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
지금도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넓기도 하지만 가장 깊은 곳 수심이 10km가 넘을 정도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바닷물 전체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물로도 지구 전체를 덮기엔 부족합니다. 30%에 해당하는 육지 높이가 바다보다 높기 때문이죠. 육지를 포함해 지구 전체를 모두 덮을 정도로 큰 홍수가 나기 위해서는 육지 뿐만 아니라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바다 영역까지 덮을 정도로 많은 물이 필요하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는 바닷물 양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물이 추가로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노아 시대에 홍수를 일으킨 그 많은 물은 어디에서 왔고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요? 혹 홍수 이전에는 육지가 낮았다가 홍수 이후에 지각 변동으로 높아지면서 지금의 바다가 되었기 때문에 물이 많이 필요 없었을까요? 아니면 지하수가 터져 올라온 만큼 육지가 낮아져 홍수가 됐다가 다시 높아진 걸까요? 그도 아니면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궁창(창공) 위의 물이 지면으로 쏟아져 내려와 홍수가 됐다가 우주 밖으로 사라졌을까요? 그럴듯한 추측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성경 본문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궁금증은 과학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네요.
홍수 이야기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와 심판이라는 도덕과 윤리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구 환경 변화의 열쇠를 제공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과학 이슈이기도 하죠. 방주 생김새와 가로, 세로, 높이 비율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선박 구조라는 주장도 있고 세상 모든 동물이 다 들어갔다면 공룡도 방주에 들어갔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워낙에 대형 사건인 만큼 이것 말고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죠. 입증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제쳐놓고 다른 관점으로 홍수를 생각해 볼까요? 창조라는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홍수는 원작을 수정하는 작업입니다. 홍수를 통해 육지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게 됐습니다. 생태와 기후는 물론, 이제껏 사람이 만들어 온 모든 문명이 물 속에 잠기며 사라지게 됐죠. 노아 가족이 습득하고 있던 지식과 기술만 빼고요.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토록 단호하게 창조하신 세계를 심판하셨을까요?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요. 우리가 이제껏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완벽한 창조자이심과 동시에 자기 세계를 움직이는 확고한 질서를 가지고 계심이 분명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직접 개입하지 않는 때에도 자기 세계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계시며 언제든 고칠 수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홍수로 물에 덮인 지구는 창세기 1장 6절에서 창공(궁창) 위 물과 아래 물로 나뉘기 전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처음 천지가 창조됐을 때는 온 땅이 물에 덮여 있었고 둘째 날 창공 위아래 물로 나뉜 후 셋째 날 창공 아래 물이 육지와 바다로 나뉘게 되는데 홍수로 온 땅이 물에 덮이면서 둘째 날 이전 모습이 재현된 겁니다. 기계장치에 달린 초기화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만물이 최초 상태로 돌아간 셈이죠. 이후 달라진 환경 아래 새롭게 시작된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창 8:1)
하나님께서 굳이 인간을 남겨두지 않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노아 가족을 포함해 모든 인류를 홍수로 없애고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시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과 인간을 한꺼번에 포기하실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도중에도 하나님은 노아 가족과 방주에 탄 동물을 기억하셨습니다. 어떤 기억이었을까요? 그들이 가진 본성에 대해서였을 겁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다른 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사랑받을 만큼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했음을 기억하셨겠죠.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