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대회(공식명칭은 로잔 국제 세계복음화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올림픽이다. 전 세계 220개 이상 국가에서 5천 명의 대의원이 송도 컨벤시아에서 9월 22일(일)부터 28일(토)까지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Let the Church Declare and Display Christ Together)라는 슬로건을 통해 팬데믹 이후 세계복음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나는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에 한국 대의원으로 처음 참석했고, 이번에 두 번째로 참가하면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한국침례교회의 목회와 선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먼저 이번 4차 대회의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번 4차 로잔대회는 서구중심의 대회에서 비서구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첫 번째 대회이다.
스코틀랜드 선교학자인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가 “기독교 세계의 축이 대거 남반구로 옮겨가고 있다”고 예견했는데 이번 4차 대회가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회가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추구할 것임을 간파했다. 통일성의 뿌리는 1차 로잔 언약(15개 항목)이었고, 다양성은 프로그램 운영과 서울 선언문에 나타났다. 로잔 언약은 존 스토트가 작성한 것인데 그가 탁월한 선교신학자, 목회자, 저술가였지만, 인간이 만든 것이라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4차 대회는 로잔 언약에 통일성을 맞추면서 다양성을 추구했다. 4차 대회의 강사 80%가 비서구권이었다. 지난 3차 로잔대회 때 존 파이퍼 목사가 오전 주제 특강(에베소서)을 혼자 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프리카계 영국인, 이집트, 싱가포르, 브라질, 독일, 미국 등 다양했다.
로잔 문서의 경우 1차 로잔 언약과 2차 마닐라 선언문은 존 스토트가, 3차 케이프타운 서약은 크리스토퍼 라이트라는 탁월한 석학자 한 명이 작성했지만, 이번 4차 서울 선언문의 경우 대다수가 비서구권으로 구성된 33명의 신학위원회가 작성했다. 그렇다 보니 서구의 언어가 아닌 비서구권 언어로 작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개념적 서술’(conceptual description)보다는 ‘이야기식 서술’(narrative description)이 강하다는 뜻이다. 나 역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 서구식 서술 방식에 길들어져 대화식 서술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언문이 장황하고 맥 잡기가 쉽지 않다. 이번 대회는 비서구권으로 리더십이 전환된 최초의 대회여서 자신과 맞지 않은 서술 방식이 불편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를 인내하고 감내할 수 있어야 다양성이란 아름다운 열매를 딸 수 있다.
둘째로, 4차 로잔대회는 국제 로잔과 한국 로잔이라는 두 구조로 운영된 최초의 대회이다.
국제 로잔은 대회 기획, 프로그램 운영, 예산 집행을 맡았고, 한국 로잔은 장소(송도 컨벤시아), 음식(자원봉사자 1700명 및 대의원 5000명 식사), 교통(셔틀버스), 그리고 자원봉사단 제공을 맡았다. 본인 판단으로는 이러한 두 가지 구조의 대회는 이번 4차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구조’의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1700명 자원봉사단의 헌신은 압권이었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이번 대회를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국제 로잔의 마이클 오 총재(Michael Oh, 한국명 오영석)의 경우 3차 대회 이후 발생한 빚을 그대로 떠맡아 총재가 되다 보니 운영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운영상 국제 로잔과 한국 로잔 간의 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사실 로잔대회를 치르기 위해서 각 위원회, 예를 들어 신학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이 줌(ZOOM) 미팅을 해 왔지만, 대회를 앞두고 어느 한 장소에 모여 세부 논의와 현장 소통을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수천km가 떨어진 국제 로잔 위원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보니 자신들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한국 로잔과의 소통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란 말씀처럼 국제 로잔과 한국 로잔 간의 소통이 점차 회복되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번 4차 대회의 운영 핵심 중 하나가 ‘협업’(collaboration)이었는데 이것을 국제 로잔과 한국 로잔이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지만 끝내 이루었다.
셋째로,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의 의미는 140년 전 복음이 처음 들어온 인천에서 로잔대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던 나라’에서 ‘복음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을 220개 국가에서 온 5000명의 대의원들에게 보여준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회 5일째인 목요일 저녁에 ‘한국교회의 열두 돌’을 뮤지컬로 보여주었다. 이 공연은 한국 선교 140년의 역사 가운데 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열두 개의 돌(수 4:5~6)로 상징화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큰 감동을 주었다.
감사한 것은 유관재 목사(성광)가 여덟 번째 돌인 “슬로건”을 발표했다. 한국교회는 1965년부터 1988년까지 수많은 구호 아래 한국 복음화 운동을 주도했다. 이 슬로건으로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성령의 불길을 온 세계로” 등이 한국 복음화를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발표했다. 약 1시간 30분에 걸친 공연 가운데 아쉬운 점은 아직도 한국 최초의 선교사가 1907년 제주도로 파송 받은 이기풍 선교사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1906년에 대한기독교회(침례교)가 한태영 외 4명을 북간도에 먼저 파송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왜곡되어 ‘한국선교 = 한국장로교선교’로 인식시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번 4차 로잔대회 때 참여한 한국침례교회로는 지구촌교회, 성광교회, 강남중앙침례교회, 늘사랑교회, 백향목교회(용인)가 있다. 바라기는 앞으로 5차 로잔대회에서는 한국침례교회의 위상이 더욱 높아져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이바지하길 소망한다.
안희열 교수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