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하며 적도 상에 있는 국가이다. 종교 상황은 기독교가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슬람과 토착 신앙이 그 뒤를 잇는다. 케냐는 1884년 베를린 회담으로 인해 영국의 보호령이 된 후 1963년 독립했다. 케냐에서 아프리카선교회가 선교 대상으로 집중하고 있는 이들은 마사이족으로 이들은 유목민족이자 강력한 전투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백인이나 아랍인 등 다른 민족이 노예사냥을 하면 죽어라 덤벼들어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일이 흔했고, 힘들게 마사이족을 붙잡았다 하더라도 반란을 일으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노예상 입장에서는 손해만 보니 결국 학을 떼며 완전히 물러서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며 이런 전투적인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케냐 오지에 살면서 소나 양 등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마사이족들이 있다. 아프리카선교회는 이들을 찾아 학교와 교회를 지어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늦은 밤, 케냐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했다. 탄자니아에서의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세관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마다 나이로비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집회 진행 · 약탈, 폭행 등 피해 주의, 외출 자제”
로밍 관련 문자와 함께 수신된 외교부의 문자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탄자니아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듯한 케냐는 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고 한다. 날씨는 다행히도 적도 바로 밑에 위치한 나라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시원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단기선교 팀은 바로 나정희 선교사(케냐)의 집으로 이동해 잠시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며 케냐에서의 사역을 준비했다.
생명의 물
케냐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마사이족 교회의 입당예배였다. 해당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올라탄 자동차는 탄자니아 때처럼 노후화가 상당해서 문이 저절로 열려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어야 했기에 주변 경관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20여 분을 도로에서, 30여 분을 비포장 산악지대를 달린 끝에 입당예배가 열리는 나샤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나샤교회는 탄자니아에서 목격한 교회들과는 달리 페인트칠도 깔끔하게 돼 있어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탄자니아가 블랙 가스펠 느낌이 완연했다면 이곳은 마사이족 전통 복장을 입고 그들 특유의 리듬에 맞춰 단기선교 팀원들을 맞이했다. 문제는 이곳도 아프리카라서 예배가 꽤나 길었다는 점이었다. 2주째 계속되는 일정에 피로가 많이 누적된 상태라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교회 밖을 나가 주위를 둘러봤다. 개발이 되지 않은 오지이다보니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다. 소와 양을 치는 목동들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집으로 보이는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 마사이족 원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식수원 확보였다. 오랜 가뭄으로 강이 메말라버려 교회에서 1㎞ 남짓 떨어진 호수에서 물을 길어 사용한다고 한다. 아프리카선교회는 이 사실을 듣고 호수에서 교회 쪽으로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안을 구상 중에 있었다. 호수에 도착하니 저 멀리서 소가 목을 축이고 있었다. 소똥이 이곳저곳 널려있는 것을 보니 원주민들이 키우는 가축 대부분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가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고여있는 물이다보니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강신정 목사는 “이곳의 물을 정화해서 교회로 끌어올 수 있다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교회에 와서 물도 얻고 복음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며 나샤교회에 펼쳐질 부흥을 꿈꿨다.
첫사랑의 그림
케냐에서의 주 무대는 나보이쇼축복학교란 곳이다. 이곳은 원래 다른 한인 선교사가 운영했던 곳으로 초등학교 1~4학년의 마사이족 원주민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는 팬데믹 기간동안 방치된 채 기능을 못하고 있다가 1년 전부터 나정희 선교사가 책임자로 들어와 다시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정희 선교사는 처음 나보이쇼축복학교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거절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워낙 산골 오지이다보니 보통의 차로는 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무척 험해 오고가는 길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학교에 올 때마다 숲속에서 아이들이 나와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아이들의 눈이 너무 예뻐 그냥 놔둘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꾸 마음속에 이것을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막 생기더라고요. 힘든 부분들이 싹 사라지고 난 후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선생님들을 모으고 시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재정이었다. 교사 월급은 물론 아이들 점심식사와 학용품 등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았다. 이에 나 선교사는 강신정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강신정 목사는 바로 “기도합시다”라고 응답했고 그로부터 1주일 후 이 사역에 힘을 보태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 선교사와 나보이쇼축복학교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다. 다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지역 특성상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미래는 목동 이외에는 꿈꿀 수 있는 직업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학교의 재개교는 이들 지역주민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나보이쇼축복학교는 아프리카선교회와 청주은성교회(호세길 목사)의 도움으로 교실을 더 지어 4학년까지밖에 없던 학교를 6학년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케냐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등교육은 6학년까지였기에 학생들은 이곳에서 4학년까지 다닌 후 다른 곳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말씀으로 교육을 받더라도 바깥 세상에 나가면 악한 문화에 노출되기 쉽다. 강신정 목사는 이를 두고 “우리가 백지 상태인 아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첫사랑의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며 이 사역의 의미를 설명했다. 더불어 한명의 아이에게 매월 1만 원씩 지원하면 매달 급식비를 후원할 수 있다며 많은 이들이 후원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묵상의 계곡
나정희 선교사는 자신이 ‘묵상의 계곡’이라 이름 지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은 원래 물이 지나다니는 강이었지만 가뭄으로 맨땅이 드러나 있는 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자연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고산지대라 계속 숨이 차올랐지만 가히 묵상의 계곡이란 이름에 어울릴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안타까움이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원래는 물이 가득해야 하는 곳이다. 그것이 이곳 주민들에게도 유익한 일이기에 마냥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없었다.
물 문제 뿐만 아니라 교통 또한 이들의 삶에 커다란 장애요소이다. 오프로드차량이 아니고서는 진입이 쉽지 않은 산골 오지인 이곳은 행여 누가 갑작스레 아프더라도 병원에 데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아프리카선교회가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켜 세우고 있지만 더욱 많은 돕는 손길들이 함께하며 이곳에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씨가 드리워지기를 바란다.
중문그레이스교회
단기선교 팀이 여름성경학교와 새롭게 건설된 교실을 페인트로 칠하는 사이 강신정 목사와 나정희 선교사, 장승빈·김영자 선교사는 대전중문교회(장경동 목사)의 후원으로 건축된 중문그레이스교회 입당예배에 참석했다. 나보이쇼축복학교와는 달리 평지에 위치한 중문그레이스교회는 첫날 방문했던 나샤교회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었으며 바닥 또한 깔끔하게 대리석으로 마감돼 있었다.
교회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1개 동은 그나마 건물의 형식을 띄고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는 않는 듯했다. 그 옆에 판자 집처럼 생긴 장소 또한 교실로 아이들이 수업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사진에서 보던 천막 학교의 모습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학교 식당은 교실 옆 큰 나무 아래 가마솥이 놓여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강신정 목사 일행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아이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영육간에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기도했다.
학교를 둘러본 후 본격적인 입당예배가 시작됐다. 이제 아프리카의 예배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각오를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아마도 우리를 위한 교회 측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신정 목사는 이날 입당예배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이 끝이 아니다. 반드시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라며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기를 권면했다.
예배가 끝난 후 지역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돌아가는 길, 기린 가족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
의도치 않은 내려놓음
케냐에서는 한국이라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다양한 체험을 했다. 마사이족 선생님들과 펼친 축구경기, 밤하늘의 은하수, 아이처럼 순수했던 마사이족 어른들의 미소 등 기억을 떠올리면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으나 이 모든 기록을 담아놓은 카메라와 노트북을 마지막 날 분실하고 말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정희 선교사의 사택으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트럭에 실었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가방 안에 여권까지 모조리 넣어놨던 탓에 아프리카 초행길에 3번이나 여권을 잃어버리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집에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카메라와 노트북이 너무 아까웠다. 아프리카 선교에 모든 기록이 담겼는데 한여름 밤에 꿈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공항까지 갈 수 있었지만 출입국 사무소에서 이민국 도장이 안 찍혔다며 통과시켜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으로 떠나는 한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기자랍시고 동행했는데 이곳저곳에서 민폐만 끼친 꼴이라 면목이 없었다.
아프리카 복음화의 전초기지 탄자니아와 케냐, 이곳에 많은 한국 교회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선교회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으니 부디 많은 이들의 돕는 손길이 더해지기를 기도한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케냐=범영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