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화과나무의 용도가 이렇다 보니 탈무드에는 2층 이상의 집을 지을 때 안전을 고려해 지붕 들보를 백향목보다는 돌무화과나무를 사용하도록 했다(Talmud, Bava Metzia117b,11). 이 같은 용도와 가치 때문에 다윗은 돌무화과나무를 배양하는 전담 장관을 세울 정도였다.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돌무화과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대상 27:28)
이런 돌무화과나무는 그 열매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칠칠절이 끝나는 시기(즉 밀 수확이 끝나는 시기/5월)가 되면 이 나무에는 수많은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그 열매에 일일이 흠집을 내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줘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무화과 맛을 내게 된다. 이 과정을 전문용어로 블리사(Blissa)라고 부르는데 목자들이 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돌무화과나무는 비가 많고, 날씨가 온화한 지역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이 나무는 요르단 계곡 또는 평지(쉐펠라)에서 많이 재배됐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돌무화과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눠진다(우기 11월~3월, 건기 4월~10월). 그리고 보리와 밀의 추수는 4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난다. 우기에 목자들은 광야에서 푸른 풀을 먹인다. 그리고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4월에서 추수가 끝나는 5월까지는 광야의 건초로 양과 염소를 먹인다. 5월쯤 요단계곡에는 추수가 끝난 밭에 보리와 밀의 밑동이 남게 되는데 목자들은 앞으로 우기가 시작되기까지 5개월이나 되는 건기를 보내기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요단계곡으로 내려가 추수가 끝난 밭에서 목자들은 가축들을 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목자들과 밀밭 주인 사이에 협상이 진행된다. 목자들은 자신의 가축을 추수가 끝난 밀의 밑동을 먹도록 요청하고 밀밭 주인은 그 대가로 목자들에게 돌무화과나무를 배양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모스는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목동이었고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흠집을 내고 기름을 발르던 사람이었다.
다시 삭개오 사건으로 돌아가, 그날 그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리고는 의인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많았던 도시였다(대하28:15). 그래서 종려나무 성읍으로 불릴 정도였다.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유대인의 눈에 그는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요,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삭개오를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소개한다. 이 한 단어에 아주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그는 누가 뭐래도 돈 있고 권력 있는 여리고의 VVIP라는 사실이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의인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아니라 가장 사회적 하층민이었던 목동들이 올라가는 돌무화과나무를 택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의 진짜 목적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였다. 간절함으로 밖에 달리 어떻게 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이스라엘 현장을 뒤지며 지리, 역사, 고고학, 문화 모든 것들을 통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살펴보는 가운데 더욱 확신했던 사실은 누가 뭐래도 그분은 최고의 교육자요 극적인 연출가였다. 그런 그가 이 절호의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돌무화과나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쉬크마’는 ‘재활’ 또는 ‘갱생’의 뜻을 가지고 있다. VVIP란 자신을 다 내려놓을 만큼 무엇인가에 간절했던 삭개오 그리고 돌무화과나무가 주는 언어적 상징적 의미 그리고 나무 위를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하신 선언을 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9~10)
이 모든 것은 우연히 아니라 의도된 사건이요 메시지의 의미를 명확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예수님의 탁월한 연출이었다. 비록 더 이상 뽕나무에 오르지 않는 삭개오 때문에 당황스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역을 바로 잡아 예수님의 메시지와 의도를 재조명 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 소장
신광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