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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20세기 신오순절주의 성령운동 이해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9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이제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왜 신오순절 운동이 왜 발생하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당시에 개신교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들 자신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진단하기를 이는 교회의 부적절함과 제도주의와 영적인 죽음 등이라고 과감히 비판했다. 이러한 자기비판을 통해 나타난 신오순절운동은 교회를 황폐케 하는 개신교 목사들과 영적으로 고갈된 개신교도들, 로마가톨릭교회 평신도들에게 이를 호소하면서 한 길을 제시해 놓았다. 


오순절 크리스천이나, 신오순절 크리스천들은 개인과 교회에 있어서의 영적 생활의 능력이 카리스마적 증거를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으나, 지금은 발견되고 체험되고 있는 성령침례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로 인해 오순절적인 열심히 더 깊은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게 된 후에, 신오순절파의 운동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게다가 1960년 4월 3일에 데니스 베네트가 성령침례를 경험하고 방언을 말한다는 이유로 캘리포니아 주 반누이스에 위치한 성 마가 성공회교회에서 그의 목사직을 회수하자 이 교회를 사임한 그가 교단의 장벽을 넘어 사역에 임함으로써 각 교단간의 장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신 오순절운동이 등장하게 됐다.


이처럼 1960년경부터 전통적인 기존교회에서 신오순절운동 혹은 은사운동이 등장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오순절운동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헛소문과 악평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 신오순절주의 등장의 직접적인 원인이된 미국 성공회 성도의 최초 방언 체험이 있기 이미 수년전부터 복음주의 주요 교단에서도 오순절주의에 대해 점차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며 수용할 태세를 알리는 중요한 진전도 있었다.

 

성공회 소속 성 마가의 교회 성령사건


트리니티교회의 윈 클러의 성령체험


1960년경부터 전통적인 기성교회에서 신 오순절주의와 은사운동이 등장하면서 오순절 성령운동에 대한 악평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 오순절주의 등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미국 성공회 성도의 최초 방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 성공회에서는 윈 클러가 시무하던 트리니티교회에서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리니티교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로 인해 성공회에서는 위원회를 구성해 트리니티교회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 조사결과에 의하면, 방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한 것이지만 방언으로 인해 틈타기 쉬운 “미혹”이나 “사탕의 속임”을 경계할 것을 주의시켰다. 이 보고서는 이성이야말로 지극히 높으신 성령의 음성이기 때문에 절제하는 가운데 방언 말할 것을 권한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윈 클러는 트리니티교회에서 사역을 계속하도록 허락 받았으며, 그는 이로 인해 오순절 운동을 계속 유지하는 특권을 누렸다.

 

성 마가교회의 데니스 베네트의 성령체험 
미국 성공회에서 윈 클러 다음으로 성령침례를 체험한 사람은 데니스 베네트이다. 그는 윈 클러 만큼 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후에 전국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고, 신 오순절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던 인물이다. 1950년대 말 베네트 신부는 캘리포니아주의 반 누이스에 있는 성 마가 성공회교회의 교구목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료 신부로부터 성령침례에 대해 듣게 됐고, 오순절 성령침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약성경과 “예배 기도서”와 초대 교부들의 저서 모든 책들이 이에 관해 무수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던 중에 그는 1959년에 성령침례 체험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 이후에 그는 회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이 5개월 전에 몇몇 형제자매들과의 기도모임에서 방언을 말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루터교 은사운동 지도자인 레리 크리스텐슨(Larry Christenson)은 이 사건을 신오순절주의운동의 기원으로 보기도 했다. 그는 은사갱신운동의 구별되는 가르침은 성령의 인격과 은사에 대한 체험에 그 강조점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체험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성령침례”라 했다.


이후 그는 1960년 4월 3일 성령침례에 대해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그의 간증이 끝나고 2부 예배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분노한 사람들이 베네트의 신부복을 잡아 뜯어 강단 바닥에 내팽개치며 “저 저주 받은 방언 말하는 자들을 쫓아내 버리자 우리는 미국 성공회 교인들이다. 남부 시골뜨기 무리 곧 오순절주의자들이 아니다”라고 불평하자 교회 재정 위원장이 베네트 신부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베네트는 즉시 교구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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