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소명 (로마서 1장)

  • 등록 2026.03.25 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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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봉 목사
포도나무교회

1.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바울 이전의 매우 이른 초기부터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라고 믿고, 살고, 선포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2~4)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의 3~4절 속에 바울 이전에 확립된,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빌립보서 2:5~11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여기서도, 그 이전에 이미 확립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인용하고 있거나 그것을 토대로 기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을 7절의 “비워”(헬라어로 ‘케노오’)라는 단어에서 따서 ‘케노시스 시’라고 부릅니다. 빌립보서는 대략 서기 50년대 중후반에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케노시스 시’는 서기 30~40년에 이미 확립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이해합니다. 제임스 던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 20년 이내에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이름에 결부됐고, ‘예수 그리스도’로 붙여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 개인적인 이름으로 기능했음은 어느 신약성서 학도에게도 친숙한 사실이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시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우 이른 시기부터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Jesus is the Lord). 그래서 로마서 10:9, 고린도전서 12:3에는 그것이 이제 정형화된 표현으로 나옵니다.


2.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말의 의미.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중요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이 주님이시다’였다는 사실을 아는 것 못지않게, 그 말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예수님이 ‘주님’ 혹은 ‘주(主)’라고 말할 때 그 단어는 헬라어로 ‘퀴리오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세 가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 주인
‘퀴리오스’라는 단어는 그 당시 단순히 ‘주인’을 의미했습니다. 때로는 그 단어가 존경의 표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2) 온 세상의 적법한 주인이요 통치자
우리는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말을 그 당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퀴리오스’라는 단어는 그 당시 시저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시저에 대해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시저가 신의 아들로서 온 세상의 적법한 주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황제의 흉상 앞에 향을 피우고 “퀴리오스 카이사르”(시저는 주시다)라고 선언하면서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 시대에 시저가 아니라, 예수님이 ‘퀴리오스’(주)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로마에서 그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초대교회가 살았던 로마 세계에서는 복음이란 단어도 일반적으로 황제의 즉위나 생일 등 황제의 소식을 알리는 전언을 의미했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모든 사람이 알던 ‘복음’이라는 단어의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만을 위해 사용됐던 그 단어, 특히 로마 황제를 지칭하기 위해 동전이나 기념비에도 새겨져 있던 주(Lord)나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과 같은 표현을 예수님에게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확신하고, 고백하고, 그 삶을 살고, 그것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 고백과 선포로 인하여 많은 핍박과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겼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케 했습니다.


3) 야훼의 본체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 즉 야훼의 본체라는 말입니다. 70인역 성경은 서기전 3세기부터 2세기 사이에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2명의 학자들에 의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책입니다. 70인역 성경이 중요한 이유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약성경의 인용 대부분이 70역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 현재 통용되는 구약성경의 구분이 70인역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초대교회가 사용하던 성경도 70인역 성경이었다는 사실 등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은 히브리어의 야훼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무려 1,600번이나 ‘그 주’(‘호 퀴리오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바로 ‘그 주’(‘호 퀴리오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그 주(호 퀴리오스), 즉 야훼라니.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참담한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 즉 걸림돌이라고 한 말은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우리는 초대교회가 유대인들 중심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 중에는 바리새인들과(행 15:5) 제사장들(행 6:7) 출신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강력하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이 주 되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그에 대한 답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드러냈습니다. 위의 로마서 1:4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부활이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들은 그 당시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세계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오직 유대인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톰 라이트에 의하면, 초대교회가 전한 예수님의 부활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부활에 대한 신앙에서 7가지 점에서 변형이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그 7가지 변형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7가지 변형들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그 변형의 일곱 번째는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이 메시아주의와 연결됐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 누구도 메시아가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요 12:34 참조).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누구도 메시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메시아 사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던 유대인이라면,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참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라고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죽을 뿐 아니라, 그것도 나약하게 로마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신 21:23 참조). 그러나 초대교회는, 로마서 1:2-4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우 일찍부터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고 단언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부활과 신성화 사이의 관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톰 라이트 박사는 그 당시 유대인의 경우건 이교도의 경우건, 부활과 신성화 사이에는 어떠한 암묵적 연결고리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대의 로마인들이 최근에 죽은 황제가 천국에 가서 이제 신이 됐다고 선언할 때도, 그 황제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그런 말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바울 이전의 매우 이른 초기부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부활시키심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능력으로 선포하셨다고 믿고, 살고,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4. 예수님의 주 되심의 실현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에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 박사는 교회의 선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기독교 여행, 308-09쪽). “다시 말해서, 교회는 우리가 때로 ‘선교’라고 일컫는 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세상에 예수께서 그 주제자(Lord)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선포될 때, 그 소식은 사람들과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좀 더 협소한 의미에서의 선교 그리고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를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팀 켈러 목사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의 책 ‘부활을 입다’에서 케임브리지의 학자 사이먼 게더콜(Simon Gathercole)을 참조해서 이 점을 설명합니다. 그는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이 복음을 오로지 십자가로만 보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라고만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복음 제시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은 곁다리로 덧붙여지는 기적일 뿐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복음의 핵심은 단순히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142쪽).

 

개더콜은 바울이 복음을 제시한 많은 경우를 살펴본 끝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세 가지 개념을 찾아냈다. 첫째로,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기쁨 소식이다(롬 1:3~4).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데 자신을 낮추어 인간 메시아가 되셨다. 둘째로,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 끝으로, 그분이 무엇을 가져오시는가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분은 새로운 창조세계와 성령의 권능을 가져오셨다(골 2:13~15; 엡 2:4~7). 그래서 개더콜은 복음을, “죽음과 부활”을 통해 “메시아 예수께서 … 죄를 속하시고 새로운 창조세계를 가져오시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소명이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는 레슬리 뉴비긴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영위되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수는 만유의 주님이라는 고백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오픈 시크릿’, 44쪽).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도 이렇게 말합니다(‘세계관은 이야기다’, 46쪽). “복음의 핵심은 우주 만물과 모든 나라와 인생 전체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이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사명도 창조 세계만큼이나 그 범위가 넓다. 그들은 모든 공적인 삶-사업, 학문, 정치, 가정, 형사 재판, 예술, 언론 등-에서는 물론이고 인간이 경험하는 일의 구석구석에서 복음을 증언하도록 위임받았다.”

 

이렇게 이해할 때,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이야기를 토대로 한 부활-주 되심-교회-선교의 패러다임입니다. 부활-주 되심-교회-선교는 교회의 선교적 성격뿐 아니라, 선교의 참된 성격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페러다임입니다. 창조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의 핵심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구속을 성취해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을 행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전도뿐 아니라,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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