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에덴동산 동물 중에서 가장 간교하다고 표현될 만큼 영리하면서도 자기 의도를 관철해내는 능력이 출중했고, 간교한 꼬임에 하와가 걸려들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뱀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랬다면 하나님이 뱀에게만 벌을 내리셨겠죠. 뱀의 유혹을 문제 삼기 이전에 사람 마음이 어땠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애당초 이 나무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형상은 비슷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창조 능력만큼은 절대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요. 이들이 맡은 역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관리하는 일뿐이었지만 세상에 쉽기만 한 일이 있을 리 없죠. 많은 동물을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달랐던 아담과 하와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지혜였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지혜를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유독 동산 중앙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우뚝 서 있었던 겁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열매를 절대 먹어서는 안 되며,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 말씀과 함께요.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이 사실이라면, 먹은 후 선악을 알게 된다는 말씀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열매를 먹기만 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 대가로 얻게 되는 죽음인데, 이들이 죽음을 우리만큼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왜냐고요? 에덴동산에서는 죽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고기를 먹지 않아 동물을 죽일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창9:3) 설령 수명이 다한 동물의 죽음을 보았다고 하더라도(에덴동산 동물도 인간처럼 영원히 살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동물과 사람은 엄연히 다르죠. 게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옆에 생명 나무가 있었고 이것은 마치 생명을 잃는 것이 영원한 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정말로 아담과 하와가 이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에 대한 하나님 경고를 느슨하게 받아들였음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열매를 먹고도 죽지 않음을 목격한 아담이 아무 의심 없이 열매를 먹었겠죠.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했을까요? 첫째로 욕심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전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정작 이들이 필요로 한 것은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 세계를 알기 위해, 에덴동산 동식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 지혜가 꼭 필요했으니까요. 지혜를 얻는 방법이 오로지 열매뿐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이들에게도 선악을 가름할 수 있는 지혜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었겠죠. 그래도 안 된다면 하나님께 직접 간구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필요한 만큼의 지혜를 틀림없이 주셨을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건너뛰고 쉽게 얻으려는 마음이 욕심의 실체였습니다. 이 작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뿐인 규칙을 깨고 말았으니 엄청나게 커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요.
두 번째는 이들에게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규칙은 하나님 명령이었습니다. 자신을 창조한 창조자의 명령을 쉽게 무시한 것은 그것을 하나의 규칙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뱀이 규칙을 뒤집어 말하자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말았던 겁니다. 규칙을 어기는 이에게는 규칙 하나가 깨진 것에 불과하지만 규칙을 제시한 입장에서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규칙을 깸으로써 아담과 하와는 창조자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 겁니다. 물론 이들이 하나님께 도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열매를 먹었으리라는 확증은 없습니다. 다만 간교한 뱀, 그리고 뱀의 배후에 있는 사탄은 피조물이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언젠가 창조자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탄이 걸어온 길이 바로 그랬으니까요. 5절에서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뱀의 말도 이런 욕망을 부추기려는 의도입니다. 좋지 않은 말을 가려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진짜 좋은 영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