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보면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 사이의 불일치가 일으키는 심리적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혼란이 대표적 증상이다. 너무 오랜 시간 가면을 쓰면서 진정한 자신과 만들어 낸 자신 중 무엇이 정말 자신인지를 구분 해 내지 못한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생각하는지 혹은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늘 내뱉는 말은 “난 원래 그래, 그래서 뭘 어쩌라고!”라는 항변이다. 그리고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매섭게 비판하고 몰아세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서 막상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다. 머릿속엔 늘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수많은 행동 기준을 제시한다.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 통제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고 그 짜증은 곧 분노로 이어진다.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어떻게 감히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 공격은 심한 말과 함께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삐지는 것과 같이 수동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위축되어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이때 공허함과 우울감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현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내면을 감추느라 급급해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타인이 겪는 삶의 문제는 축소하고 자신의 문제는 심각하게 여기는 지독한 정서적 이기주의자로 취급받게 된다. 물론, 자신은 이렇게 위태로운 세상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짊어졌다고 느끼는 과도한 책임감은 벗어낼 수 없다.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짓 죄책감에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관계를 위해 다 퍼주기도 하고, 완전히 통제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관계에서의 신실성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권위를 내세워 누르려고 하거나, 그 반대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친하다는 말에는 수많은 조건이 붙는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는 그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
이것이 가면을 쓴 사람의 삶이다. 우리는 가면이 불편하면서도 온전히 벗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상처는 우리로 하여금 그 가면을 더욱 두텁게 만들게 한다. 더 많은 성공으로, 화려한 꾸밈으로, 지나친 지성화로 과도한 봉사로, 끊임없는 유머로, 숨 쉴틈 없이 바쁜 삶으로,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더 괜찮은 척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약함을 보지 못한다. 그것이 생존의 수단이다.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자신을 가장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식적인 사람 혹은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 단어로 묘사된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파악하면 그것을 근거로 그 사람과의 관계 전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아마 그 사람은 그 거짓된 모습을 통해서 타인을 이용할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사람 옆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자신을 꾸미려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하기보단,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를 쓸 뿐이다. 자신 내면에 있는 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가면을 쓰는 것이다. 이 가면을 거짓 자아(Pseudo Self)라고 부른다. 이 거짓 자아는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다.
특히 이것엔 자아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에 우리가 어떤 양육 환경에서 자랐는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위 우리가 역기능적인 가족이라고 부르는 환경을 생각해 보자. 한 아이가 정서적, 신체적, 성적인 학대, 엄격한 규율, 부모의 약물 중독, 부모의 외도나 이혼, 가족의 심리적 또는 신체적 질병, 가족의 자살, 정서적 또는 신체적 방치된 경험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에서 아이는 일관성 없는 규칙, 긴장과 스트레스, 친밀함의 부재, 과도한 책임감, 불분명한 의사소통, 제한된 감정표현, 가족 문제를 숨김, 대리 부모의 역할 등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그 아이의 정서적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슬픔. 무력감, 수치심, 자괴감, 두려움, 분노, 부적절감, 소외감, 혼란 등이 깊게 자리하게 된다.
행복해지려면 가면을 벗어라
정직하다는 것은 솔직하고 진실한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나 자신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가면을 벗을 수가 있을까? 가면을 쓰고 있다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산다. 그 가면의 이름은 ‘척’이 다. 있는 척, 배운 척, 잘난 척, 고상한 척, 힘들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친한 척, 자상한 척, 친절한 척, 이성적인 척, 겸손한 척, 교양 있는 척 등. 그리고 때로는 그 가면 때문에 힘들어한다.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드러내면 덜 힘들 것을, 힘들지 않은 척하며 숨기다 보면 더욱 힘들어질 때가 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드러내면 홀가분해질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느라 곤란해질 때도 있다. 교양이 부족하면 채우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힘이 들게 마련이다.
가면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대하는 것과 같다. 이런 관계에서는 서로가 절대 좋은 관계를 맺어 가기는 쉽지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에 대한 돌이킴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 옆사람을 위해 가면을 벗어야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가면을 쓴 상태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삶이 행복해지려면 쓰고 있는 가면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척’하는 것만 벗어던질 수 있다면 삶의 무게가 훨씬 더 가벼워질 텐데, 그리고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질텐데 우리는 쉽게 그 가면을 벗어던지지 못한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먼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두려움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드러낼수록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조봉제 목사
좋은이웃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