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꿈의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넘어 민족을 섬기는 교회”라는 비전의 열매이다. 세종시는 새롭게 형성되는 행정도시였고, 복음의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한 지역이었다. 세종꿈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 순종해 세종 신도시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개척됐다. 교회 개척을 위해 카페를 먼저 열어 지역 사회와의 접촉점을 마련했다. 공주꿈의교회와 대전꿈의교회 성도들 중에서 자원한 이들과 사역자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2012년 3월 세종시 한솔동에 ‘카페 브릿지’를 열었다. 브릿지라는 이름에는 교회가 지역 주민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2012년 4월 15일 카페에서 첫 주일 예배가 드려졌다. 처음에는 공주꿈의교회 목장들이 순번을 정해 참여했지만, 곧 세종에서 전도된 성도들로 가득 차게 됐다. 여성들을 위한 ‘드림맘즈’ 예배, 중고등부 예배, 지역 초등학생 프로그램, 지역 행사 협력 등은 세종꿈의교회가 지역 사회와 신뢰를 쌓는 통로가 됐다. 이후 세종꿈의교회는 부지를 매입하고 2013년 12월 22일 새 예배당에 입당했다. 2013년 성탄절에는 약 2500명의 성도가 모여 감사예배를 드렸고, 아프리카
멀티교회가 단순한 이론이나 교회 운영 방식이 아니라 실제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멀티꿈의교회이다. 멀티꿈의교회는 공주꿈의교회에서 시작되어 대전꿈의교회, 세종꿈의교회, 글로리채플꿈의교회, 글로벌꿈의교회, 새로운꿈의교회로 이어진 선교적 교회 개척의 흐름이다. 이 사례는 한 교회가 자기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복음이 필요한 지역과 대상에게 나아가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세워진 교회가 다시 다른 교회를 낳는 재생산의 과정을 보여준다. 멀티꿈의교회의 출발점은 1896년 충청남도 공주에 세워진 공주꿈의교회(구, 공주침례교회)이다. 공주꿈의교회는 미국 엘라씽기념선교회에서 파송된 에드워드 클레이튼 폴링 선교사에 의해 개척되었고, 이후 프레더릭 스테드먼 선교사를 통해 교회의 기틀이 마련됐다. 말콤 펜윅 선교사와 신명균 목사로 이어지는 초기 사역은 공주라는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신명균 목사는 공주, 강경, 칠산을 중심으로 한산, 옥천, 온양, 영동, 고산 등 여러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며 충청 지역 복음화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러한 초기 역사는 오늘날 멀티교회 정신과 깊이 연결된다. 공주꿈의교회의 초기 사역은 한 담임목회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건강한 교회를 어떻게 다시 세우고, 또 어떻게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교회 개척은 단순히 예배 장소를 하나 더 마련하거나 교인의 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지역 사회 속에 드러내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또 다른 생명 공동체를 세우는 선교적 사명이다. 이런 점에서 멀티교회 개척은 한국교회가 교회 개척의 어려움을 넘어 지속 가능한 재생산 구조를 세우는 하나의 실제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멀티교회 개척은 공주꿈의교회로부터 전개된 멀티꿈의교회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델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멀티교회 개척의 4축 통합모델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 개척의 6단계 과정이다. 4축 통합모델은 교회 개척자의 리더십, 협력적 목회 구조, 재생산을 위한 운영 시스템, 지역 사회 연계로 구성된다. 그리고 6단계 과정은 교회 개척 준비, 교회 개척 결정, 교회 설립, 교회 성장, 교회 성숙, 교회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이 두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멀티교회는 단순한 개척을 넘어 건강한 교회 재생산으로 나아갈 수 있다. 먼저 멀티교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이다. 교회가 선교를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활동으로만 이해한다면, 선교는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하나로 축소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과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적 존재라고 말한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보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멀티교회는 단순한 교회 운영 방식이나 조직 확장 전략이 아니라 선교적 교회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델이다. 선교적 교회의 개념은 레슬리 뉴비긴이 제기한 질문, 곧 “우리 시대 문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선교적으로 참여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깊이 연결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이해를 넘어, 교회 존재 자체가 선교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교회가 선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더 나은 교회 활동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 됨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뉴비긴 역시 교회의 존재 자체가 선교적 본질을 지닌다고 보았고, 선교는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징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오늘날 한국교회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지역 공동체의 약화, 다음 세대의 이탈, 작은 교회의 어려움이라는 복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단순히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시대와 지역에 맞는 선교적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이 멀티교회다. 멀티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여러 지역에 예배 공동체를 세우거나, 동일한 비전과 신학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여러 교회가 협력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멀티교회는 단순히 현대적 필요에 따른 조직 모델인가, 아니면 성경적 근거를 가진 교회 개척의 한 방식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는 ‘에클레시아’이다. 이는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진다.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과 연합한 신앙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며, 성도들은 그 몸에 속한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새로운 교회 개척의 필요성과 동시에 교회 개척의 어려움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지역마다 교회가 이미 많다는 인식, 재정적 부담, 성도들의 반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개척 방법에 대한 실제적 경험 부족은 교회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복음이 필요한 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본질적 사명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공주꿈의교회는 ‘멀티교회’라는 선교적 교회 개척 모델을 실천해 왔다. 멀티교회는 공주꿈의교회가 대전과 세종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처음에는 미국 교회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던 멀티사이트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개척이 단순한 외형적 확장이나 문어발식 성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공주꿈의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선교적 사명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고, 하나의 교회가 여러 지역에서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된 교회들이 동일한 비전과 사명 안에서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게 됐다. 그렇게 정리된 개념이 바로 멀티교회이다. 멀티교회는 독립된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5~10월은 건기에 해당되지만 11월부터 그 다음해 4월까지는 비가 내리는 우기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이 두 시기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건기는 뜨거운 날씨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으며 풀들은 모두 말라버려 거칠고 황량할 뿐이다. 하지만 우기에는 산과 들 그리고 계곡과 평야는 물론 심지어 광야마저도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가득 피어난다. 우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12월쯤, 그래서 봄이 더욱더 간절히 기다려질 때, 이스라엘 땅에는 그 누구보다 서둘러 봄을 예고하는 전령사가 나타난다. 바로 아몬드 꽃이다. 예루살렘에서 국도 1번을 따라 텔아비브로 가려면 소렉골짜기와 아브고쉬를 지나야 한다. 시가지를 지나자마자 소렉골짜기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난다. 도로 옆 비탈과 골짜기 반대편 산기슭에 뭉개 뭉개 피어난 아몬드 꽃이 보인다. 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른 엿은 분홍빛 아몬드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복사꽃 피어나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몬드 나무나 꽃을 찾을 수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아몬드
성경을 이해(understand)하고 해석(interpretation)하기 위해서는 그 성경이 쓰여진 땅,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지 답사를 하다 보면 그 중요성에 비하여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것에 무관심하다는 현실에 놀라곤 한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는 과정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담고 전개된다.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과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문맥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을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다나엘이 왜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에 발끈하고 그를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는지,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말씀에 나다나엘의 태도가 급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이스라엘 땅에서 그 문화적 배경 안에서 쓰인 것이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래서 성경의 지리,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절실해지는 까닭이다. 먼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사렛에 대한
성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그들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가나안 땅의 7가지 주요 생산품 가운데 하나가 포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신 8:8). 성경을 읽다 보면 포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접하게 된다. 성경이 시작되는 창세기에서 포도주에 취한 노아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창 9:18~27), 계시록에는 포도주 틀로 비유된 심판 이야기가 등장한다(계 19:15). 가나안 답사 이야기(정탐꾼 사건)에서는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두 사람이 장대에 걸어 어깨에 메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은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포도주 의식으로 그 사역을 마무리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포도원을 비유로 가르치시더니 급기야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요 15:1). 그만큼 성경시대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삶의 일부처럼 친밀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포도나무는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상징으로 이해했을까? 성경의 표현을 빌면 포도는 이들에게 기쁨의 원천이요 축복의 상징이었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돌무화과나무의 용도가 이렇다 보니 탈무드에는 2층 이상의 집을 지을 때 안전을 고려해 지붕 들보를 백향목보다는 돌무화과나무를 사용하도록 했다(Talmud, Bava Metzia117b,11). 이 같은 용도와 가치 때문에 다윗은 돌무화과나무를 배양하는 전담 장관을 세울 정도였다.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돌무화과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대상 27:28) 이런 돌무화과나무는 그 열매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칠칠절이 끝나는 시기(즉 밀 수확이 끝나는 시기/5월)가 되면 이 나무에는 수많은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그 열매에 일일이 흠집을 내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줘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무화과 맛을 내게 된다. 이 과정을 전문용어로 블리사(Blissa)라고 부르는데 목자들이 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돌무화과나무는 비가 많고, 날씨가 온화한 지역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이 나무는 요르단 계곡 또는 평지(쉐펠라)에서 많이 재배됐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돌무화과나무) 같이 많게 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