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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 대신 호미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한국에서 상담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지만, 아직도 상담소의 문턱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민을 왔던 그 당시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사는 해외 거주자들에게 상담이란 왠지 수치감과 의구심을 유발하는 단어이다. 의사를 보러 간다는 말은 시장 간다는 말처럼 쉽게 이야기되고 정보를 나누지만,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는 숨기고 싶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자녀들이 상담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면 바로 가슴이 철렁하다. 정신력과 영성으로 이겨야지, 뭘 상담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린다. 그래서 어쩌다가 상담을 요청하는 ‘희귀한’ 한국 분들의 사정은 의외로 심각하다. 자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해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아동보호기관에게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있기도 하다. 이미 한쪽에서 이혼을 결심한 경우 법적인 수속을 밟을 때쯤 상담소를 찾기도 한다.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이미 모든 것을 잃을 때에야 문제를 깨닫기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과 치유의 역사들을 보지만, 이미 상처 입고 신뢰를 잃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돌이키기 쉽지 않다. 기다리다가, 괜찮다고 자위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가 필요하다. 진작 짜내면 없어질 작은 염증이 수술을 해야 하는 큰 종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문제를 가지고 왔을 때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드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별것도 아닌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무언가 말하려 할 때 대수롭지 않게 별것도 아닌 것으로 넘긴 작은 순간들이 큰일이 일어날 때까지 부모를 찾지 않는 이유가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을 차분히 알려고 하기보다 감정이 격해져서 야단부터 친 몇 번의 순간들이 대화의 통로가 막힌 시점이 되기도 한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 생리 중 아니냐며 농담으로 때운 순간들이 쌓여, 끝내 말이 전혀 안통하는 거리감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저 기분이 가라앉아 내뱉은 짜증스러운 말과 비교하는 말들이 남편을 집 밖으로 밀어내는 이유가 된다. 교회가 반쪽이 나는 가슴 아픈 순간들도, 알고 보면 저마다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한 두 마디는 꼭 해야겠다고 목청을 높인 순간들이 쌓여온 결론일 때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 같다.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작은 일에 쉽게도 상처받고, 금방 오해한다. 우울증, 불안증, 성격장애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순간들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생각이 훨씬 더 좁은 공간에 갇히기 때문이다. 그 상처와 오해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새도없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를 뒷받침 할 증거들을 모으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커진 오해는 그대로 두면 상대에 대한 굳은 믿음이 된다. 


한 상담 세션에서 S씨는 얼마간 나간 자신의 교회에서 너무나 상처를 받아 몇 주 예배를 빠졌다고 말했다.

일을 많이 맡아하시는 한 교회 리더가 자기를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도 잘 걸면서 S씨를 보면 인사도 안 하고 경계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참여하는 모임에도 자신을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S씨는 확신했다. 상대가 분명 자기 흉을 보고 다니며 없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닌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전에는 반가워하던 몇 사람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이유는 결국 다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이 동네를 떠나본 적도 없는 토박이로 편협하고 적대적인 성격임을 장담했다.


그러나 S씨는 자신이 그 사람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건 적도,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한 적도 없음을 잊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 지역에 이사 오며 느꼈던 것들 등등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감안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저 내성적이고 얌전한 사람인지, 무슨 힘든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지 등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가가 보기 전에 이미 상처받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성격장애를 치료하는 대표주자인 마시 리네한(Marsh Linehan)은 우리 모두에게 대인관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첫 번째 제안은 문제와 상처가 쌓이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게 되도록 기다리지 말라고 설득한다. 작게 살짝 베었을 때 약을 바르라는 것이다. 손가락을 자를 때까지 두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 분야의 대가가 제안하는 효과적인 대인관계의 첫 단계 치고는 사실 어이없는 말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행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나 많은 대화를 우리는 포기하고 살까? 이미 상대의 답을 알 것 같은 생각에, 상대의 행동이 뻔히 예상돼서 아예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 경우가 이번 주에도 얼마나 될까? 상대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뭐가 불편한 건지 묻기조차 싫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며 우리는 오늘도 상대방과의 사이에 벽을 조금 더 쌓는다. 낮을 때에는 한 발자국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던 그 벽이 어느새 상대의 머리끝도 보이지 않는 성이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서, 또 수없이 만나는 다른 이들에게서 이 때 늦은 후회를 너무나 자주 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서신다. 살아계신 게 맞냐고 의심하고 비난할 때도, 죄지으며 멀어질 때도, 우리 일이 너무 바빠 무시할 때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직도 다가설 용기가 없는 우리라서, 작은 일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하기에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우리라서, 비난이 두려운 우리라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이 필요하다.

그 벽을 허무신 예수님께 매달려 우리 앞에 놓인 작은 벽을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까지 미뤄서 좀 더 높아질 그 벽의 돌을 오늘 카톡 한 번으로, 전화 한 통화로 치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방에 헐기 힘든 담일지는 몰라도, 오늘 한 번의 용기가 화평케 하는 자의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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