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을 통해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인생을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이를 종말론적 신앙이라 합니다. 급진적 종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인생을 결산할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고, 늘 의식하며 사는 신앙을 말합니다(전11:9, 계20:12).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기록된 이 말씀처럼 죽음 이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으로, 모든 성도가 반드시 마주할 현실입니다. 그래서 늘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 생활하며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것이 신자 된 도리입니다. 물론 신자는 마지막 날에 징벌적 심판을 받는다든지, 정죄, 저주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롬 8:1). 또 형벌과 책망, 부끄러움이나 수치, 버림당함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벧전 2:6).
천국은 고통과 슬픔과 저주나 형벌(정죄), 두려움이 없는 곳이며 오직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곳이며, 그곳에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칭찬과 존귀와 영광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1:3,4 ; 계 21:26, 벧전 1:7). 마지막 날 신자의 인생 결산은 상급과 관련된 것이며, 그 심판(판결)은 천국에서의 영원한 우리의 모습과 운명, 그리고 위치(지위)를 결정하는 판결이 될 것입니다 (천국은 지옥이 그러하듯 차등이 있는 곳입니다. 물론 불행의 근원인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날 우리의 인생 결산은 ‘자신의 신앙에 의하여’ 판결이 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인생의 결산의 날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그는 우리가 쫓았던 이생에서의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정욕은 내세에서는 다 지나가고 다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은 17절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곧 신앙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결국 마지막으로 영원히 남는 것은 오직 신앙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은 오직 신앙(=하나님 뜻을 행한 삶)으로만 되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 기준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신앙뿐입니다. 이렇듯 신앙은 단순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뜻과 신앙은 무엇이며, 또 좋은 신앙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좋은 신앙을 가질 수 있는지가 인생에선 가장 중요할 것이고, 이 신앙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목적으로 하고, 신앙에 진심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중요한 만큼 신앙을 목적으로 하고, 신앙에 정진하며, 신앙에 사활을 걸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목양의 이유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은 목사님들이 먼저 이런 신앙의 삶을 살고, 본을 보임으로, 바로 이 신앙을 전수하는 것일 겁니다. 신앙에 전심을 다하고 생명을 걸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더욱 근본적이고 중차대한 이유는 우리 인생의 성패를 떠나 하나님의 영예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그 분의 영예는 우리의 생명보다 더욱 중요함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하다고 말하는 기독교 신앙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올바른 기독교 신앙의 이해는 우리의 신앙 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 신앙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충분한 이해도 없이 신앙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아이러니합니까? 마치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는 것과 같고,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결혼하는 것과 같고, 테니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심판받아 지옥에 간다”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원의 공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고 형통해지고, 반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고 인생이 힘들고 꼬인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똑바로 잘하자”는 식의 단순한 인과응보적 공식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믿고 순종하면 천국에서(혹은 이생에서) 칭찬과 상(복)을 받고, 잘 믿지 않고 불순종하면 내세에서(혹은 이생에서) 책망과 벌(화)을 받는다는 조건적 보상 체계 역시 기독교 신앙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좁고 단편적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단순한 상·벌 체계나 인생 성공(행복, 축복) 공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인적 변화와 구속사적 은혜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신앙을 ‘잘하면 복, 못하면 화’라는 도식으로 규정해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는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 그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충성, 봉사 헌신하고 교회와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고 전도도 하면서 살자'와 같은 류의 메시지(일꾼을 만드는 일)가 기독교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는 단지 인간의 구원과 섬김, 사역(일)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주를 위해 일하는 것 곧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헌신하는 일, 일꾼이 되는 일은 분명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기독교 신앙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부요하며, 풍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조강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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