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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 -12

떠남(1)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날은 실제로 단 하루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마지막과 시작이라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하루의 차이가 일 년의 차이가 되고 세상을 보는 시선의 큰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가정의 시작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정의 시작을 살펴보는 작업은 현재 우리 가정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며 사람을 위해 디자인하신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이끌어 오시며 주신 주례사가 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로다(2:24)”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가정을 향한 놀라운 원리가 담겨져 있다. 가정을 이루며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단계가 바로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느새 십대가 된 시점에서 이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서 나의 품을 떠날 때를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싸하게 아리다. 그래서 자식들을 떠나보내며 빈둥지증후군을 앓는 많은 부모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그러나 부모를 떠나는 작업은 분명히 성경적이고 필수적인 성장의 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부모를 떠나는 첫 과정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면 실제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떠남의 원리에 있어 실제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이는 주로 경제적인 독립과 연관이 되어있다.


시작부터 돈 이야기인가 싶지만 실제로 경제적인 독립은 심리적, 정신적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재정 관리의 능력은 절제와 계획성이라는 정신적 건강의 중요한 척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혜롭게 쓰는가는 청지기로서의 성숙한 신앙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이혼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주된 이혼 사유는 바람(infidelity), 대화문제, 학대, 재정문제이다. 그 중에도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재정의 문제이다. 재정의 안정성이 흔들릴 때 안타깝게도 가정은 쉽게 안정감을 잃어버린다. 가정을 시작할 때 경제적인 독립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석사, 박사까지 공부가 길어지는 현실에서 결혼을 언제까지 미루라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에서 해결해야 할 갈등의 요소가 하나 더 첨가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부모의 돈이라는 특혜이자 엄청난 짐이다. 이 특혜는 또 다른 굴레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찾은 D양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며 운을 떼었다. D양의 아버지는 매우 강한 성격으로,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휘두르려고만 하셨다. D양이 내리는 결정을 비판하거나 늘 믿지 못했다. D양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자녀까지 있는 마당에 자신의 통장 잔고까지 체크하는 아버지를 못 견뎌 했다.


언뜻 보면 그 아버지가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인 듯싶다. 어떻게 하면 그 아버지의 컨트롤에서 벗어날까 함께 생각해 보던 중, 부모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이지 못했던 D양의 역할이 드러났다. 아버지에게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지나친 참견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자신의 통장이 아버지의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작업이어야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통장 잔고를 체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버지 돈이니까. 경제적인 독립이 가정뿐만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과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게 크다.


우울증, 불안증 등의 여러 증세로 상담소를 찾을 때, 직장이 없고 집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만 하거나 노숙자(homeless)의 상태에 있다면 정신과 치료와 함께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은 먹을 곳과 잘 곳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직장을 찾는 일, 집을 찾는 일, 그래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감을 되찾는 일이 제일 시급한 목표가 된다.


상담과 case management, 즉 실질적인 도움과 다른 기관과의 연계가 함께 이루어져야만 정신치료도 효과가 있다. 경제적인 독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한국문화에서 성공하고 잘 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공식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학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계속해서 길어지는 공부로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문제는 뒤로 밀리게 된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무엇이든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너는 공부만 해. 나머지는 우리가 다 책임질테니까라고 자녀들을 책상으로 보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긴 학업의 끝에서 길을 잃는 젊은이들을 만나곤 한다. 공부가 끝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갑자기 황당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사회생활을 좀 경험해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이 직업에 대한 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해서 무엇에 쓸 것인 지가 더 확실한 것이다.


상담소를 찾는 젊은이들 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열정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 걷기는 했는데 막상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독립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청년들을 상담할 때 데이트 다음으로 많이 떠오르는 이슈가 바로 진로이다.


진로 때문에 방황하는 청년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 청년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는 일 중 어떤 분야에 실제적인 열매(, 칭찬, 성과 등)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그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세분화하고 한단계씩 구체적으로 계획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은 진로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독립과 가정의 시작에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부모에게서 건강하게 떠나는 구체적인 준비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떠남이 필요하다. 새롭게 태어나는 가정은 부모에게서의 떠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떠남은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내가 독립적이고 제 몫을 감당하는 당당한 사회인으로 설 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안심하고 우릴 떠나 보낼 준비를 하실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하고 세워간 가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또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꿈과 진로를 결정하고 힘차게 날아오를 때를 위해 격려하고,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의 날개로 날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끝인가 싶지만, 동시에 시작이다. 우리가 자라난 둥지에서의 떠남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가정의 시작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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