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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이미지

 

요즘 기업 광고에 CEO가 직접 출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사실 CEO의 얼굴이 회사의 얼굴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회자의 이미지가 곧 교회의 이미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그 교회의 목회자를 보고 교회를 보게 되면 모두가 묵시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있다. 대개 목회자와 교회는 닮아가게 되어있다.

 

당장이야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반드시 관련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은 목회자의 집, 목회자의 가정의 모습이 바로 목회자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근원지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서 가정에 충실한 목회자의 모습을 성도들이 보고 싶어 한다. 비록 우리나리의 이혼율이 30%이상에 육박하고 있지만 그래도 목회자만큼은 가정을 지켜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가정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요, 안식처라는 사실을 목회자 가정을 통해 확인 받고 싶어 한다. 아마도 이런 성도들의 소망은 시대가 황폐해질수록 더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회자가 아무리 성도의 행복을 운운한다 해도 그 자신이 행복한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목회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메아리처럼 들릴 것이다.

 

가정의 아픔들이 더욱 커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회자 가정 안에서 간접적인 행복감을 맛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목회자가 이러한 성도의 요구에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있다면 진정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통계가 그리 중요하다고 볼 수 없지만 결혼 적령기 여성에게 남편감으로 목회자를 물어보면 그리 오래 전에 상위권으로 나타났던 모습은 간 곳 없고 이제는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또 거기에 머물지 않고 청렴도에서도 이제 내세울 것이 없는 바닥까지 내려 온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목회자 자신의 삶이 본이 되지 않고 성도들에게만 정직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어쩐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개운하지가 않다. 아무리 부흥이 안 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목회에 자기의 전부를 걸지 않는다면,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여차하면 다른 길로 빠지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그런 목회자들이 강대상에서 핏대를 세우고, 목청을 높이어 외치는 믿음과는 달리 먹을 것, 입을 것을 찾아 세상에 눈을 돌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주님은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어떤 노()목사님의 일화를 전해드리고 싶다.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약 40여 년 동안 목회를 하고 은퇴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은퇴하실 즈음 교회에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다. 교인이 수천 명 모이는 큰 교회였기 때문에 당회는 일평생 봉직하신 목사님을 위해 아주 큰 평수 아파트를 은퇴 후 거처로 사용하시도록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넉넉한 퇴직금과 연금도 장로님들에 의해 준비됐다. 그러나 자신의 은퇴 후의 노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 목사님은 노발대발하셨다. “어찌하여 나의 가는 마지막 길을 이렇게 욕되게 하십니까? 나는 이제 사역을 끝내었고 자식들이 장성하여 모두 잘 살고 있으니 우리 두 늙은이 아들 집에 가서 곁방에 머물다 주님 나라에 가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내 가는 길을 부끄럽게 합니까?” 예상은 했지만 목사님의 이 같은 굳은 의지를 발견한 장로님들은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장로님들은 얼마 후 다시 목사님께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이야 빈손 들고 교회를 떠나시면 모든 교인과 교계가 청렴하고 존경 받는 목사님이라고 칭찬하시겠지요. 그러나 저희는 어떻게 됩니까? 목회자를 일평생 봉사하게 하고 마지막에는 방 한 칸 없이 내 쫓았다고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곧 우리 교회의 불명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린 아이 같이 순진한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마음이 약해지셨다. 그리고 여러 날 근심하셨다. 그리고 결심했다.

 

드디어 당회를 소집하여 자신의 소신을 밝히셨다. “장로님들, 제가 드디어 주택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은퇴 할 때 제게 주택을 주십시오. 13평 미만으로 하십시오. 그러면 받겠습니다.” 좀 더 큰 주택을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당회와 함께 힘든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은퇴하실 때 19평짜리 연립주택을 드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 목사님이 교회 사택을 떠나 이사하던 날 이삿짐을 나르던 교회의 젊은 집사님들이 목사님 댁에서 한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목사님 댁에 있는 가장 값나가는 재산은 40여년 전에 그 교회에 부임해 올 때 가지고 오신 철제 캐비넷이었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지금은 생소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작금(昨今)에 나온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제 목회자 가정의 행복의 크기가 곧 성도들 가정의 행복의 크기이기 때문에 가정목회부터 성실하게 임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본다.

 

모든 목회자들이 한층 더 문제 있는 현재 가정의 모습에 대해 속박 당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이고 성경적인 태도록 가정목회에 임하게 되면 좋겠다. 그리할 때 우리의 목회 속에 가장 진실하고 거룩한 열매가 나타날 것이다.

 

이규호 목사

처음사랑교회

행복가정치유상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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