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11절 ~9장 17절)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도 사람과 악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던 노아라고 해도 마음에 악이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8장 21절이 이것을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악하다는 이유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 악이 발견될 때마다 심판한다면 애꿎은 땅만 계속 고통받을 테니 차라리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 인간과 하나님 관계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하셨는데요, 9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9장 1절 말씀은 1장 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말씀과 비교됩니다. 생육, 번성, 충만은 그대로지만 정복과 다스림은 없어졌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9장 1절 말씀은 홍수 이전 삶의 회복을 허락하셨을 뿐, 특별한 축복을 더 주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복하고 다스릴 특권이 사라진 인간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해야 했습니다. 우월감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창 9:3~4)
창세기 9장 3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전에는 오로지 식물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창 1:29). 이것 또한 창조 때와 달라진 모습인데, 이렇게 되면 인간과 동물이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죽이려 하면 동물도 인간을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환경 변화로 홍수 이전보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먹거리 양이 줄었으므로 육식이 불가피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육식이 허용됐어도 동물을 아무렇게나 먹어서는 안 됐습니다. 고기를 피와 함께 먹지 말라는 말씀은 동물을 먹을 수는 있어도 생명은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배를 불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는 그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도 무거운 책임이 따릅니다. 생명의 근원이자 사람에게 자신의 형상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계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노아는 하나님 뜻을 잘 따랐으나 세월이 지나 후손이 많아지게 되면 죄가 쌓이고 쌓여 홍수 이전처럼 될 수 있었죠. 하나님은 변화를 택하셨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막강한 지위 대신 자연과 도움을 주고받아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을 주셨을 뿐 아니라 행동에 따른 책임도 지게 하셨죠. 문제는 이렇게 되면 어떤 사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므로 심판을 받게 될 테고, 모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면 비가 내리지 않았을 뿐 홍수 심판과 마찬가지거든요. 결국, 방주 없이 누구도 살 수 없게 되니 홍수 심판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택과 책임을 부여받은 인간에게 방주를 대신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열게 될 새로운 길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 영역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사람 눈앞에 방주가 세워져 있어도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요.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새 질서, 새 언약입니다.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