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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뿌리 ② Feeling needed

가정회복-4

최근에 복고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있다. ‘응답하라시리즈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이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한 가정 에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갈등을 다루었다. 갈등은 어머니가 남편과 아들들만 남겨놓고 급히 친정에 다녀와야 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어머니가 부재한 잠시의 시간 동안 집안 전체는 쓰레기통으로 돌변한다. 집에 남겨진 남자들의 세상은 혼란과 자유의 공간이 된다. 과자 부스러기가 사방에 흩어져도, 팬티만 입고 아무데서나 드러누워도, 아무렇게나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누구하나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어머니 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이제 맘대로의 편안한 세상에 비상이 걸린다. 남겨졌던 남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어머니가 자기들을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들끼리도 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고 스스로들을 대견해한다. 그런데 이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머니의 반응이다. 꽤 깨끗한 집안과 지시대로 비워진 냉장고를 둘러보던 어머니는 영 시큰둥하다. 어머니의 저기압을 눈치 챈 남편과 아들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한 이웃친구의 조언에 따라 막 내아들은 집안 남자들의 실수를 조작해내기 시작한다. 라면을 끓이다 손을 데게 하고, 연탄을 갈 다가 떨어뜨려 부수게 한다. 그리고 엄마!’하고 부른다. 이런 식구 들을 보던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 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이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는다. 왠지 알 수 없이 화가 나있던 어머니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다. 당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없던 힘도 솟구치게 한다. 아무리 의사소통을 입이 아프게 강의해도, 말을 예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도, 일단 화가 나면 어떤 학습도 도루묵이 돼버리는 이유가 있다. 갈등과 분노의 Hidden issues, 즉 뿌리 깊게 자리한 숨겨 진 문제 때문이다. 지난 호에 다루었던 Power, 힘에 대한 갈망에 이어,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 중요한 사람인가의 이슈를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바로 이 부분이 분노라는 감정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에겐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누구에겐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때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갓 태어나 자라가는 동안, 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남 을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자녀들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씻는 것 어느 것 하나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귀찮고 힘이 들어도 자녀들을 키우는 과정 동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품 안에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를 깨달아간다.


그런데 갈등은 아이들이 ‘No’를 배우면서 시작되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엄마 아빠는 이해 못해하고 대들 때쯤이면 극으로 치닫는다. 자녀들이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 한 편에는 쓸쓸함과 서운함이 함께 올라온다. 교회가 작아서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챙겨야 하는 담임 목회자는 늘 지쳐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성도들이 모이면서 목사님, 좀 내려놓으시고 맡기시지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몇 십 년을 하루처럼 커피를 내리시던 권사님이 안쓰러워 젊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 귀찮은 짐을 덜어 드리고 싶었던 좋은 의도였는데도 불구하고 권사님께서는 한동안 힘들어 하실지도 모른다. 당신을 더 이상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귀찮은 잡일에서 놓여났다는 안도보다는 서운함이 더 클 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은퇴를 하면 날아갈 것만 같은데, 수많은 선배 목회자 들은 힘들지만 그래도 사역할 때가 행복한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근거이다. 우리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교회 커피나 자녀들의 말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룹 카카오톡에서 내 말에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직결될 수 없다.


우리가 화나고 서운한 것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누군가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고 필요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과 스스로의 믿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상담소를 찾았던 한 중 년 여성은 직장이나 친구들과 계속 반복되는 갈등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대화에 동참하려고 해도 모두들 자신의 말에 별다른 반응 이 없다는 것이다. 막 웃고 떠들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는 늘 파묻힌다. 그녀가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한쪽에서는 벌써 다른 화두가 시작된다. 이 여성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투명인간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7남매 중 5째였던 그녀는 늘 바빴던 아버지와 늘 부엌에 있었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일곱의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기 시작하면 그녀의 목소리나 의견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I am invisible. No one cares.” 이 경험과 실망은 그녀가 중년이 되기까지 친구관계에서, 직장에서, 가족에게서 계속 반복되었다. 그녀를 매번 좌절했고 확신했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그래서 또 누군가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마다 그 직장을 때려치웠다.


언뜻 이야기를 들어 보면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 그러 나 그녀를 고립시킨 것은 자기가 누군가를 무시했는지도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계속 밀어 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당신이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듣고 싶어한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면 어떤 힘든 일도 감당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들면 섭섭하고 화가 난다. 비슷한 느낌 때문에 자꾸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당신한테 도대체 뭐냐?”라고 자꾸 싸우게 된다면, “나는 있으나 마나라는 거 아냐?”라는 자괴감에 계속 괴롭다면 이제 돌아보아야 한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가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부정적 믿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누가 내 이야기를 대충대충 들었다고 몇 달은 삐져 있을 이유가 무심한 상대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낮은 자존감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너는 존귀한 자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자녀며 거룩한 나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 일지도 모른다.

 

/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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