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맘대루 안 되네유

  • 등록 2022.03.15 15: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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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행복행전-1

겨우내 순금 집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다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새벽기도회에 나왔는데 혹시나 ‘치매증상이 더 심해지신 건 아닐까?’ ‘하루 종일 다니시던데 어디서 삐끗하신 건 아닐까?’ ‘고부간에 늘 아슬아슬, 티격태격 하시더니 막내딸 집으로 가신 건 아닐까?’ 그렇게 보이시지 않던 집사님이 겨울이 한참 지난 5월이 되어서야 대문 앞에 멍하니 서 계신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집사님 그동안 너무 궁금했어요. 어디 갔다 오셨나요?” 


“예!” 


짧게 대답만 하시고는 무표정하게 서 계시는 것이었다. 아니 영 딴 사람 보듯 집사님이 저를 완전히 몰라보고 계셨다. 열댓 살부터 마음 속에 쌓은 한을 그렇게 눈물 콧물 범벅으로 풀풀 풀어내시더니 이젠 전부 다 풀어내신 건지 모르겠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저보다 훨씬 총기가 좋으시던 분이 갑자기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는 바라기가 되셨던 것이다. 


‘주님! 순금 집사님 꽃 피는 봄에 가길 소망하셨는데, 그것이 집사님 소원이셨는데 주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하긴 주님 생각은 우리 생각과 영 다르시지요? 그런데요, 그 집사님 소원은 꽃 피는 봄날이었어요.’
한 달 여 지나 6월 어느 날, 부서져라 ‘쾅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계세유?” 

 

현관 앞에는 놀랍게도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순금 집사님이 서 계셨다. 

 

“어머 집사님 웬 일이세요?”

 

“웬일은유? 내가 농사진 상춘데 목사님이 걸려서 왔쥬.”


“아이구 애쓰신 걸 집사님 드시지.”

 

“내가 쬐끔 산자락을 일궈 상추를 심었어유.” 


어느새 기력이 불끈 솟아 땅을 일구고 상추 농사까지 하시다니….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순금 집사님은 어김없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그 분의 기도는 다시 청산유수로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쩌렁쩌렁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다. 


당신 아들로부터 증손자까지 눈물, 콧물이 범벅인 채로 애간장이 끊어질 만큼 애절하게 기도를 하셨다. 기억을 샅샅이 훑으셔서 하나도 모조리 찾아다 기도하시는 것 같았다. 하다못해 상추도 잘 자라게 해달라고 그리고 늙은이가 농사지은 것을 눈이 새빨갛게 해서 눈독 들이는 젊은이들이 상추밭에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증손자가 깨작거리는데 밥 잘 먹게 해 달라고, 도도하고 뻣뻣한 며느리 부들부들 착한 며느리 되게 해 달라고, 아들이 제 여편네 치마폭에 놀아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 옛날 일이 끝도 없이 생각나쥬? 내 입을 어떻게 좀 해 주세유, 증말 지 맘대루 안 되네유.”


젊은 시절 집사님은 정말 곱고 아름다우셨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고은 자태와는 가시밭길 인생을 사셔서 그런지 말씀도 가시가 되어 콕콕 찌른다. 선인장 가시 같은 말씀을 안 하시면 당신이 무너져 내릴까봐 그러시는 지도 모르겠다. 하늘나라는 언제 가시려고 계속 풀어만 내시는 것일까? 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어떻게 눈을 감으시지?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끝도 없이 옛날 일이 생각나쥬?”


“내 입을 어떻게 좀 해 주세유.”


“증말 지 맘대로 안 되네요!”

 

박춘실 사모
샘터교회(김영철 목사)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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