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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 -3

유재성 목사 침신대 상담심리학과

나는 이전에 교회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서로를 돌아보며 아픔을 감싸주고, 다시 힘을 내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생명의 공동체로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친교를 중심으로 모이는 동아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때를 따라 잠시 모여 서로의 안위를 묻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뿔뿔이 흩어지는 개인들의 사적 모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찬송 부르며 말씀도 듣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선포되지만 교회를 나오는 순간 세상에서 익숙해진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언급한 에이즈 환자가 직면한 현실,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세상의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이 교회를 압도하고.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일반 사회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세상에서 비호감이 되기까지 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교회에 혼전임신 청소년이 생긴다면

미국 듀크대학교의 스탠리 하우어와스(Stanley Hauerwas)와 윌리암 윌리몬(William Willimon)은 이처럼 개인주의화된 교회의 모습을 자신들의 책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Resident Aliens)에서 교회다움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교회로 소개한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그들이 제시한 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례를 조금 풀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회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어느 날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게 놀란 학생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부모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부모는 매우 놀라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녀도 낙태를 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두렵고 막막했다.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소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교회에 쫙 알려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일부는 위로한다며 찾아와선 어쩌다 그런 짓을 했어?” “그러면 안 되잖아” “그게 죄인줄 몰랐니?” “이제 어떻게 할거야?” 등등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 외에도 자녀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대!” 등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이 가정은 교회로 인해 그렇잖아도 아픈 상처 위에 더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현대인의 모습은, 많은 경우, 교회나 사회에서 별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외적으로는 서로 안부를 묻고 염려하며 기도하겠다고 하지만 거기까지다.


상대방의 아픔이나 곤경을 듣고 몇 마디 공감적 대화를 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교회 밖 세상에 도움을 호소하거나 각자가 알아서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 교회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가 소문이 퍼져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부 목회자들로부터 우리 교회는 말씀과 기도가 있기 때문에 상담 같은 것은 안 합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심지어 위험하다고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건강하지 못한 대화나 잘못된 상담접근을 통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아픔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성서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돌봄 및 상담사역이 위험하다는 생각이나 그래서 그런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목회’(pastoral ministry)의 핵심 중 하나이고,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한 양떼를 찾아 나서고, 인생의 구덩이에 빠진 영혼을 향해 돌봄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핵심 사역의 하나이다.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모른척하고 지나가거나, “조심하지 그랬어” “기도해 줄테니 가서 치료받아. 나는 바빠서 이만하며 가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다.

내가 만난 어떤 목회자들은 상담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떤 상담을, 어떻게 받고, 몇 명이 떠났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말을 얼버무리거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단지 그런 경우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역자들 중 목회적 돌봄이나 상담사역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인간관계로 힘들어하고, 왕따와 청년 실업, 가정폭력이나 이혼위기, 혹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성도들에 대한 돌봄과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불편해했다. 그런가하면, “양극성장애에요, 치료받고 오는 것이 좋겠어요등과 같이 지나치게 심리치료에 몰입된 사역자 혹은 크리스천 상담사들도 있다. 상담을 조금 공부한 후 곤경에 처한 사람이 찾아오면 일단 이런저런 심리검사부터 하고, 알아듣기 힘든 말로 진단한 후 상담소에 가서 심리치료를 받고 오라고 한다.

내게는 그런 행태가 참 무책임하고 공허한 말들로 들린다. 교회에선 치유가 어려우니 교회 밖에서 도움 받고 회복되어 오라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교회야말로 세상에서 치유하지 못하는 아픔과 어려움을 돌보고 회복하며 세상을 충만케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어야 하지 않을까?


각종 삶의 곤경에 처한 성도들을 돌아보고, 아픔을 나누어지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사역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하는 공동체요 구원의 방주여야 하지 않을까?(고전 12:25-27; 6:2; 10:24; 요일 4:21).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매우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개인과 가정, 사회에 각종 갈등과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심신이 지치고 가정이 파괴되며 사회는 분열되어 피로사회, 분노사회가 되었고, 수많은 정서적 장애들이 각계각층에서 생겨나고 있다. 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고, 상당한 성과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할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교회의 한 지체인 나는 지금 오늘의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 늘사랑교회 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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