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프라하의 베들레헴 교회에서는 얀 후스를 떠올렸다. 그는 성경의 권위를 외치다 화형을 당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 또한 죽임을 당했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목숨까지 내어 놓았던 것일까. 그들은 말씀을 대중에게 선포하기 위해 죽임을 당했다. 단순한 주장이나 사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놓고 있는가. 성도를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여행이 끝난 지금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에서는 츠빙글리를 묵상했다. 설교자의 본분은 시대의 요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교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라고 다그치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라는 이름의 유혹은 더욱 교묘하게 다가오고 있다. 진리를 거스르는 문화는 목회자가 말씀을 전하려 할 때 세상을 모르는 목회자, 앞뒤가 꽉 막힌 목회자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 불편하지 않은 메시지, 무난한 진리. 우리는 혹시 성도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편안함이 아니라 진리를 선택하는 용기임을 다시 깨닫게 됐다.
융프라우에서는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묵상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형성된 빙하와 산맥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게 됐다. 인간의 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거대하다. 종교개혁 역시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였다. 지금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 흐름을 읽지 못할 뿐이다. 기도가 더욱 필요하다. 자연을 바라보며 천둥소리에 소명을 받은 루터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목회자가 돼야 한다.
파리에서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을 기억하는 장소를 찾았다. 화려한 관광지와 달리 안내 표지판 하나뿐인 그곳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얼마나 큰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우리의 신앙은 혹시 주님의 빛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교회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질문은 무겁게 남았다.
순례 기간 중 현지에서 드린 주일예배는 특별했다. 호텔 세미나실이라는 낯선 공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예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 앞에 섰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나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이 고백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기준이며, 사역의 중심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할슈타트는 쉼 그 자체였다. 며칠간 흐리던 날씨 속에서 만난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은 하나님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햇볕에 대한 감사를 배웠다. 늘 누리고 있었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됐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기도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번 여정은 쉼이었고 동시에 도전이었다. 위로였고 동시에 부르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시며 역사하고 계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순례에 참석했던 한북지방회의 한 목회자는 이번 종교개혁지 순례에 대해 “갈수록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순례 일정 자체도 매우 의미 있었지만, 무엇보다 품격 있는 숙소와 식사가 긴 여정 속에서도 몸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장기간의 일정에서는 피로가 쌓이며 예민해져 작은 불편이나 갈등이 생기기 쉽지만, 이번 순례에서는 그러한 불편한 잡음 없이 참가자들 사이에 감사와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종교개혁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당시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개혁자들이 왜 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책이나 자료로 접하던 역사를 현장에서 체감하며 목회자로서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됐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번 성지순례를 주관한 남궁한규 집사(신아여행사)는 “종교개혁지 순례는 일반 관광과 달리 신앙적 의미를 중심으로 동선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목회자와 성도들이 순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전, 이동, 식사, 숙소, 현장 해설까지 균형 있게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회와 교회가 보다 안정적으로 성지순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맞춤형 종교개혁 순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출발 전과 다르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품고,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침례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그 말씀 위에 다시 서자. <끝>
남궁명규 목사
좋은나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