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가 편집한 “조선중대사상사건 경과표”에 의하면, 9월 말 시점으로 31건(동우회 사건, 등대사 사건, 황국교 사건, 신사불참배교회 재건운동 사건, 신인(神人)동맹 사건, 무극대도교 사건, 삼산교사건, 천자교사건, 선교(仙敎)사건 등)의 중대한 사건과 그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 “동아기독교 사건”을 언급했는데, 예심에 회부된 9인의 범죄 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함남 원산부에서 그리스도(基督)를 절대무이한 권위자로 높여 소위 말세론(末世論)을 기초로 그리스도(基督)의 재림(再臨)함으로서 천년왕국(千年王國)이 실현된다는 것을 굳게 믿어 궁극적으로 우리 국체(國體)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황실(皇室)의 존숭(尊崇)을 모독하는 사항(事項)을 유포할 목적으로 한 동아기독교의 결사에 가입하고, 그 결사의 임원 및 신도로서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음(수리 인원 32명).”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는 교단 대표 32인 중 9인을 기소해 예심으로 회부했다. 그리고 이들의 죄목을 밝힌 후 이를 “동아기독교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이로 보건대, 교단 지도자들의 신사참배 거부를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저항을 넘어 사상적 측면으로 보고 취급했음을 밝히고 있다. 즉, 동우회 사건을 비롯한 여러 사상적 사건과 동아기독교회의 신사참배 거부를 동일선상에서 취급해 여타 사상 사건과 똑같이 “동아기독교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교단 대표 32인 중 9인을 예심에 회부한 핵심적 죄목은 바로 ‘재림신앙’(말세론)에 있었다. 1942년 6월 10일 이종근 감목이 검속된 이래 일제로부터 끊임없이 추궁당했던 죄목으로, 일제는 기독교에 있어서 재림신앙을 가장 싫어했다. 일제가 재림신앙을 유난히 경계한 이유는 이것이 유대민족의 재건이라는 민족주의적인 측면 때문이다. 성경 속에 나타난 유대민족의 재건과 식민지 치하 한민족의 재건이 재림신앙으로 연결되어 독립의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일제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고, 자신들의 식민통치에 장애가 된다고 봤다. 그리고 재림 신앙적 요소인 말세론과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태도가 일제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심판적 입장과 기독교적 평화주의를 구체화한다고 여겼고, 그리스도의 왕권과 천년왕국의 지상건설이라는 교리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의 통치 즉 국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배치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43년 5월 28일 9인의 교단 지도자는 조선총독부 검사 와타나베 레이노스케(渡邊 禮之助)에 의해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 예심을 청구됐다. ‘예심청구서’에는 먼저 전체적인 범죄사실은 기술한 다음 각각의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전문 내용 중 이들의 죄목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죄사실
동아기독교회는 메이지(明治) 39년(1906년)경 유태계 캐나다인 선교사 故 말콤 C. 펜윅(조선명 편위익)이 충청남도 강경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도해 얻은 신자 신명균 외 수명 및 침례파 기독교도 약 200명과 협의해 창립했다. 펜윅은 신, 구약성경에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해 편성한 교리 신조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직한 종교단체로 총부(본부)를 함경남도 원산 영정에 두고, 원로 및 교우된 자로 하여금 조직한 것이 원로교우회이며, 이 교우회에 의해 최고 간부인 감목 및 안사를 선임했고, 포교 방침을 심의 결정을 하도록 하고, 감목은 포교 사무 일체를 총괄하여 목사 이하의 사역자를 임면 지휘하고, 안사는 감목을 보좌하고, 함께 지방교회를 순회하여 포교하며, 상황의 감사 등에 종사하고, 목사는 감목의 명을 받아서 담임 지구(구역이라고 칭함) 내 포교의 책임을 지고, 감로 및 교사는 목사의 지휘에 따라 전도와 그 외의 의무를 협의하고, 총부로부터 동아기독교회 편찬에 관계되는 독특한 ‘신약전서’, ‘복음찬미’ 그 외의 인쇄물을 통해 포교에 노력한 결과 쇼와(昭和) 13년(1938년)경부터 함경남도, 강원도, 평안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에 걸쳐서 12구역 지방교회 총 94명의 교인(침례를 받은 신자를 뜻함)과 3,000명이 넘고, 또 만주와 국내에 약간 수의 교회 교인을 얻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 교리 신조의 특색은 그리스도를 절대 유일의 권위자로 숭배하고, 그리스도는 수난 이후 부활해 하늘 위에 있다가 말세에 이르면 지상에 재림해 소위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민족 국가 위에 군림하여 소위 만왕의 왕이 되어 우선 심판을 행한다. 그때 이교도 및 유대 민족을 박해한 국가는 매우 엄한 처벌을 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는 황후의 지위에 올라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임으로, 현재 세태의 혼란 분규는 이를테면 위의 지상왕국 출현의 징조임으로 신자는 더욱 열심을 바쳐 교세 확대를 꾀하고, 복음을 ○기 해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 선포해 그 필연적 결과로서 쇼와(昭和) 12년(1937년) 경까지 공공연하게 신자에게 지령해 이방인(같은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이교도로 모두 호칭)과의 교제 및 국가의 설립 감리에 관계되는 학교에 취학, 신궁 신사의 예배를 엄금하고, 삼가했고, 관헌의 강력한 지휘에 저항하고 또 그 후에 표면을 호도하고 있음과 또 전에 가르치는 자세는 곡해에 기초해 교리 신조를 바꾸지 않은, 즉 천황 무궁의 광휘 있는 우리 국체를 부정하고, 나아가서 황실의 존엄을 모독하는 조항을 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인 검사 와타나베 레이노스케(渡邊 禮之助)가 청구한 예심서에 기록된 교단 지도자 9인의 죄목 역시 “조선중대사건사건 경과표”에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재림신앙을 가르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지원 목사
한국침례교회사연구소 소장
(사)침례교 역사신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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