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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이 지천인 현대인들에게 이 질문은 웰빙에 관한 질문으로 들리겠지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산상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서 한 부분을 발취한 말씀이다.
처음 신학교를 졸업할 당시 내게는 안정되고 또 동기들이 가고 싶어 하는 교회에 부사역자로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사역지가 없는 친구가 너는 집안에 어른들이 다 목사님이니까 자기가 갈만한 교회를 추천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그 교회를 양보하고 내 손에 단돈 일원도 없이 대한민국 지도를 펴놓고 오직 이 말씀만 의지하고 인구 십만이 넘는 도시로 침례교회가 없는 도시를 찾아 간 것이 내 첫 목회지였다. 

내가 침례교회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은 약 120년 전 반가의 여인었던 한 여인이 침례교도가 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던 분이 나의 증조모셨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잠자리에 누워 내가 침례교도의 후손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침례교정신에 사로잡혀서 산다.  내 처음 목회지, 목회지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없는 삯 월세 달랑 단칸방 하나가 신혼부부 방이고 또 교회였지만 두렵지 않았던 것은 고인이 되신 선친께서 아무연고도 없는 곳으로 목회를 떠나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해 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란 이 말씀을 외워주시면서 “네가 어디서 주님을 섬기든 네가 주님께 충성스럽게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네 일생에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하셨고 나 또한 “하나님,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아내와 태어 날 아이들에게 저처럼 굶주림의 기억이 있게 하시면 그날로 저를 죽이신다고 할지라도 목회를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헌신하는 조건입니다.”라고 객기에 찬 헌신을 하고 목회지로 달려간 것이 벌써 3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난 30년이 넘는 날들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당돌한 어린 종의 기도를 단 한 번도 잊으신 적 없이 언제 어디서나 보호하셨고 공급하셨다.


30대 초반에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로 부임할 때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까 교회가 두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 번째가 우리교단 교회 중에 5대 불순교회, 또 하나는 내각책임제교회였다.
목사는 어느 날 교회 소수의 직분자들이 와서 “목사님 떠나주셔야 합니다.”하면 정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교회였고 15년 된 교회에서 본 교회 출신 한 목회자를 제외하고도 전임자들이 열 명이 넘게 바뀐 교회로 문자 그대로 목사의 목회 막장이 따로 없었다.


전임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을까? 침례교뿌리인 젊은 목사가 볼 때 이 교회는 간판만 침례교회였지 침례교회는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서 수도권의 한 교회에서 6개월을 계속 사람을 보내 청빙을 했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 와중에 아내에게 “여보 우리 여기 선교사로 파송됐다고 여기고 침례교회를 세웁시다.”라고 결단한 후부터 33년을 한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간증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사무처리회가 끝나면 동역자들이 올해 결산이 얼마이며 예산이 얼마이며 사례비가 얼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일 때 나는 마치 다윗 왕이 이스라엘 군대를 계수한 그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오로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고 은혜일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중학교가 가장 높은 학교다.


고등학교부터 교회가 주는 사례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그렇다고 시골 사람들은 교회재정이 남아돌아도 목회자 자녀교육비를 책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 자기들은 좋은 밥 먹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아이들을 도시에 교육시키며 과외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목사는 이슬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지? 또 목회자의 자녀들의 교육에는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지체들이 내 자녀들의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내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지셨고 공급하셨다.


나는 지금도 내게 주신 세 아이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듯이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기적이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 나라에 1%안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박사학위를 공부하게 하시고 이 나라 최고대학 법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검사로 나라를 섬기게 하시고 막내는 건실한 중견기업의 맏며느리가 되게 하셨는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자랑이라고 하고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신앙의 간증이라고 한다.


새해를 맞은 동역자들과 60만 침례교도들에게 말하고 싶다. 물질의 가치가 하나님을 넘어서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맘몬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이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 침례교도들만큼은 올해를 우리 삶에 공급자가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았으면 한다.       


이정일 목사 청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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