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신약성경에서 답을 찾다(4, 끝)

  • 등록 2024.11.05 15: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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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에서 밝히는 죄는 구원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로마서의 죄론에 대한 이해는 구원론에 대한 이해이며, 이러한 죄론과 구원론은 선포되는 복음과 이에 대한 인간편의 반응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혀준다. 로마서는, 유대인은 종이에 쓴 율법으로, 이방인은 본성(양심)에 쓴 율법으로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았다. 이것을 로마서는 ‘죄’라고 말한다. 그 죄는 아담을 통하여 들어온 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데 실패했으며 로마서는 이를 ‘죄’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이 근원적인 죄와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행하는 온갖 죄악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까? 로마서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한다. 근원적인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이는 동시에 우상숭배와 연결된다고 본다. 이 우상숭배가 바로 로마서가 기록되던 사회의 배경인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단지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것이 로마서의 가르침이다. 윤리, 도덕적인 죄들은 근원적인 죄의 결과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는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죄악의 원인이다.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 가운데 하나인 동성애는 강렬한 인간의 욕망이 불일 듯 일어나면서 순리 대신에 역리를 취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육체의 관성에 이끌려 자신에 대한 심판을 자초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4~27; 참조, 고전 6:9; 딤전 1:9~10).

 

하나님을 떠난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고, 이 결과로 하나님은 인간이 죄 속에 살도록 내버려두셨다.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상태에 ‘버려두었다’란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한다(롬 1:24, 26, 28).

 

하나님을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육체를 지향하는 삶으로 인간이 버려진 것으로서, 최악의 방임 상태에 놓인 것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동성애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교훈하는 곳은 로마서 1장 26~27절이다. 특히 26절은 여성 간의 동성애 문제를 언급하는 구절이다. 물론 구약성경도 동성애 문제의 죄악성을 설명한다(창 19:1~28; 레 18:22; 20:13; 신 23:17~18). 이러한 동성애에 대해 현대사회는 다양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는 이성애자들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성애자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동성애가 문제이지만, 동성애자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경도 이같이 주장한다는 태도다. 즉, 성경의 동성애 문제는 이성애자들에게 해당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의 연속성 속에서 동성애는 후천적으로 성 정체성의 문제를 정립한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다.

 

성장 과정에서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정체성을 바꾸어 인식한 사람들에게 동성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말로 성경은 이러한 선천적, 후천적 본성의 변화를 인정하며 이에 기초한 동성애를 허용할까? 결론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동성애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로마서 1장 26절(23, 25절)과 27절에는 특징적인 두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26절의 “바꾸다”와 27절의 “버리다”이다. 여자들은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고 바꾸고, 남자들도 여자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갖는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구체적인 인간편의 행위를 자세히 기록한 내용이다. 인간의 의지적인 행위로 바꾸고, 버린 선택의 행위이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본성의 변화를 부정하며, 인간 자신의 탐욕적이며 이 기적인 선택에 기인한 행위를 분명하게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동시에 스스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동성애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을 실패한 것이다. 이 실패가 성 문제에 대한 혼란을 발생시킨 것이다. 동성애는 죄들 가운데 하나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다(롬 1:18-23).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태도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태도를 변태적이며 감각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혼란이 인간이 인간에 대한 혼란을 발생시킨다. 동성애는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며, 하나님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꾼 결과물이다(1:23, 25).

 

동성애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 방법

동성애의 허용 여부는 사회의 윤리 수준뿐 아니라, 기독교의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이다. 동성애는 근원적인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에 포함되며, 종교다원화 현상 주장에 기초한 종교다원주의의 열매이다. 동성애는 하나님을 떠난 심판이며, 인간의 방종과 탐욕이 극지까지 이르는 현상이다. 동성애의 뿌리인 종교다원주의의 만연이 바이러스처럼 동성애를 퍼트린다.

 

동성애 관용이나 지지는 동성애가 발생하는 곳마다 발생한다. 갈라디아서 2장 28절에 근거해서 차별을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나 이 구절은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구절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즉 인종적, 민족적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복음을 통해서,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원리를 가르치는 맥락의 구절이다.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자들에 대해 바울은 준엄하게 경고한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죄의 결과인 동성애 대한 치유나 회복 대신에 이를 옹호하는 일부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의 편향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실상이 과거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동성애가 하나님을 떠난 심판의 결과이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황에서는 동성애가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동성애는 죄의 결과이므로 죄가 있는 곳에서는 동성애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다.

 

심리학적, 생물학적, 태생적인 성적 경향을 말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접근이며, 동성애를 옹호하는 어둠의 세력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드는 지름길이다. 또한, 동성애 자체를 가지고 죄악시하며 이를 제거하려는 것도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동성애를 평가하고 근절하려는 빈약한 시도일 뿐이다. 근원적인 죄와 연관시키지 않고는 동성애를 해결할 수 없다.

 

동성애 퇴치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치유보다는 그 근원적인 죄의 해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분명한 구원의 체험이 있다면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다.

 

동성애는 사회적인 관용이나 지성적인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결과물이므로 동성애 문제에 대한 대응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영적 전쟁이다. 동성애는 근원적인 죄에서 떠난 것이므로, 이 죄에 대한 치유가 동성애에 대한 치유이다. 그리스도인은 표피적인 동성애 문제를 넘어서는 거룩한 영적 전쟁을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김선배 교수

한국침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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