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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10> 가재는 게 편?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 부부의 일상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전쟁이 있다. 시어머니께서 들렸다 가시는 날이다. 그날이면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지고, 집안에는 부서지는 물건이 생기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뛰쳐나온다.

 

시어머니께서 오시면 자기에게 막말을 하신단다. 살림하는 솜씨가 엉망이고, 시부모 공경할 줄도 모르며, 결정적으로는 부모한테 배운 게 없어서 그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오시면 남편이 어머니만 모시고 나가 맛있는 걸 사먹고 들어온다든지, 심지어는 어머니를 모시고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아이가 먼저냐 어머니가 먼저냐고 따지면, 남편의 반응은 바보같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무시하던지 자기 어머니 흉을 본다고 불처럼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남편은 마마보이의 전형이다. 시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 잘못 들여서 집안 망하게 생긴 형국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죽을 맛이거나,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이 아내가 원하는 것은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자신을 제일 우선으로 여기는지 확인받고 싶어했다.

 

자신이 좀 부족해도 남편이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잘못이 있으면 야단을 맞아야 할 것이고, 가족인데 네 편 내 편을 나눠서 뭘 하겠냐는 것이다. 남편이 바라는 것은 아내가 자신의 가족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주고, 존경하고 사랑으로 섬겨주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고 싫어하면, 그것은 남편 자신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온 인생을 희생하고 키운 아들이 행여나 푸대접을 받을까 조바심이다. 며느리가 아들 아침 안 챙겨줄까, 설거지를 시킬까, 지자식 챙기느라 남편은 뒷전일까 자나 깨나 걱정이시다.

 

당신께서 그렇게 사랑하며 키운 자식이 여자 때문에 고생하고 사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들 틀린 말도 아니다. 나름 화낼 만한 이유가 있다.

 

이 가족의 구조는 시어머니와 아들이 한 팀, 며느리와 손주가 한 팀이다. 가족의 건강도를 살펴보는 한 가지 방법 중에 하나는 그 가족의 하부구조(Sub system)을 살펴보는 일이다.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바로 이 핵가족이 한 가족 시스템을 형성한다. 그런데 한 가족 시스템 안에서 하부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쉽게 말하면, 누가 누구의 편이 되느냐의 편먹기 전쟁이다.

 

교회의 한 집사님은 맨날 술에 쩔어 사는 남편이 내내 원망스러웠다. 누구를 만나든, 집에 있든, 식사에는 반주가 따라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컴퓨터에는 포르노를 본 흔적에다 온 방에는 맥주병이 나뒹굴었다. 교회에서는 집사님입네 하는 것이 창피하고 화가 나면서도, 행여 사람들이 볼까 열심히 술병을 치웠다. 이혼도 수십 번 생각했지만 사춘기의 아이들 걱정에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이 집사님에게 힘이 되는 것은 남편과는 달리 살갑고 다정한 아들이었다.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아들에게 푸념을 했다.

 

아들은 어머니와 쇼핑도 가고 이야기도 들어주며 맞장구를 쳤다. 이 가족의 하부구조(sub system)는 아들과 어머니가 한 팀, 그리고 아버지는 외톨이가 되는 그림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아들이 채워주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이 어머니는 정서적인 친밀감을 나누는 대상을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옮겨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족 구조가 애초에 아버지 탓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우선순위를 아들로 정한 어머니가 다 잘한 일도 아니다.

 

한국의 많은 가정들이 아내와 그 자녀가 한 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주 보는 광경 중에 하나는 아버지와 큰 아이가 차 앞에 앉고, 어머니와 동생이 뒷좌석에 타는 장면이다.

 

혹은 남편은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까 혼자 편하게 자고, 아내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잔다. 이 모든 그림이 가족의 하부구조를 말해주는 힌트가 된다.

 

젊을 때는 돈 버느라 정신없어서, 혹은 젊을 때 친구들이 더 좋아서, 일이 너무 바빠서 집을 자주 비운 한국의 아버지들은 막상 가정에서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애인이 되고 친구가 되며 의지가 된다. 어느새 아들들이, 딸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식들이 성장하고 독립하고 결혼을 할 나이가 되면 자식을 떠나보내는 일이 더 힘들고 더 아파지는 것이다.

 

부부끼리 노는 법을 잊어 버린 지 오래인 가정은 자녀들을 출가시키며 큰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가족의 하부구조가 중심을 잃어버린 대가를 이때에 고스란히 치루게 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정의 건강한 시스템은 부부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혼자 있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스스로 책임져 꾸려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부부라는 팀이 가장 우선이 돼야하는 가정의 중심구조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면, 가장 우선순위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도 사랑스럽던 아들이 여자 만났다고 정신을 빼놓고 있는 듯이 보이면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건강한 가정을 꾸려가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자식 다 소용없어, 뭐니뭐니해도 영감이 최고야라는 할머니들의 푸념 같은 조언은 사실은 꽤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나와 나의 배우자가 우리 가정의 중심추이다. 그 가정 안에서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의 자식들도 안정감과 안전감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다. 나는 내 배우자 편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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