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쳐나고 국가적으로는 안정과 번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가정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한 국가가 번영의 길로 나아가려면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지도자가 필요하다.
영국의 군인, 찰스 조지 고든 장군은 영국인은 물론 당시 적군에게까지 존경받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에서 벌어진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해, 청나라 황제의 치하를 받기도 했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집트와 수단의 총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교와 무슬림 사이의 우호 증진에 힘쓰고 노예제 폐지를 위해 노력하던 고든 장군을, 당시 식민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도 존경했다.
영국 정부는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고든 장군을 높이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기념비를 건립하려 했지만 고든 장군은 수락하지 않았다. 작위를 수여하고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도 사양했지만, 결국 금으로 만든 작은 메달 하나만 받았다. 1885년 고든 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을 정리하는데, 국가로부터 받은 금메달이 보이지 않았다. 메달의 행방을 수소문을 해봤더니 10년 전 영국에 대흉년이 들었던 해에 장군은 그 메달을 녹여 팔아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했던 것이다. 그 후 발견된 고든 장군의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마지막 물건을 오늘 가장 소중한 국민에게 바쳤다.”
혼란하고 어려운 시대에 고든장군과 같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자가 나라를 통치하고 이끌어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줬야 한다.
2025년 맞이하여 조국의 모습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내란혐의로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 탄핵을 당하고 진영논리에 의해 나라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2025년은 마치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렸던 ‘경술국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을사조약’이란 무엇인가? 을사조약은 1905년, 을사년 11월 17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하고,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내용의 불평등조약이었다.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이양됐으며, 일본이 대한제국에 통감부를 세워 내정을 간섭했다. 즉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 사무를 빼앗은 것이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후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에 병합됐던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참담한 일제 36년의 지배를 받으며,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채 노예처럼 살게 됐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해방을 맞이했고, 민족의 아픔인 6.25 전쟁을 겪었지만 대한민국은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오늘날 세계에서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와 선진화를 이룬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정치적인 혼란과 극단적인 사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이 나라가 점점 혼란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행동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대한민국의 운명을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시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일어냐야 할 때이다. 누가 참다운 지도자인지를 냉철한 모습으로 판단하고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이 정의와 공의로 나라는 다스렸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을 드러내는 핵심 가치이다. 정의와 공의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각각 ‘체데크’와 ‘미쉬파트’인데, 각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말씀, 법에 따른 공의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두 단어는 보통 함께 사용되며,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온전히 다스려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려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할 때, 그의 통치는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정의와 공의가 드러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창세기 18장 1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것도 바로 이 정의와 공의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의와 공도가 원어로 살펴보면 정의와 공의로 같은 단어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은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세상이 됐다. 모두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됐고, 참된 기준이 사라진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은 죄악과 탐욕이 가득한 세상이 됐으며 연약한 자가 짓밟히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시는 것을 통해 이런 하나님의 정의과 공의를 이루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이러한 정의와 공의를 강조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다윗이 온전히 세워졌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붙들린 사람의 삶이 곧 공의와 정의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다윗이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훗날 다윗이 사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이러한 정의와 공의가 다시 무너진 사회가 됐다.
아모스 5장 29절 말씀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기억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온전히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려노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며,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합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길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모든 삶 속에서 말씀을 기준으로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의와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이뤄지는 정의와 공의이다.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욱 큰 사랑을 전하는 것이며 공평하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거저 주는 것이다. 은혜의 종이 되고, 사랑에 빚진 자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의와 공의이다. 오늘 하루의 삶이 이 나라에 공의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참된 지도자를 구하고,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