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신약성서 기독론 : 요한의 기독론 (6)

로고스 기독론(6)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 있는 로고스 찬미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인 존재성과 그의 공생애 사역의 결과를 요약적으로 기술했다.

요한은 특히 이 부분에서 로고스의 성육신이라는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역사를 묘사한다. 로고스(말씀)가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 신비함을 나타낸다. 이 구절의 말씀을 토대로 요한이 제시하는 성육신의 신학과 독생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관한 요한의 교훈을 알아본다.


요한은 로고스 찬양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 말씀이 육신 곧 인간이 된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신성의 존재가 인성의 존재로 변형된 것을 말한다. 그것은 또 그 말씀이 인성의 존재가 되어 인간의 역사적 삶의 현장에 들어오신 것을 나타낸다.


요한복음에서 ‘육신’이란 단어는 아주 드물게 나오는데, 신체 곧 살과 피를 가진 인간 존재라는 중립적 의미로 사용된다. 사도 바울도 그의 기독론적 성찰에서 성육신과 관련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롬 1:3);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다(롬 8:3);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셨다(딤전 3:16).


이러한 신학적 맥락에서 이 단어의 사용은 인간으로서의 제한됨과 유한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써 말씀으로서의 영원한 신성의 존재가 변질된 것은 아니다. 성육신하신 로고스는 인간이 되셨지만 말씀으로서 신성의 존재를 완전하게 유지하며 로고스의 역할을 완전하게 그대로 감당한다. 요한은 말씀이 어떻게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되다’(become)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단순히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만 선언한다.


이런 점에서 성육신의 신학은 공관복음서들(마태와 누가)에 나오는 동정녀 출생의 신학과는 매우 다른 신학적 관점을 반영한다. 동정녀 출생의 신학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이 출생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을 따라 어머니의 태에서 잉태되고 태어났으며 어린 아기로부터 자라나 성장한 인간 존재인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예수의 출생 이야기들에 따르면, 예수는 그의 어머니를 통하여 잉태되었고 태어난 것으로 제시되며 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부모가 자녀를 ‘낳다’”라는 의미의 동사들이 사용되었다:


‘틱토’(마 1:21, 23, 25; 눅 1:31; 2:7); ‘겐나오’(마 1:20; 2:1, 4; 눅 1:35). 동정녀 출생의 신학에서 부각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처녀를 통해 인간으로 잉태되었고 태어났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생은 인간 아버지의 개입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신비한 개입 혹은 성령의 개입에 의한 신비한 잉태와 출생이라는 신학적 진리를 제시한다(마 1:18; 눅 1:35). 반면에 성육신의 신학은 인간으로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 되었다는 점이 부각된다. 성육신의 신학적 표현에서는 ‘낳다’ 혹은 ‘태어나다’라는 동사들이 아니라 ‘되다’라는 동사가 사용됐다.


로고스가 육신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부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라는 인성의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성을 유지하고 있는 신비하고 유일한 존재성을 표현하려는 신학적 관점의 산물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의 신비한 존재성을 표현하기 위해 헬라어 ‘되다’라는 동사를 사용했다(빌 2:7; 갈 4:4).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은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성육신은 부활과 반대 방향의 하나님의 권능의 활동을 가리킨다. 부활은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 존재에서 하나님의 존재 곧 하늘과 땅의 권세자가 되신 존재의 변형을 가리킨다.
반면에 성육신은 부활과 반대 방향의 하나님의 역사로서 로고스라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 존재로의 변형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부활과 화육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신학적 관점을 대변한다.


영원한 신성의 로고스가 유한하고 가시적이며 육신의 존재가 됐다는 말씀은 가현설과 같은 영지주의 이단교훈을 반대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포함한다. 가현설(docetism)은 신성의 로고스가 실제로 육신의 존재가 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존재가 된 것처럼 단순히 나타났을(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거부하면서 신성만을 강조하려는 입장에서 나왔다. 이것은 세상과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 비가시 세계와 가시 세계, 위의 세계와 아래 세계, 그리고 정신 세계과 물질 세계 - 헬레니즘 사상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그 세계관에 따르면, 가시 세계는 물질과 육신의 유한한 존재로 이루어진 세계인 반면, 비가시 세계는 정신과 영의 무한한 존재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여기에 도덕적 이분법을 적용하여 아래 세계는 악하고 위의 세계는 선하다는 이분법적 사상을 적용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의 육신은 물질이며 아래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악한 반면, 영혼은 영적이며 위의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가시적 육신 속에 갇혀있는 영원한 신성의 파편인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가현설의 바탕에는 어떻게 영원하고 비가시적이며 비물질의 신성의 존재인 로고스(말씀)가 유한하고 가시적이며 물질의 존재(육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헬라주의적 의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헬라주의 사상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로고스라는 영원하신 신성의 존재가 역사의 구체적인 한 인간이 되신 종말론적 구원 사건을 선포한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전체를 통해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이 성육신의 신비한 사건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또한 성육신이라는 비밀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69)라는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을 이해하는 길은 먼저 그 분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1:12; 20:31).


‘거했다’는 동사는 “장막을 치다” 혹은 “거처를 정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하나님이 광야의 장막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 것을 나타낸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실 수 있도록 성막을 치게 했다(출 25:8~9). 그래서 그 성막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 중에 임하시어 그들과 함께 동거하시는 현존의 장소가 됐다. 구약에서 ‘거하다’는 동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것을 나타낸다(출 25:8; 29:46). 맹렬한 불같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렀는데(출 24:16; 40:35),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히브리어, 셰키나) 곧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스라엘의 예언 전승에는 하나님이 종말에 자기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칠 것이 예언되어 있다: “나는 시온에 장막을 치는 주 너희 하나님인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엘 3:17);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처할 것이라”(슥 2:10);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배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겔 43:7). 요한은 성육신하신 로고스가 바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새로운 처소임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옛 장막을 대체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임재의 처소이다(2:19~22).


요한은 또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들’이라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세상 중에 거처하시는 현존의 장소임을 나타낸다. ‘우리들’이라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인 것은 고별 강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될 내용이다(14:23; 17:21~24).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