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이들의 “간접적인 신앙적 후예들”에는 침례교인들(Baptists), 퀘이커교도들(Quakers,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크리스천 교회(Christian Church),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 교회(Brethren in Christ Church) 그리고 제자들(Disciples)이라 불리우는 교회들 등이 있다.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교회(Free Church) 혹은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의 원천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III. 초창기 침례교운동과 그 성격
1. 초창기 침례교운동
영국 분리주의자들(English Separarists)의 교회였던 게인즈보로 교회(Gainsborough Church)의 담임목사 존 스마이드(John Smyth)와 그의 교우들은, 영국국교회와 왕실로부터의 핍박을 피해 1607년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집단이주를 하였다. 암스테르담에서 빵공장을 운영하던 메노나이트 교인인 얀 문터(Jan Munter)라는 사람이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자신의 빵공장에서 기거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들은 주위에 있던 네델란드의 아나뱁티스트들(워터랜더파 메노나이트들, Waterlaender Mennonites)의 신앙행습, 특히 신자들에게만 뱁티즘을 베풀고 그렇게 뱁티즘을 받은 신자들로 교회를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약성서가 말하는 참 교회(Rechte Kirche, True Church)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신자의 뱁티즘(Believer’s Baptism) 원리와 함께, 민주적 회중정치에 의한 행정(Democratic Congregational Polity),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신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풀며(not Infant Baptism, but Believer’s Baptism only), 중생을 경험한 신자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교회(Regenerate Church Membership), 국가권력과는 무관한 순수한 영적인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등의 원리에 입각하여 1609년에 최초로 침례교회를 창립하였다. 즉 17세기초에 영국으로부터 피신해 온 영국 분리주의자들(English Separatists)에 의해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땅에서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따른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인 침례교운동(Baptist Movement)이 시작된 것이다. 종교개혁은 16세기 전반기 동안에만 일어난 운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침례교운동은 기본적으로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에 의해 시작된 “자유교회운동”(Free Church Movement)이라는 큰 물줄기에 속하여 이제는 매우 큰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운동이다. “자유교회”라 함은 국가 혹은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유한 교회(시교회 혹은 국가교회가 아닌 교회)를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만나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자신이 섬길 교회를 택하는 교회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Bibilical Anabaptists)은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교회운동의 원천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16~17세기 당시 대다수의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세상이나 세속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들 취하였다. 왜냐하면 세상과 세속국가가 유아세례 전통을 부정하는 자신들을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들은 교인이 세속국가의 공무원이 되려 하거나 세속국가의 공무원이 교인이 되려고 할 때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그들은 무기를 소지하는 문제나 전쟁에 참전하는 문제에 대하여 극단적인 평화주의자(Extreme Pacifist)의 입장을 취하였다. 세속법정에서 맹세(Oath)를 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았다. 또 일부는 재산의 사유를 부정하였고, 재산공유 집단공동체인 “형제촌”(Bruederhof)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침례교인들은 이러한 면에서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의 삶의 방식이 지나치게 은둔적이고 탈세상적(Extremely Seclusive and Other-worldly)이라고 보았으며, 좋게 말하면 지나치게 평화주의적(Extremely Pacifistic)이라고 보았다.
침례교인들은 세상이나 세속국가에 대해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정당한 목적을 위한 방어적인 전쟁이나 정당한 전쟁에 대해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맹세에 대해서도 침례교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도우심을 전제로 하여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하였다. 이렇게 볼 때 침례교인들은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과 실천을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시대(1517~1648)를 일반적으로 루터의 95개조(Ninety-five Theses, 1517)의 게시로부터 30년 전쟁 후의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의 때까지로 잡는다면, 1609년에 시작된 침례교운동 역시도 종교개혁운동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 김승진 교수 침신대 신학과(역사신학) 예사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