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언약 (삼하7:1~17)

2022.05.24 13:47:09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32

다윗이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이 ‘예루살렘 정복’이다. 한 번도 정복한 적이 없는 여부스 사람들의 땅,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약속 성취를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다윗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은 이후 최초로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천 년 만에 언약이 성취된 것이다.


사실 세월이 지나면서 마치 하나님이 언약을 잊으셨거나 취소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약 성취의 언저리만 맴돌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천 년의 언약이 서려 있는 이 ‘언약의 땅’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일까? 다윗이 예루살렘 정복 이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법궤였고,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에 모신다. 그리고 너무 감사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춤추는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제국의 아침’을 맞이한다.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언약을 통해 마음껏 복을 부어주신다. 영원히 지속될 복, 이름하여 ‘다윗 언약’이다. 본문은 사무엘하의 하이라이트, 다윗 왕의 진정한 대관식과 같은 말씀이다. 로빈슨(Haddon Robinson)은 사무엘하 7장을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 했고, 브루거만(Walter Brueggemann)은 “사무엘서에서 가장 극적이며 신학적인 중심, 구약성경에서 복음적 신앙의 결정적 구절”이라 했다. 물론 이 언약도 하나님의 일방 선언만 있는 좀 독특한 형태이다. 그리고 ‘다윗 계약’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계약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것, 사랑때문에 맺었기에 계약보다는 언약이라 불려야 할 것 같다. 


이 전에 맺었던 언약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끈 가장 대표적인 언약은 창세기 15장의 언약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고대 계약의식 형태로 맺었던 언약, 쌍방이 의무와 권리를 약정한 뒤 그 사이를 함께 지나가는 형태였다. 만일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쪽으로 쪼개짐을 당해도 좋다는 의미(창15:18), 히브리어로 ‘카라트 베리트’는 ‘언약을 자르다’라는 말이다. 특이한 점은 이때 그 사이를 하나님만 지나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을 ‘무조건적 언약’이라고 한다. 하나님만 준수 의무를 지닌 언약, 하나님은 이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복 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끈 또 다른 언약은 시내 산 언약이었다. 이 언약은 ‘조건부 언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에 조건이 붙어 있다.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19:5),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지킬 때만 유효하다는 것,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율법을 들고 와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 너희가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며 경고했다. 훗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패망하는데 하나님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약이 파기된 결과였다. 

 

다윗과 맺은 언약
다윗 언약은 이런 시내 산에서의 조건부 계약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기나긴 도피생활 끝에 빈털터리로 왕이 된 다윗, 눈물 젖은 빵으로 연명하는 다윗을 줄곧 보고 계셨다. “언약이고 뭐고 다 싫습니다.” “누가 왕 시켜 달랬나요?” 그럴 법도 한데 꿋꿋하게 이겨내는 다윗이 대견스러우셨을까? 파격적인 언약을 맺으신다. 다윗의 갸륵한 마음 때문이다(2). 자신은 끝없이 받아 누리는 것 같고 아무것도 갚아드리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러운 다윗,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살고 하나님은 여전히 천막생활 하신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다윗의 이 마음을 읽으신 하나님은 무조건적 언약을 맺으신다. 일방적인 축복, 다윗이나 그 후손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없다. 그냥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될 정도랄까? 건축에 대해 축복하시고(13),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고 하신다. 7장에 ‘영원히’라는 단어가 무려 8번이나 등장한다. ‘메시야의 왕권’에 대한 전형적 예언이기도 한 이 언약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것, 다윗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이 없다.


사울 왕조는 시내 산 언약이 적용되어 잘못이 쌓여 심판을 당했지만 다윗 왕조는 잘못을 해도 영원히 지켜주겠다는 약속, 더 이상 성전이나 법궤나 정당성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필요 없다. 이유 불문하고 이스라엘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다. 다윗 왕조의 안정과 번영은 곧 이스라엘의 안전과 번영, 그래서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라고 하셨다. 왕도 살고 민족도 살고, 이는 인간의 연약함도 감안한 조치다. 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음을 아신다. 그래서 인간의 연약함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복되게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무조건적 언약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됐다. 본래는 이방인, 하나님을 몰랐던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는 믿음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리고 무조건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된다. 사랑 때문이다.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하늘나라 백성이 된 것,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백성이다.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언약의 핵심은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이다. 7장은 ‘집’이라는 단어가 전체 내용을 이끈다(15회).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1)라고 했다. 흔히 평안하면 다른 생각을 하기 쉽지만 다윗은 아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답다.


오랜 세월 쫓기며 산 다윗, 발 뻗고 편히 쉴 곳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통일왕국의 왕이 되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발 뻗고 누울 집, 왕궁이 생겼다. 누워서 천정을 보니 너무 좋다. 너무 신기하다. 눈물이 쏟아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돌멩이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놓으셨다. 모든 게 신기하고 벅차서 잠을 잘 수 없다. 그런데 여전히 천막생활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신경 쓰인다. 얼마나 착한가?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마음을 갸륵하게 받으신다. 


그렇다면 언약의 시발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이었다. 자기 편한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천막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다윗, 그 다윗이 너무 이뻐서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더 영화롭게 축복하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나님의 다윗을 향한 복(존귀한 이름) 선언이자, 이스라엘을 향한 복(평안) 선언이다. 엄청난 복이다.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해드린 것이 없었어도 하나님은 다윗의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제물로 여기고, 눌러 넘치는 복을 쏟아 부어주신다. 그래서 마음을 드리는 게 중요하다. 이는 성경이 줄곧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언약 속에 당부의 말씀도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6~7).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나를 위하여 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집이 필요 없는 분, 어떤 건물도 하나님을 담을 수는 없다. 그런데 다윗이 처음으로 이 일을 시도한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기에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다. 물론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9), ‘존귀한 이름’이 되게 하겠고(9), 온 나라가 평안하게 하겠다(11)고 하셨다.


또 다른 당부는 과거를 기억하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한낱 양치던 목동이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8). 가난했던 시절을 기억해야 절제도 알고 감사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언약에서 정작 당사자인 다윗은 뒷전에 있고 이를 중개하는 사람은 나단 선지자다. 직접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이 또한 다윗을 겸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 같다.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최고 권력자일지라도 주위의 충고, 듣기 싫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향한 경고도 주셨다. 잘못하면 회초리를 드신다는 것이다(14). 물론 사울 왕조처럼 버림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잘못하면 징계하신다는 것, 징계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 아닌가. 당연히 완전 망하는 징계가 아니다. 돌이키면 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여태껏 이스라엘과 맺어온 관계보다 더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겠다고 언약을 주셨다. 이는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언약이기도 하다(14).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됐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언약 백성이 됐다.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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