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부터 타 교단에서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성 목회자들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단 내의 일부의 교회들도 여성을 목사나 사역자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의 가정을 포함한 사회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성평등과 여권 신장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화⋅사회 변화에 교단 내의 지도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정확히는 1979년 근본주의자들이 총회를 장악)부터 2000년 전까지 교단 내에서 벌어졌던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의 싸움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하여 교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사역과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무오성과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고수해 여성 목사 안수 및 사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은 대표적인 침례교 전통 가운데 하나인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지역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나름 균형 잡혀 보였던 교단의 양 세력의 균형이 1984년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여성목사 안수 금지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각 지역교회에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었으며 설교는 허가하되 공식적인 목사안수는 불가하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양 세력의 균형이 무너진 이면에는 점점 세력을 더해가고 있었던 동성애 문제도 한몫을 차지했다. 1990년 자신을 동성애자라 밝힌 존 블레빈스(John Blevins)가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 안수 여부를 타진하자 총회는 동성애 행위는 승인할 수 없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고 결의했다. 교단 내에 더해가는 여권 신장 운동과 동성애자까지 목회자로 등장하려는 시도에 근본주의 진영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입장은 1980년대부터 근본주의 진영에서는 현재까지 동일한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1980년대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과의 논쟁 이후, 근본주의 진영의 실력자이며 교단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몰러는 하나가 허용되게 되면 또 다른 것이 연이어 허용되고 그렇게 되면 교단의 역사가 “미끄러운 비탈길”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단의 신학이 자유주의화 되는 것을 염려하는 교단 내의 분위기는 그때부터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인 2022년 여성 목사가 있는 교회 목록을 발표한 마이크 로(Mike Law)도 자신의 블로그에 여성 목회자 문제는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은 문제로 여성 목사를 허용하면 곧 동성애도 허용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교단 내의 대표적인 (강경한) 근본주의자들인 이 두 사람의 핵심은 교단이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게 되면 그다음으로 동성애자를 수용하게 되고 나아가 성소수자 등을 인정하게 되어 교단의 신학이 보수에서 필연적으로 미국의 연합감리교(UMC)와 미국장로교회(PCUSA)처럼 자유주의로 나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결국 사회․문화에서 더해가는 여권 신장 운동은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로 신학 충돌로 이어졌다.
신학 충돌 : 보완주의 vs 평등주의
이 논쟁의 시작이 여권 신장이라는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대한 교단의 대응에서 출발했다면, 본격적인 논쟁은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성서 구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보완주의자들과 평등주의자들로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보완주의자들의 주장은 여성이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나 그 역할은 비 목회적이어야 하며 교육, 선교, 기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평등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여성들을 남성들과 동일하게 부르시고 은사를 주셔서 그동안 사역, 전도, 제자 삼는 일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행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남침례회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목사안수 받는 사람은 애디 데이비스(Addie Davis, 1964년 안수)이다. 그 이후 논란 속에 각 지방회에 따라 지역교회의 필요로 여성에게 목사 안수가 허용됐다. 하지만 교단의 교권을 장악한 근본주의 진영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급기야 안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먼저 평등주의자들에 대한 근본주의 진영인 보완주의자들의 비판이 시작됐다. 이들이 염두에 뒀던 것은 실제적으로는 교단 내에 자유주의 신학의 경향을 띄고 있다고 믿었던 온건주의 진영(평등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실제로 1970년대의 온건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근본주의 진영의 지나친 강조는 불필요하고 맹목적인 ‘성경 숭배’라고 비판했고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강조하며 여성의 목사 안수를 찬성했다.
이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온건주의자들이야 말로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며 침례교의 전통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고 있는 보완주의자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성경 구절은 디모데전서 2장 12절(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과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이었다.
보완주의자들의 견해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역할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즉, 남성과 여성은 가정과 교회에서 각각 독특하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 여성은 비 목회적이어야 하며 남성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성이 먼저 창조됐고 여성이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복종을 보존하기 위해 여성들을 목회적 리더십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결국 1984년 캔사스 시티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목회 사역에 있어서 여성안수와 여성들의 역할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인 결과, 58%(4,793표) 대 42%(3,466표)로 여성 목사 안수를 금지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의 핵심은 보완주의로 알려진 것과 같이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4년의 결의안은 “여성 목사 안수에 따르는 리더십 역할과 목회적 기능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교회의 생활과 사역은 여성에게 권장한다”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여성은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나 그 역할은 비 목회적이어야 하며 교육, 선교, 기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총회 이후에도 근본주의 진영의 신학자를 대표했던 패이지 패터슨(Paige Patterson, 전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총장)의 아내인 도로시 패터슨(Dorthy Kelley Patterson)과 여성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달라스침례대학교의 교수였던 잰 클랜턴(Jann Aldredge Clanton)의 논쟁이 계속됐다.
도로시 패터슨은 여성의 역할을 가정과 어머니로 제한하고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고 남성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클랜턴은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동일하게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사역에 그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여성 신학자로 남침례신학대학원 교수를 역임하였던 몰리 마샬(Molly T. Marshall)도 부활의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이 여성이었으며, 성령께서는 성별을 따지지 않으시고 목회 사역의 은사를 주시며, 침례받는 대상에 있어서도 차별이 없다며 목회 사역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