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를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직후, 하나님과 아담이 나눴던 대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하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창 3:11~12).
자기 잘못을 인정해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원망을 앞세웠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 질문에 가인은 모른다는 거짓말부터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했죠. 아벨 죽음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강력한 주장입니다.
“모른다”라는 말은 “몰라서 물으세요?”라는 말로,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말은 ‘아벨을 지켰어야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살인을 저지르긴 했어도 원인은 내게 있지 않다는 변명인데,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보였던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토록 큰 사랑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한 세대 만에 잘못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은 원인을 제공한 뱀에게만 책임을 돌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을 때도 하나님은 죄를 저지른 이들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각자가 받아야 하는 벌을 따로 내리셨죠. 가인의 변명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죽음이 그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그대로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 4:12~13)
아담에게 주셨던 벌이 수고해 땅을 일구어야 양식을 얻는 내용이었다면 가인에게 주신 벌은 땅을 갈아 농사지어도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해도 정착과 거리가 멀 테니 유랑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지었던 가인 처지에서는 매우 가혹하게 느껴질 만하죠.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을 겁니다. 하나님과 아벨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컸다고 하더라도 농사꾼으로서 살아온 자기 인생 모두를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가인에게 유랑생활이란 부모와 가정, 나아가 하나님과 분리됨을 의미했습니다. 동생을 죽였으니 부모로부터 버림받을 테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은 채 유랑생활을 할 운명이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을 뿐 아니라(아담에게는 하와가 곁에 있었죠) 하나님께 버림받고 나면 자기 생명조차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이 아벨을 지키셨어야죠.’라고 따졌던 그였지만 정작 자기를 지켜주실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 4:15)
하나님은 가인을 용서하시면서도 죄를 없애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능력이라면 죽은 아벨을 다시 살려주신 후 가인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는 선에서 정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아벨도 살리고 가인도 하나님께 돌아왔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아벨은 살아날 수 없었고 가인은 죄의 대가를 치르면서 죽음만 간신히 면한 채 살게 하셨습니다. 가혹해 보이지만 이것이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 방식입니다. 표를 받아 죽음을 면한 가인을 보면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지길 원하지만 문 앞에 엎드린 채 우리를 노리는 죄를 결코 떠나지 못하죠.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멀어진 삶을 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그냥 지켜보지 않으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표(구원받은 자녀로 인정)를 얻게 되었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가게 되었죠. 이런 면에서 이 땅에 내린 첫 선물 가인은 살인과 죽음, 범죄의 상징만이 아니라 용서와 구원, 새 생명의 상징이기도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오늘 하루의 삶이 주님이 주신 고귀한 꿈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