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조심 문자는 기차가 문경에 도착하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역에는 양 옆으로 도열한 의용소방대가 산불 조심 캠페인을 펼치며 이른 아침 판교에서부터 몰려든 등산객들을 향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들뜬 노년의 등산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산불에 의한 피해가 컸던 만큼 의용소방대의 얼굴은 미소로 무장돼 있었지만 목소리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인덕터널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친 후 검게 칠해놓은 듯한 산들이 눈에 띄었다. 마치 게릴라처럼 불씨가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 흩어졌기에 그 어느 곳도 방심할 수 없었다. 화마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건물도 있었고, 어떤 교회는 도로에서 바라볼 때는 멀쩡했지만 산등성이와 마주한 곳은 검게 그을려있기도 했다. 이날 기자의 최종 목적지인 청송 베데스다교회(이규자 전도사)는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버렸다. 이제 교회를 세운 지 5년, 기도와 찬양으로 일궈온 예배당은 과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선 곳이 돼 버렸다.
청송 베데스다교회 이규자 전도사는 2021년 특별한 목회를 시작했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목회 사역을 전념했고, 경북지방회(회장 하상선 목사)에 가입해 지방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이규자 전도사는 영성과 좋은 성품 그리고 열정을 가진 목회자로 개척 후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해 왔으며 20~25명의 성도들이 모여 왕성하게 부흥하는 과정에서 지난 산불로 인해 예배당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소망을 품고, 고난을 넘어 새로운 성전을 건축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이루고자 성도의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눈물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다
“하나님, 저는 목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목회만 빼고 뭐든 하겠습니다.”
이 말은 이규자 전도사의 어린 시절 신앙 고백이었다. 어릴 적부터 분명하게 느껴졌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지만, 마음 한 켠엔 씻기지 않는 상처가 있었다. 교회 안에서조차 혼자 아파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조건을 달았다. 목회자만은 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달랐다. 이 전도사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평신도 사역자로 조용히 교회를 섬겼다. 하지만 주님은 결국 그녀를 다시 불러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 안에, 사람에 대한 사랑, 영혼에 대한 사랑을 부으셨고, 이 전도사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주님, 원하신다면 가겠습니다.”
때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거실에서 시작된 교회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교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많은 교회들이 온라인으로의 예배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이규자 전도사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집 거실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단지 가족끼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자리, 아무런 장비도,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작은 순종 위에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다.
어느 날 보니, 거실 한쪽에 건반이 생겼고, 강대상이 들어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채워나갔다.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회에서 마음껏 기도하지 못했던 사람들, 상처받고 갈 곳 없는 영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 작은 공간에서 울고, 찬양하고, 다시 살아났다.
예배는 점점 뜨거워졌다. 눈물이 있었고, 회복이 있었고, 때로는 악한 영이 떠나가는 역사도 있었다. 하나님이 직접 만져주시는 예배였다. 이규자 전도사는 말했다.
“저희 교회는 예배와 선교, 두 가지 비전으로 시작했어요. 개척과 동시에 선교를 시작했고, 요르단, 이스라엘, 북한 등 여러 곳에 선교사님들을 지원했죠.”
무언가를 세우려는 욕심도, 숫자를 채우려는 욕망도 없었다. 상처받은 이들이 예배를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길 바랐을 뿐이다. 실제로 수많은 가정이 회복됐다. 이혼을 앞두던 부부가 다시 손을 잡았고, 믿지 않던 남편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자녀와의 관계가 끊어졌던 부모는 눈물로 다시 소통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 전도사는 “우리 교회로 오세요”가 아닌 “가까운 교회로 가세요.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세요”라고 권면했다. 말 그대로 ‘회복의 통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삼킨 불길
2025년 봄. 화요일이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이 전도사는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시댁에 다녀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늘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거운 회색이 깔리고,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순간, 그녀는 발길을 멈췄다. 마음 속에서 뭔가 울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밖에 나가보니 깜깜했어요. 가로등이 낮부터 켜지고, 공기는 뜨거웠고, 바람은 너무 거셌어요.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죠.”
그 불길은, 결국 그들이 그렇게 정성스레 세운 교회를 덮쳤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많은 것을 챙기지 못했다. 성경책 하나, 노트북 하나, 시어머니의 약과 기저귀. 그것이 전부였다. 트럭을 급히 운동장으로 옮기고, 어머니를 대피소로 보냈다. 그런데 이 전도사는 의외의 고백을 했다. 그런 급박한 와중에도 마음 속에 평안이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 전도사는 기도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연락이 왔다. 동장이 물었다.
“전도사님, 빠져나오셨어요? 뒷산에 불이 붙었어요!”
불은 결국 교회를 삼켰고, 사택을 물어뜯었다. 남편이 현장을 찾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마을 전체가 불바다였고, 소방차조차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전화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울었어요. 그냥 불타는 걸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죠.”
잿더미 위의 기도
예배 공간은 물론, 방송 장비, 건반, 냉장고, 숙소 시설까지, 수천만 원의 피해가 났다. 그러나 이 전도사는 여전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다 괜찮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것만으로 감사해요.”
그리고 다시 기도했다. 다시 예배와 다시 찬양을 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지금 이규자 전도사는 여러 길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교단 이욥 총회장의 방문 이후, 몇몇 교회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 시작했다. 매달 지원을 약속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하진 않다.
“교회가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예배하고, 찬양하고,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불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예배
베데스다교회는 지금, 눈에 보이는 예배당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울리던 예배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을 만나고, 가정을 회복하고, 눈물 흘리며 찬양하던 그 자리의 영광은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교회는 불에 탔지만, 예배는 불타지 않았다. 예배는 지금도 꺼지지 않은 불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현재 베데스다교회가 소속된 경북지방회는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교회의 회복을 위해 지원하고 현재의 어려운 사정을 전국 교회에 알려 도움의 손길이 더할 수 있도록 결의했다.
지방회장 하상선 목사는 “재난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도 생겨날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원치 않은 방문으로 닥쳐올 수 있는 것이 재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난당한 교회나 개인, 지역을 도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구제에 대한 주제는 조금 부담스럽게 조금은 과하게 지출해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까 생각해 본다”며 “잿더미가 되어버린 베데스다교회가 이 시대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손길과 마음, 동력으로 아름다운 예배당이 건축되는 과정을 상상하며 도움의 손길을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청송=범영수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