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이다. 교회가 선교를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활동으로만 이해한다면, 선교는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하나로 축소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과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적 존재라고 말한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보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멀티교회는 단순한 교회 운영 방식이나 조직 확장 전략이 아니라 선교적 교회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델이다. 선교적 교회의 개념은 레슬리 뉴비긴이 제기한 질문, 곧 “우리 시대 문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선교적으로 참여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깊이 연결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이해를 넘어, 교회 존재 자체가 선교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교회가 선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더 나은 교회 활동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 됨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뉴비긴 역시 교회의 존재 자체가 선교적 본질을 지닌다고 보았고, 선교는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징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우리나라에서 욕심 많은 사람에게 ‘놀부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도마와 같은 사람’(Doubting Thomas)이라고 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의심했던 제자 도마’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도마는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의심이 변할 수 있었을까요? 의심이 찾아올 때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 도마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자 자신도 함께 죽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의심이 많은 도마가 됐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구멍 난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려주셨을 때 그 자리에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니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이 닫혀 있을 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조선 시대 ‘구황촬요(救荒撮要)’라는 책자가 보급됐다. 1554년 명종 9년에 승지 이택 등이 주도하여 편찬했다. 당시 조선은 연이은 흉년과 대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매우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이 책은 흉년에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대용 식물을 찾는 법과 조리법을 정리해 보급한 종합 구황 전문서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 정보를 담았는데 무려 851종이 수록됐다. 선조들은 경험을 통해 독성을 없애는 방법과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한식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자랑거리가 됐다.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 등 한식의 기반이 되는 ‘발효 식품’이 장 건강과 면역력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글로벌 미식가들 사이에서 ‘기능성 가스트로노미(Functional Gastronomy)의 표준으로 대접받고 있다. 뉴욕과 파리, 런던 등 세계적인 미식 도시에서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급증했다.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코스 요리가 최고급 미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
오늘날 한국교회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지역 공동체의 약화, 다음 세대의 이탈, 작은 교회의 어려움이라는 복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단순히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시대와 지역에 맞는 선교적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이 멀티교회다. 멀티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여러 지역에 예배 공동체를 세우거나, 동일한 비전과 신학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여러 교회가 협력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멀티교회는 단순히 현대적 필요에 따른 조직 모델인가, 아니면 성경적 근거를 가진 교회 개척의 한 방식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는 ‘에클레시아’이다. 이는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진다.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과 연합한 신앙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며, 성도들은 그 몸에 속한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새로운 교회 개척의 필요성과 동시에 교회 개척의 어려움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지역마다 교회가 이미 많다는 인식, 재정적 부담, 성도들의 반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개척 방법에 대한 실제적 경험 부족은 교회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복음이 필요한 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본질적 사명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공주꿈의교회는 ‘멀티교회’라는 선교적 교회 개척 모델을 실천해 왔다. 멀티교회는 공주꿈의교회가 대전과 세종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처음에는 미국 교회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던 멀티사이트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개척이 단순한 외형적 확장이나 문어발식 성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공주꿈의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선교적 사명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고, 하나의 교회가 여러 지역에서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된 교회들이 동일한 비전과 사명 안에서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게 됐다. 그렇게 정리된 개념이 바로 멀티교회이다. 멀티교회는 독립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장으로부터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의 여정입니다. ‘산티아고’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야고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지중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배를 타고 로마를 지나 스페인까지 건너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야고보의 별명은 ‘열정적인 제자’입니다. 야고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결단의 사람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20) 예수님께서는 어부인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베드로, 안드레와는 다른 위치의 어부였습니다.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버려두고’라는 말에서 ‘품꾼(the hired servants)’은 고용된 일꾼들이기에 일꾼들을 거느리고 어업을 하던 선주이거나 많은 부를 누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유함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이 야고보인 것입니다. 예수님만 붙잡고 주님만 의지하는 성도는 믿음의 모험을 떠나는데 주저하지 않고 결단할 수 있습니다. 열정의 사람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
디모데후서 4장 11절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려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가는 곳마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맥도날드와 켄터키 프라이 치킨(KFC)이다. 특히 KFC의 심볼로 등장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노인분의 웃음 짓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굉장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며, KFC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2026년 기준으로 KFC는 전 세계 150개국에서 약 3만2000개에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KFC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2000개의 신규 매장이 추가되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KFC는 전 세계 시스템 판매액 기준으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레스토랑 체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KFC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샌더스 대령은 미국 KFC의 창시자로 창업 당시 60대 중반이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생활하면서 적은 연금으로 연명하는 우울한 상태였다.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는 대신은 남은 일생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고심 끝에 자신의 재능은 치킨을 맛있게 튀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치킨 비법을 식당에 팔면 장사가 잘 될 것
기독교 신앙은 창조의 절정이자 중심인 인간을 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둡니다. 성경은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관계하도록 창조된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격성과 인격적인 존재 방식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고 관계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종교개혁자 칼뱅은 기독교는 두 지식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인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면밀히 살핍니다. 반면에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만, 정작 인간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지식에는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성경은 많은 것을 말하지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지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관심을 가져도 성경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 혹은 성경 외의 ‘책’
베드로는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수를 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 많이 공감대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던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다시 부르시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살아갈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다시 부르심(Recall)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포기했지만 주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베드로와 같이 낙심과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힘든 일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거나 쾌락과 정욕으로 빠지면 심령이 더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성도는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야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리콜의 목적은 사랑을 회복하라,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문, 거울, 시계입니다. 카지노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바람이 들어오면, 제정신도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없습니다. 제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물음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시간을 알면,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도 그렇게 합니다. 창문을 닫아 하늘을 가리고, 거울을 치워 자신을 잃게 하고, 시계를 멈춰 영원을 잊게 합니다. 이 가려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는 강한 말씀을 하십니다.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며 우리를 그 카지노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 5:28) 하나님은 죽음과 무덤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세상 속에서 분명한 것 하나는 죽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죽여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게 돌아갑니다. 끊임없이 해야 할 일, 소비할 콘텐츠, 따라가야 할 흐름이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은 ‘멈춤’인데, 이 시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