이했다. 어찌 보면 이날은 베를린 아웃리치 사역의 첫 데뷔 무대가 열리는 날이었다. 주일 아침 교회로 가는 전철 안에서 한 외국인이 아웃리치 팀의 팀복을 보고는 자신도 크리스천이라며 반가워했다. 당시 아웃리치 팀의 팀복에는 마태복음 5장 13~14절 말씀이 적혀 있었는데 이를 보고 말을 건 것이다.


교회에는 오랜 시간 독일에서 살아온 한국인을 비롯해 유학생, 외국인 등 꽤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며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 설교는 “내 안에 거하라”(요 15:1~11)란 제목으로 이관영 목사가 맡았다. 이 목사는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들이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국명호 담임목사님 또한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라며 성도들을 격려했다.

 


특송은 아웃리치 팀과 베를린침례교회 청년들이 연달아 진행했다. 아웃리치 팀은 그동안 준비했던 워십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베를린침례교회 청년들은 특송으로 화답했다. 베를린침례교회의 경우 전공자들이 섞여 있어 한층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고 이는 아웃리치 팀에게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로 작동했다. 다행인 점은 베를린침례교회 청년들의 순서가 마지막이었다는 점으로 아웃리치 팀 내에서 “우리가 먼저 했으면 기죽었을지도 몰라”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때문에 예배가 끝난 후 아웃리치 팀은 다음날 있을 양로원 위문과 노방전도에 더욱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늦은 시각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울려 퍼진 복음의 외침
월요일 사역은 이번 아웃리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서이자 가장 걱정이 많았던 순간이었다. 양로원의 경우 양해가 돼 있었기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노방전도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독일은 전도 행위가 상대방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에 법적으로 제한이 된다고 한다. 또한 노방전도의 경우 30분을 넘기지 못하며 앰프 같은 기기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웃리치 팀과 베를린침례교회는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양로원은 베를린침례교회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대부분 고령에 치매 환자도 많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이라고는 노인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지 말 것뿐, 그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웃리치 팀의 워십과 K팝 공연, 베를린침례교회의 특송, 오스트리아에서 아웃리치 팀에 합류한 김세화 청년의 뮤지컬 공연 등 꽤나 만족스러운 무대가 완성됐다. 어르신들 뒤에서 공연을 보며 기록을 하던 나로서는 꽤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공연을 맡았던 아웃리치 팀은 오히려 굉장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치매 환자였기에 너무 반응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아쉬운 대로 양로원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곧장 노방전도를 위해 근처 상가 밀집 지역으로 이동했다. 어찌 보면 가장 떨리는 사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그 안에 모든 공연을 마무리하고 사람들에게 선물과 사영리(Four Spiritual Laws)가 들어있는 선물 보따리를 전달해야 한다. 과거 CCC에서 선교 훈련을 위해 서울 길거리에서 전도 활동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날의 거절을 아웃리치 팀원들도 겪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의외로 반응은 양로원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사람들은 아웃리치 팀의 공연을 감상하며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선물을 받으며 기뻐했다. 어떤 독일인은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고 무슨 공연을 하는 것인지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기도 했다. 중간에 어떤 노랑머리의 동양인이 박효진 사모에게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함께 전도에 나섰다. 아웃리치 팀의 노방전도에 감동한 사람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장원준 목사의 딸 미연 자매였다. 다른 일정 때문에 합류가 늦었던 것으로 이 사실을 몰랐을 때 그 광경을 보고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이날을 떠올리며 아웃리치 부팀장을 맡은 전종인 형제는 자신도 홍대에서 자주 열리는 버스킹 공연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기에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거리 한가운데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많이 부끄럽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노방전도를 시작하기 전 팀원들과 함께 상권 중심에 모여서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이 한마디의 기도를 끝없이 되뇌인 후 노방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끓어올랐습니다. 춤도 노래도 잘 못하는 내가 베를린 한가운데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찬양과 워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나서 목이 잠겼습니다. 그렇게 노방전도 마지막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끝났습니다. 그 순간 끓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손 모아 외쳤습니다. ‘Jesus loves you!’ 나의 이 한마디가 베를린 상권에 울려 퍼졌습니다.”

독일 베를린=범영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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