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호레이쇼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
작곡: 필립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4.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뉴욕에서 태어난 호레이쇼 스패포드(Horatio Spafford)는 돈이 많은 변호사였다. 그는 ‘무디 전도단’의 재정후원자로 드와이트 무디 목사의 세계적인 사역을 도왔고, 무엇보다도 지역교회의 집사로서 열심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스패포드는 변호사 일로 벌어드린 많은 재산을 시카고의 미시간 호반에 별장을 짓는데 투자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는 10여만 명의 이재민을 내고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틀간 계속된 불길은 도시 전체를 삼켜버렸다. 그가 투자한 재산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사실 그에게 이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바로 일 년 전에는 열병에 걸린 4살짜리 아들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야 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연거푸 겪은 45세의 스패포드는 의사의 권유로 몸과 마음이 약해진 아내와 그가 쉴 수 있도록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때마침 영국에서 무디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가 있어 참석하여 위로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떠나기로 한 날, 스패포드는 갑자기 꼭 처리해야할 업무가 생겨 아내와 어린 네 딸을 먼저 유럽행 여객선에 승선시켜야 했다. 그는 곧 뒤따라가 파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 ‘빌르 드 아브르’(Ville du Havre)는 1873년 11월 15일 313명을 태우고 뉴욕 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고 있었다. 순항하던 여객선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11월 22일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2시에 영국 범선 ‘로크 언’과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객선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비명소리만 가득했다.
스패포드의 부인 안나(Anna Spafford)는 아이들을 데리고 갑판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가라앉고 말았다.
이 사고로 226명이 목숨을 잃고 87명만이 구조되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안나는 ‘로크 언’의 선원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지만 11살, 9살, 5살, 2살 난 딸들은 모두 물에 잠기고 말았다.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듣고 애태우며 기다리던 스패포드는 12월 2일 아내로부터 온 전보 한 장을 받았다. “혼자 살아남았음!”(Saved alone!)이라고 적혀있었다. 한 순간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린 그는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며 아내를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그가 탄 배가 대서양 한가운데를 지날 때 선장은 이곳이 바로 비극의 사고 지점이라고 알려주었다.
스패포드는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출렁이는 바다물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그는 너무나 큰 괴로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에 북받치는 울부짖음을 참을 수 없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일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의 절규는 밤새도록 그칠 줄 몰랐다.
동트는 햇살이 선실 창가로 쏟아질 때, 그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왕하 4:26). 스패포드에게 ‘평안’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속에 잠긴 딸들을 생각하며 몸부림치던 그에게 평강의 왕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그는 작은 소리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읊조렸다. 그리고 펜을 들어 자신의 마음을 써내려갔다.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다.
내 인생길에 강 같은 평화가 흘러들 때에도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거친 파도 같은 슬픔이 몰아칠 때에도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내 운명이 어떻든지, 주님은 날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치셨네.
Whatever my lot, Thou has taught me to say,
평안해요, 평안해요, 내 영혼이 평안해요.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그 무엇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빼앗아갈 수 없다. 아들과 재산과 네 딸을 잇달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스패포드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경험했다. 도대체 어떻게 슬픔 중에 평안할 수 있을까? 바울이 말하듯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후 6:10).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우리의 변덕스런 감정 상태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 평안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깊은 곳에 지어진 탄탄한 토대이기 때문에 세상의 조건과 상황을 초월한다.
여객선 참사 후 스패포드는 다시 세 자녀를 얻었지만 1880년 4살 난 아들 호레이쇼를 폐렴으로 잃는 슬픔이 또다시 찾아왔다. 마침내 그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다음해 온 가족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서 <미국인 거류지>(The American Colony)를 지은 것이다. 그곳에서 스패포드는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공동생활을 하며 사랑을 실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