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선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등록 2022.02.15 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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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교를 돌아본다-1

이석곤 목사

침례교 군목단장

 

우리나라의 군종제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군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군종제도가 도입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은 종군의 필요성 대두와 더불어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된 감리교 선교사 윌리엄 쇼(William E. Shaw, 서위렴)와 장로교 헤럴드 보켈(Harold Voekel) 목사같은 외국 선교사의 노력과 더불어 1950년 9월 18일 기독교의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성결교단과 천주교가 군종제도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해 1950년 12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실 지시 제29호에 따라 군종제도를 설치하게 됐고, 1951년 2월 7일 육본 일반명령 제31호에 의거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가 설치됨으로써 군종제도가 시작됐다.

 

그리고 1951년 2월 28일 제1기 군종후보생으로 28명의 목사와 11명의 신부가 입대해 4주간의 훈련 후에 무보수촉탁 문관으로 임관하여 4월에 부대에 배치된 것을 시작으로 어느덧 70년의 역사를 이어오게 됐다.

 

우리나라의 군선교는 이러한 군종제도와 그 시작을 같이한다. 물론 군종제도가 설립되기 이전에도 1948년 11월부터 기독교 신자 간부들은 이규갑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남산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전북 군산에 주둔하던 보병 12연대장인 백인기 중령이 민간목사를 초청해 매주 예배를 드리게 됨으로써 육군 최초의 군부대 안에서의 종교 활동이 시작됐다. 이러한 군인교회의 설립의 영향으로 당시 서울의 용산에 육해공군 3군에 속한 가족들이 1949년 2월 5일 15명이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군선교의 장이 열리기 사직한 것이다.

 

이러한 군선교는 1960년대까지 대부분 군종목사의 활동이나 개 교회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1970년 당시 1군(강원도 지역) 사령관으로 취임한 한신 장군은 장병들의 정신력을 극대화할 것을 고심하던 중에 군종참모였던 한준섭 목사의 조언을 받아 전군 신자화 운동을 전개하게 됐고, 이를 통해 1970년 군신자수 110,033명, 군 사고자수 19,248명에서 1973년 군신 자수 279,102명, 군 사고자수 9,041명으로 획기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전군 신자화 운동을 통해 합동 침례식이라고 하는 가시적인 산물을 나타나게 됐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 크고 작은 합동 침례식을 통해 103회 걸쳐서 60,975명의 결신자를 얻게 해 줬다. 하지만 집단 개종에 의한 부실신자의 양산이라는 문제점과 타종교 간의 상호 경쟁과 불화 문제 등으로 결국 1974년에 공식적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1985년 7월 11일 국군종 24250-150에 근거해 군복음화후원회(현재 한국기독교군선교연 합회)가 기독교 군선교 후원 단일 창구로 인준되어 초교파적인 후원체제로 확립됐으며, 군종목사 들의 활동도 1986년 한국군종목사단을 조직하게 됐다.

 

그리고 1990년 육군교육사령관으로 부임한 김진영 장군을 통해서 육군훈련소를 중심으로 제2 차 진중침례운동이 전개됐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교계에서는 전군 신자화 운동 시기와 마찬가지로 찬반 논쟁이 일어났고, 집단 개종과 집단 침례후 군에서의 양육과 전역 후 사회로 복귀 시 지역 교회와의 연결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필섭 장군은 군종목사들과의 논의 후 실질적인 대안으로 비전 2020운동을 제안했다.

 

1998년 2월 23일 군복음화후원회(현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에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비전 2020 실천운동본부’를 개설했다.

 

동년 11월 13일에 한국교회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군종목사 파송 10개 교단 총무와 교단장이 모여 비전 2020실천 결의문을 채택하고, ‘비전 2020: 이 민족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슬로건으로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러한 비전 2020 운동은 2년전 코로나 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마무리됐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청년선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처음에 목표했던 성장이나 지역교회와의 연결은 점차 약화되고 말았다. 특히 한국군종목사단과 기독교군선교연합회와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실적 위주의 이전 운동의 한계 또한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한국군종목사단 에서 중심이 되어 군선교 비전 2030 실천운동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이 운동의 목표는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백만 장병을 한국교회로’이며, 중점 사역으로 침례, 전도 및 양육, 파송, 홍보 4개 분야로 설정하여 각 지역의 군종목사단이 중심이 되어서 분기 및 반기와 연간 단위의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지금까지 진행된 다양한 양육사역을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군선교 거점교회를 확보하여 보다 활성화된 연합사역을 세워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 2030 실천운동과 군선교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 침례교단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100만 뱁티스트 운동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 군선교의 필요성은 그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미 타교단은 군선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선교 사역자와 군종목사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침례교 군선교의 미래를 위한 간단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현재 군교회에서 사역하는 13명의 군종목사와 50명의 민간군선교사를 각 지방회 및 거점교회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군선교 사역은 해외선교만큼 외롭고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군경선교회를 통해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군선교사역자들에게 교단 차원에서 제작한 온라인 콘텐츠와 책자 등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군인교회는 초교파활동을 하지만 군종목 사 및 군선교사가 후원받은 교단 공과와 자료를 활용해 양육을 진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침례교 사역자가 목회하는 군인교회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군인신자들에게 침례교회를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선교사역자들과 거점교회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전역하는 장병들과 군인가족들에게 침례교회를 알리고 거점 침례교회로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거점교회를 교단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홍보해서 세워나가야 한다.

 

과거부터 군선교를 황금어장이라고 말하며 장병을 낚는 어부가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해 왔다. 이제 100만 뱁티스트 운동을 위해 군선교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청년 선교인 군선교는 침례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군인교회가 침례교회의 황금어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세워나가자.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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