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버지와 저는 성도들 앞에서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허리에 잔뜩 힘을 주고 마치 군가 부르듯 하고 내려왔습니다. 물론, 성도님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및 함성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가슴을 적시거나 감흥을 주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냥 씩씩하게 부른 것에 대견해하는 눈빛 그것 하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아버지께 정중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빠, 원수 갚았으니까 다시는 하지 말죠….”
순전히 그 날 무대는, 그 옛날 저 때문에 망친 특송을 상쇄시키기 위해 해 드린 것이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 기쁜 마음으로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법 맘에 드셨던지, “알았다” 하시며 연신 웃으셨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모님께서, 천안 집에 함께 사실 때인데, 동생을 하나님 품에 먼저 보내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아갈 때쯤입니다.
특히 부모님께서 새로 나가게 된 은혜침례교회 오지수 목사님과 박미희 사모님 외에 온 교우들이 우리 가족의 사정을 아시고, 특별히 부모님께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동생의 장례식장까지 오셔서 예배와 기도와 격려를 잊지 않으셨고,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고 순교한 동생의 숭고한 죽음을 우리 가족들보다 더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부모님도 새롭게 정착한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많이 기뻐하셨습니다. 주일 저녁만 되면,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자랑이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저녁, 아버지께서 저희 부부를 부르셨습니다.
“김 목사야! 좀 내려와 봐라.”
무언가 심각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죠.
“2주 뒤에 우리 교회 찬양대회가 있는데, 혹시, 같이 할 수 있겠냐? 못한다면 어쩔 수 없고.”
‘아! 김 목사여! 어찌할 것인가! 이젠 특송이 아니라 찬양대회인가!’
자식이 성인이 됐다고 무조건 하라고 하지는 않으시는데, 이건 뭐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빛을 하시고는 아내를 향해 구애를 하시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성도들 앞에서 찬양을 하게 됐습니다. 부모님 교회는 오후 예배가 2시인데, 저희 교회는 저녁 예배가 7시이니 중간에 나와서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찬양대회 당일입니다.
“남의 교회 사역자가 와서 괜히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아닌지 참 우려됩니다. 연습할 때부터 가사를 통한 은혜가 있었던 곡입니다. 은혜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사말을 짧게 끝내고 제가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 하늘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찬양을 한 절 한 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할 때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게 나열해 찬양을 부르고 있음에도, 마음속에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걸어오신 삶을 마치 제가 답습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함께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며, 그 현장 하나하나를 한 발 한 발 바람과 같이 내딛는 느낌이었습니다.
평생을 관리집사로 헌신해 오시고, 자식 셋을 전부 목사를 만드셨다가, ‘삼형제 중에 한 명쯤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생 녀석의 말이 씨가 되어 본인이 그 열매가 되어버린 사실에 좌절해 계셨으나 조금씩 그 아픔을 교회와 함께 이겨내고 계신 아버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 평화가 부모님을 포함한 우리 온 가족을 덮어 에워싸는 것이 마치 우리 온 가족을 기구에 태워 구름 위를 유영하는 듯 평안을 누리게 해 주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지옥 같은 아픔과 상처의 기간을 보내고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노래할 수 있다니요.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임을 저희 가족 모두가 분명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찬양대회가 끝나고, 심사위원장이신 담임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심사평을 하셨습니다.
“김윤기 집사님 가정의 찬양을 들으며, 부모님과 형님들보다 먼저 순교로 세상을 떠난 고 김진규 목사님이 생각나서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그 힘겨운 과정을 겪어 오시면서도 오늘 이렇게 하늘의 평안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의 대상은 김윤기 집사님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꿈꾸신 특송이 바로 이것이었나 봅니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낸 실력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평안을 노래하는 것. 그러고 보면, ‘슬픔 걱정 가득 차고 내 맘 괴로워도….’라는 찬양을 부를 때부터 아버지의 목소리가 컸었던 이유는, 그 평안을 있는 힘껏 노래하고 계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늘의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은 인생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김진혁 목사
뿌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