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광주광역시의 한 등산로에서 한 남성이 아무 이유없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등산객 한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전날부터 흉기를 들고 등산로와 인근 지역을 배회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전날에도 칼을 들고 대학을 전전했으나 자신보다 젊고 월등히 힘이 센 대학생들을 위해하지 못하고 결국 등산로에서 만난 힘없는 노인을 상대로 분풀이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결과 가해자는 30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기자들의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모습도 방송되었는데 피해자가 자신을 고발하려 전화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서 전화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Paranoid)는 의심을 잘하고 오해를 잘하며 투사를 잘하는 성격입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자신에 대한 음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질환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늘 “네가 잘못해서 내가 힘들다”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이런 성격은 하나님도 잘 믿지를 못합니다. 언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다르고,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에 속한 백성이라는 것이 다르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다르고,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표가 다른 사람들이다. 이론상으로는 분명히 다른데 세상 속에 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일요일 교회에 가서 종교 활동 하는 것이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겠는가? 종교 활동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있지 않는가? 다른 삶이란?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끼리끼리 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할지 모른다. 비신자들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더 가까이 친하게 지내기 위해 계를 몇 개씩 조직해
상담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나누는 고민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분노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별것 아닌 일 로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고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너무 쉽게 화가 나고, 일단 화가 나면 잘 가라앉질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말하는 도중에 아내가 자기 말을 하느라 제 말을 끊었어요. 그게 얼마나 열이 나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요.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지는 생각도 안나요.” “그냥 다 화가 나요. 세상만사 제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한 계획이나 생각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참을 수가 없어요. 밥 먹어야 하는 시간, 자야하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정말 짜증이 나요. 내가 놓아둔 자리에 그 물건이 있지 않으면 화가 솟구쳐요.” 사람들은 오만가지의 이유로, 혹은 스스로도 모르는 이유로 화를 낸다. 요즘 버럭버럭 소리 지르거나 까칠하게 구는 나쁜 남자나 나쁜 여자가 멋진 것처럼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다 알듯 모를 듯 은근히 잘해 주면 ‘츤데레’ 캐릭터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매력적이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버럭남이나 버럭녀는 남에게 곧
최근 딸을 때려서 숨지게 하고 여러 달 동안 집에 미라 상태로 방치했던 한 가정의 뉴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큰 이슈에 목마른 언론에서는 이 가정의 가장이 목사였다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이 가정이 저지른 극악한 범죄와 맞물려 세상의 증오심과 뭇매가 이들을 향하고 있다. 이 일은 아버지가 목사이었든 한 회사의 샐러리맨이었든 가볍게 다루어져서도 변명의 여지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무엇이 이 한 사람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갔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디에서 무서운 아동학대가 자행되고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자신을 상처 입히고 주위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본 한 인터뷰에서 한 남자는 고백한다. “저는 상대를 때려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사랑과 극심한 매는 하나의 세트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심하고 때리고 온갖 욕을 쏟아내며 말하곤 했습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제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랑의 표현은 폭력이었습니다.
수년전 인도네시아에 진도 8.9의 강진이 해저에서 발생하여 수마트라 섬 북쪽의 아체지역에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해안도시를 쓸어 버렸다. 약 20여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도시는 폐허가 돼버렸다. 성한 건물이 없도록 파괴되고 배들이 부셔지고 어떤 배는 도시 한가운데 밀려들어와 있고 시신이 쓰레기더미와 뒤 섞여있었다. 집과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넘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쓰나미의 충격으로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엄청난 대 재앙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세계 각국에서 구호 팀들이 그곳으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NGO 단체들이 들어가는데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자원하여 연합 봉사단을 만들어 인도네시아로 들어갔다. 그 때 필자도 자원봉사자로 구호활동에 참여하여 열흘간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미처 휴대폰 로밍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떠났다. 다섯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공항에 내렸는데 네 시간을 기다려야 인도네시아 매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기위해 휴대폰을 꺼내서 전원을 켰더니 “통화권을 벗어났습니다”는 메시지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인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어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마을에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수사가 진행되었고 얼마 후 범인을 잡았는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칭찬하던 그 사람이 범인이었다. 그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붙잡혔다. 이처럼 사람들 가운데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일컬어 흔히 “야누스”라는 표현을 쓴다. 사실 야누스는, 로마시대 집이나 도시를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로마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모든 종교의식에서 가장 먼저 재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야누스가 얼굴이 두 개라고 알려진 것은, 당시 출입구에는 앞뒤가 따로 없어서 야누스가 문 안팎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어의 1월을 뜻하는 January도 “야누스의 달”이라는 뜻의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문 안팎을 지켜주던 수호신이 오늘날 겉과 속이 다른 인물로 비유되는 것은 의미가 다소 와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혹은 이중적인 삶을 외
부부에게 있어 만족스러운 성(性)생활은 정신적, 감정적 건강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친밀감을 높여 사소한 문제들도 쉽게 해결해 주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강한 부부에게 있어 대화, 즉 의사소통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섹스는 부부에게 있어 몸으로 하는 좋은 대화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부부생활을 원한다면 몸과 마음으로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하루 스물네 시간 중 단 한 시간이라도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을 반드시 마련해 보자.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꼭 섹스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사지를 하든, 피부 관리를 하든, 나란히 앉아 책을 읽든, 함께 하는 순간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때때로 아내들은 가볍게 안아주는 남편의 품이 그리워 안아달라고 할 때가 있다. 혹은 안겨서 잠이 들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피곤하다’고 등을 돌려 눕는 남편들이 있다. 아내는 그저 허그(Hug)를 원한 것인데 남편은 그걸 곧 섹스로 받아들여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성숙해 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성은 천박한 것
한번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성도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버이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1절을 미쳐 다 부르지도 못하고 목이 메고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사람들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깊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를 부를 때는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에 이슬이 맺힌다.우리나라는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5월8일을 어버이날로 지킨다. 그래서 오월에는 너나없이 부모님을 생각하고 효도를 하는데 오월이 지나가면 효심도 사라지는지 우리 사회에는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방치하고 유기하는 일들이 일어나 마음을 씁쓸하게 할 때가 있다. 효도는 부모님을 위해서 만 아니라 자라는 자녀들을 위해 내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므로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효도해야한다. 기회 있을
오늘날 자녀 교육이 큰 과제가 되었다.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성적위주의 학교교육 성적 올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교육 어디에도 인품을 중요시하는 인성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환경이 악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등 음란하고 퇴폐적인 세상으로 변하고 있어 기독교 가정의 자녀들도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안심 할 수 없다.“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우리속담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고 했듯이 어릴 때 바로 배우면 늙어도 바르게 행하게 되므로 어릴 때 자녀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있다.성경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조급하며 쾌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딤후3:1~5)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돈이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고 돈 때문에 부모를 거역하고 돈 때문에 나쁜 짓도 하게 된다. 자긍하고 교만 하여 잘난 척 하고 겸손하게 어른들의 훈계를 받
“아빠 혼자 맛있는 것 처먹으려고 교회 가는 거지?” 주일 아침 주일학교 교사 일로 교회로 출발하려는 아빠를 향하여 뒤에서 던져진 9살짜리 막내 아들의 한마디. 이 말은 필자가 인도하고 있는 어느 부부 워크숍 팀 모임에서 터져 나온 한 아빠의 울음 섞인 한(?)맺힌 고발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못된 말을 서슴없이 아빠에게 내 뱉었을까?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빠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의 감정이 몹시 상하게 되고 화낼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랬을까? 함께 했던 다른 부부들도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 부부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아빠의 얼굴은 잔뜩 분노에 차 있었고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변명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고백에 의하면 남편은 일요일에도 집에 있는 날이 없는 남편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아예 살다시피 하는 남편이었다. 실제로 남편은 주일아침 7시쯤 일어나서 주일학교 공과를 준비하고 급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서둘러 교회에 간다. 주일학교 예배와
발리는 5년 전 대학교 졸업여행에 초대받아 학생들과 함께 했던 여행지다. 관광버스는 아융강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은행장 부부가 있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 말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믿음에 대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머뭇거리는 은행장에게 오늘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나머지는 무엇이 되겠냐고 도전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믿음에 대한 결단을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한국어를 하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생들로부터 사전에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터라 간략하게 묻는 질문들에 가이드는 믿음을 고백했고 나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됐음을 선포했다. 아융강은 래프팅을 하러 가는 장소였지만 이들에게는 침례를 받는 장소가 됐다. 폭포가 있는 강 앞에 이르러 침례에 대하여 설명을 하자 두 명이 세례는 받았지만 믿음이 불분명해 침례를 받고 새롭게 믿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다섯 명에게 침례를 줬다. 전 날에 비가 많이 온 탓에 20미터 되는 협곡을 지나는 강물위로 흙더미와 커다란 나무가 쏟아졌는데 공교롭게도
정원에 꽃을 심었다고 저절로 예쁜 꽃이 피고 아름답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쁜 꽃이 잘 피도록 돌보고 가꾸는 노력이 있어야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 결혼하는 부부들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함께 살고 싶어서 결혼한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한 집에 살기만 해도 행복 할 것 같다. 신혼 초에는 한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지만 신혼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래 오래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해 함께 행복을 가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예쁜 꽃도 가만 두면 며칠 안가서 시들고 말라 죽지만 돌보고 잘 가꾸면 해마다 예쁜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부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 세 번 이상 눈을 마주쳐라어떤 사람은 먼 산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화할 때 눈을 쳐다보면서 대화해야 한다. 부부간에는 더욱 그래야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눈을 쳐다볼 때 마음을 읽을 수 있다.어떤 남편은 아내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서 머리모 양이 바뀌었는지 새 옷을 입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하루 세 번 이상은 눈을 마주치면서 쳐다보고 상대방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은 퇴근시간 5분전 일 때 “아! 드디어 5분밖에 남지 않았다!”하면서 퇴근준비를 챙긴다. 그러나 일에 열정적인 사람은‘아! 아직 5분이 더 남았다!’고 생각하여 부지런히 일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자는“벌써”, 후자는 “아직”이다. 두 글자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 자세, 마음가짐은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가 있다.샐러리맨 부인이 지갑을 보고‘아! 아직 5만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인은 5만원을 유효하게 사용하며 저녁식탁에 꽁치 한 마리라도 올려서 남편을 맛있게 저녁식사 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아직 5만원 밖에 없어!’하고 탄식하는 부인은 남편의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투덜대면서 성의 없는 음식밖에 내놓지 않을 것임이 틀림이 없다. 식탁에 앉은 표정 또한 잔뜩 찌푸리고 있을 것이다.‘같은 환경이지만 그 마음의 자세가 어떠한가? 한편에는 미래를 향하여 밝게 나아가려는 자세가 있다. 그래서 내일을 더 소망 갖고 연구하고 개선해가려는 의욕이 있다.그러나 다른 편은 과거에의 회한과, 현재의 불만과 혐오에 찌들어 있다. 이 두 가지 인생의 방향은 전혀 다른 것이다.‘아직’이라고 하는 사람은 시간의 가치와 미래지향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백성들을 지키시며 경건한 자녀들을 세우려는 의도로 만드신 하나님의 절묘한 작품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오염되고 관계가 흔들리면서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 갈등하며 심지어 가정이 깨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먼저 가정이란 부부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알고, 둘째, 그 사랑의 언약 안에서 가족이 서로 하나 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미 본지를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사랑의 언약과 소통의 계단을 바탕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이제 성장기 가족경험과 그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상담에선 이것을 ‘원가족(family of origin) 작업’이라고 한다. 성장과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눈 각종 긍·부정의 관계경험들이 개인의 평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건축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세상에 완벽한 결혼이나 가정은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가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상처나 아픔을 주고받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이것은 가족상담과 목회상담을 전공한 나와 내 가정도 예외가 아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으며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위태위태한 가정들 건강하지 못한 가정들이 많다. 최근에도 황혼 이혼에 대한 상담과 신청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정이 건강해야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고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나라도 건강할 수 있고 인생이 행복 할 수 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원리.튼튼한 건물을 세우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이 건강한 가정도 기초가 튼튼해야하는데 믿음과 말씀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24-25)반석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듯이 믿음 위에 세워진 가정은 건강하다. 우리사회에 많은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무너지지만 진실한 믿음의 가정은 이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부부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가정이 건강하게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함께 믿음을 갖는다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사랑과 순종의 기둥기초위에 건물을 받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