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꽃은 피고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들이 어찌 이리도 어여쁠까요. 봄이 되니 여기저기 그저 감탄사가 연거푸 나옵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씨앗을 정성스레 심는다고 싹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더군요. 꽃마다 심을 시기가 있고 개화의 시기가 있고 열매 맺음의 시간이 있음을 화초를 통해 깨우쳤답니다.
제가 보기에 하도 예뻐서 초봄에 이르다 싶었지만 미리 씨앗을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싹이 나오나 매일 매일을 들여다보아도 싹이 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다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얼마있다 새롭게 또 씨앗을 심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어느덧 떡잎이 쏙 나오더니 연한 녹색의 이파리가 쑥쑥 자라나 소담스레 넝쿨을 뻗으며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꽃은 좀 더 기다렸다 씨앗을 뿌렸어야 했나 봅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떨어졌던 씨앗들이 돌 틈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중에 어떤 씨앗은 싹이 나긴 하지만 떡잎만 나온 채로 가운데 싹은 자라지 않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자주 내리던 빗물에도 부르트지 않고, 척박한 돌 틈에 끼어서도 절망하지 않고, 긴긴 엄동설한에도 살아남은 귀하디귀한 싹이 쏙 그 모습을 드러내니, 와우~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연약한 듯, 그러나 싱그럽고 몹시 작으나 아름다운 자태로 보는 이의 마음을 이렇게 흡족하게 하니, 제가 꽃을 그렇게 바라보듯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주님께서도 우리를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시지 않을까요? 저도 이 작은 꽃을 보니 항상 나를 기다려주시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집니다. 꽃피우고 열매 맺는 자가 되어 칭찬받고 싶어집니다.
마치 이 작은 꽃은 고된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씨앗이 있었기에 만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꽃을 피워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했던 것처럼,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묵묵히 견디는 가운데 극복하고 성장하며, 더욱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치 산모가 산고의 고통 끝에 아기를 분만한 후 회복실에서 머물다 일반실로 옮겨가듯, 이 위기의 고통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 성도와 교회가 말씀과 회개로 새롭게 회복되고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시간은 아닐지요.
“나도 주님 앞에서 작은 씨앗인 것을….” 만약 우리가 그리하면 주님도 마치 우리가 돌 틈의 씨앗에게서 느꼈던 마음처럼 “고생했다, 잘 이겼다, 참 잘 견뎠다.” 칭찬해주시겠지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더 이상은 코로나로 주춤거리지도 의기소침해지지도 말며 영적인 만개를 위해 힘찬 도약의 나래를 펼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