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여름
중앙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
여학생들이 지나갔어
그래서 나도 지나쳤지
파란색 베레모는 눈에 잘 띄어
비스듬히 눌러쓰고
오렌지색 목 폴라에
아버지의 감색 오버코트를 걸쳤지
멋이란 멋은 다 부린 거야
명동성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거리를 헤매다
다시 돌아왔어
표를 끊고 영화관으로 들어갔지 어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눈물이 흘러내렸어
팝콘을 씹는데
은밀한 것이 문제였지
눈물이 팝콘과 함께 씹혀
약속을 지워나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