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수 목사(공도중앙, 덕봉)는 도시의 자립된 교회와 농촌의 위기 교회가 함께 살아가는 ‘도농상생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공도중앙교회와 함께, 농촌 지역에 있는 덕봉교회도 담임하며 두 교회를 동시에 목회하고 있다.
도농상생목회는 말 그대로 도시와 농촌 교회가 상생하는 목회 모델이다.
안정된 도시 교회가 쇠퇴한 농촌 교회를 흡수하거나 통합하지 않고, 별개의 교회로서 상호 협력하며 동역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 목사는 “통합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 교회를 없애지 않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며, 그 중심에는 ‘교회에 대한 사랑’과 ‘사심 없는 헌신’이 있음을 강조했다.
덕봉교회와의 만남, 기도와 고민의 시작
2024년 여름, 최인수 목사는 경기도 안성의 공도중앙교회에서 평안한 목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랜시간 지역사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깊은 신뢰를 받으며 안정된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중, 교회 장로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예상치 못한 사역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장로는 자신의 고향인 한 농촌 마을의 덕봉교회가 담임목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골 교회, 낯선 성도들, 전혀 모르는 지역의 상황에 대해 최 목사는 처음엔 큰 부담을 느꼈다.
최 목사의 마음은 깊은 고민으로 흔들렸다. 현실적으로 덕봉교회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성급한 결정은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점이 그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목회자로서의 본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어려운 교회를 돕고 살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덕봉교회 성도들 몇몇이 직접 공도중앙교회를 방문해 교회의 사정을 전하고 상담을 요청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담담하면서도 간절하게 설명했다. 그 중 한 명은 교회를 떠나 방황하던 성도였고, 자신의 어머니가 모진 핍박 속에서도 덕봉교회를 개척했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교회는 꼭 살아나야 합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목사님이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의 고백은 최 목사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이 일은 단순한 상담을 넘어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강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최 목사는 다시 한 번 깊은 기도에 들어갔다.
‘내가 정말 가야 하는 것일까?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신다면 나는 그 도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도 가운데 최 목사의 마음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농상생목회”였다.
도농상생목회, 새로운 목회의 지평을 열다
‘도농상생목회’란 말은 당시 최 목사에게조차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도시에서 자립한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농촌 교회를 흡수하거나 병합하는 것이 아닌, 품고 섬기며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 상생의 목회 모델이었다.
최 목사는 곧바로 이 개념을 성도들과 공유하고, 실행위원회와 사무처리회를 통해 덕봉교회를 지교회로 받아들이자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공도중앙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결단을 적극 지지했고, 그들은 기도와 물질, 인력으로 덕봉교회를 돕기로 했다.
처음 덕봉교회에 발을 디뎠을 때, 최 목사는 적막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고령의 성도들만이 남아 있었고, 예배당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는 “이 교회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매주 공도중앙교회의 예배를 마친 후 곧바로 덕봉교회로 이동해 오후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요일 예배와 가정심방 구역관리 일터농장심방도 병행하며 양 교회를 오가는 바쁜 일정을 감당했다.
이러한 결단은 단순히 물리적인 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 목사는 농촌 지역에 맞는 맞춤형 전도와 사역 전략을 구상했고, 그 실행의 첫걸음으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초청 섬김 잔치를 열었다. 모든 경로당을 직접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초청장을 전달했다.
성도들과 함께 정성껏 준비한 그 행사는 예상보다 훨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예배당은 물론 마당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고, 일부는 공간 부족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덕봉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도와 예배의 회복, 성령의 역사
최인수 목사는 덕봉교회를 ‘100만뱁티스트전도운동’에 신청했다.
처음엔 고령의 성도들이 부담을 느끼고 두려워했지만, 그는 한 달 넘게 전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둘씩 전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마을 방문 전도, 농장과 논밭 현장 전도, 치유기도 전도, 농산물 사주기, 경조사 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점차 자신감을 얻었고, 교회는 매주 활기를 되찾아갔다.
공도중앙교회 역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예배 지원, 차량 운행, 청소 봉사, 음료 제공, 지역 사회 행사 동행 등 다방면에서 덕봉교회를 섬겼다. 성도들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 하나 된 공동체로서 덕봉교회를 진심으로 돕기 시작했고, 이는 덕봉교회 성도들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작은 교회들의 부흥 도구, ‘전도용 건빵’ 사역 확산
최인수 목사가 가장 강하게 고수한 신념은 “교회는 절대 문 닫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회가 쇠퇴했다고 해서 통합이나 폐쇄를 결정하는 것은 목회자의 사명이 아니라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지키시는 기관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교회의 역사성과 존재 이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본질에 대해 꾸준히 설교했고, 이를 통해 덕봉교회 성도들 안에 다시금 정체성과 소명의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덕봉교회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예배 출석 인원은 증가했고,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교회 사역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성도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제 우리가 또 다른 어려운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최인수 목사는 덕봉교회 뿐만 아니라 25개의 작은 교회에 전도용 건빵을 후원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건빵을 받는 교회 목회자들이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흥하는 교회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전도용 건빵 지원 소문이 퍼져서 다른 여러 교회들이 전도를 하겠다고 전도용 건빵 지원 요청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신학교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한 통찰
최인수 목사가 덕봉교회 사역을 통해 느낀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목회자 수급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농촌 교회의 경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신학교 입학생 감소와 농촌으로 오기를 꺼려하는 현실 속에서 무목 교회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는 과거처럼 실습 전도사나 장기 봉사 사역자들이 열정적으로 농촌 교회에 헌신하던 시대는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비해 최 목사는 공도중앙교회에서 신학생 4명을 직접 후원하며 자급자족형 사역자 양성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또한 실천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목회자 훈련 커리큘럼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한 신학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와 사회 속에서 실질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목회자 양성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례교 공동체에 보내는 메시지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최 목사는 침례교 공동체를 향해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기도를 멈추지 맙시다. 세속주의, 인본주의, 합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복음으로 무장합시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향한 열정으로 이 시대의 교회를 다시 살리고 부흥시켜야 합니다.”
그는 도농상생목회의 비전이 단순히 한 교회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확신한다.
그가 감당하고 있는 사역은 하나의 모델이 돼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는 이를 위해 더 많은 목회자들을 향한 체험적인 사역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도농상생목회의 실제적인 부분을 나누는 목회 콘퍼런스를 기획하고 준비 중이다. 최인수 목사의 비전과 헌신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한국 교회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안성=범영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