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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感情的) 표절(剽竊)


안타깝게도 작금의 한국 교회는 설교 표절(剽竊)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설교 표절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교인들의 의식 수준이 높지 않았고, 언론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몇 년 전 뉴스를 한참 뜨겁게 했던 젊은 국회의원 당선자의 논문표절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워 진때도 있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던 젊은이가 남의 논문을 표절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대학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까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문 표절이 지금은 잠잠하지만 언제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게 표절이라는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의 것으로 나타내는 거짓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자기가 그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적으로 사회에 이슈가 되고 문제가 되지만 그에 반해 그 뿌리는 더욱 깊숙이 내려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거한 표절들보다 더욱 조심할 것이 있는데 바로 감정적(感情的) 표절(剽竊)이다.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과 표정과 말이 다른 것이다. 속으로는 미워해도 겉으로는 아주 친한 척 한다. 표정으로는 미소를 띠고 온화한 모습으로 좋은 말을 하지만 그 속에서는 욕심과 시기(猜忌)와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대중 앞에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속에서는 우습게보고 비하(卑下)하는 모습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설교의 표절도, 논문의 표절도 근절(筋節)되어야 하지만 감정적인 표절도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멍을 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행위이기에 다른 것 못지않게 그 심각성(深刻性)이 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의 교만과 자기의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도 기피(忌避) 대상이지만 더욱 목회자들은 이러한 모습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한다. 일찍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간음한 자, 조국의 피를 빨아 먹는 세리, 나병환자, 가난한 자, 소외계층 등 모두를 용서하고 가까이 하셨지만 외식하는 자들과는 그렇지 않으셨다. 그들을 호되게 질책하시고 나중에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경멸(輕蔑)하셨다.


그런데도 지금도 그러한 외식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사실 다른 표절보다 위험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예화가 있다. 여우 한마리가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나무꾼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무꾼은 여우를 그의 오두막에 숨겨줬다. 잠시 후 사냥꾼이 와서 나무꾼에게 여우 한 마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나무꾼은 말로는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여우가 숨어 있는 오두막을 가리켰다. 그러나 사냥꾼은 나무꾼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여우는 사냥꾼이 멀어져 가는 것을 보고 곧바로 뛰어나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나려 했다. 나무꾼은 여우가 은혜도 모른다며 나무랐다. 그때 여우가 대답했다.


당신의 겉과 속이 같았다면 나도 당신에게 고마워했을 거예요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앞에서는 웃는 얼굴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 표절을 좀 더 익숙한 단어로 말한다면 위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선은 한자로 거짓 위()’착할 선()’을 쓴다. 즉 선한 것인 양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해안 속초에 가면 초당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두부 전문 음식점들이 모여 있고 그 많은 음식점이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뿐인가 서울 곳곳에도 음식점이 잘된다하면 그 옆에 원조라는 간판을 거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야 제 맛을 볼 수 있을까?’라며 고민하게 된다.


이곳에도 건물들이 번듯번듯하고 훌륭하게 인테리어 한 집도 여럿이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유난히 볼품없는 집이 하나 있는데 주변의 잘 지은 현대식 건물이 그 오두막집을 더욱 초라하게 한다. 그런데 그 집의 간판이 다른 곳과 다르다. 그냥 맛있는 집이라고 되어 있다.


주변은 모두 무슨 원조라고 쓰여 있는데 이 집만 그런 문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버스가 손님을 단체로 싣고 들어오기도 한다. 비록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당당한 오두막집이다. 위선과 표절이 없는 순수하고 소박한 그런 집이었다.


스펄전 목사는 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연극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해 설교했다.


위선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명예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외양은 마치 미려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형편없는 책들처럼, 내적인 면을 소홀히 하고 외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상대방을 속여서 안심시켜 놓은 다음, 기회를 엿보아 보복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악한 감정과 위선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이들은 완벽하게 감정을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보복했다고 자축하더라도, 그 악의 썩은 냄새는 결코 감추어지지 못하고 만인 앞에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이제 표절(剽竊)의 가면(假面)을 벗어버리자. 세상의 빛과 소금은 마음에 있는 것들이 정직하게 드러낼 때 가능하고, 그때 복음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규호 목사 / 처음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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